[Opinion] '조반니의 방', 거울 속의 나와 진짜 나의 간극 [문학]

진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글 입력 2017.06.20 21: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17-06-21 01;40;48.jpg
  

 '조반니의 방'. 미국에서 꽤 이름을 떨친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책이고,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명단에도 올라 있지만, 한국인들에겐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심지어 번역조차 되어있지 않다. 나 역시 학과 강의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러한 명작은 널리 소문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화자인 데이비드는 중산층 백인으로, 정착하라는 아버지의 무언의 압력을 무시하고 집을 떠나 파리로 가서 빈둥거리며 목적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재정적 어려움이 닥치자 그는 미국인 헬라에게 청혼하고, 헬라는 생각해 보겠다며 파리를 떠난다. 그녀가 파리를 비운 사이 데이비드는 친구를 따라 게이 바에 갔다가, 수수께끼의 이탈리아인 바텐더 조반니와 즉흥적인 쾌락을 나눈다. 데이비드는 즉각 조반니의 작은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헬라가 빨리 돌아와 조반니에 대한 탈출구 없는 사랑에서 해방시켜주기를 바란다. 데이비드가 다시 이성과의 유희를 위해 조반니의 방을 떠나면서부터 은밀한 사랑의 삼각관계를 구성하는 세 꼭짓점 모두가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조반니의 방)


 이러한 과정에서 데이빗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거부감, 죄책감에 사로잡혀 누구에게도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다.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결국 지오반니보다 자기 스스로의 안위가 더 앞섰던 데이빗. 책을 읽는 내내 그에게 동정을 느꼈지만, 사실 그보다도 분노가 더 앞섰다. 그저 조건부결혼을 약속한 거라고 생각했던 헬라가 실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이 느껴져서 더 그랬던 같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지오반니를 버린 것도 모자라 헬라마저도 버려버린 그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간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데이빗은 절대적 악인이 아니라, 그냥 죄책감이란 감정에 통째로 잡아먹힌 약한 사람이다. 허구한 날 커지는 그 어마어마한 감정을 통솔하기에 그의 그릇이 너무 작다. 대책없이 그 감정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니 사랑도 놓치고, 사회적 안정도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가 놓친 인물들은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아니 그에 앞서 데이빗은 대체 무슨 죄로 이리도 거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스스로의 인생을 망쳐야 하는가. 왜 사회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매도하며 동성애자들의 인생을 죄책감으로 점철시키는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나는 수많은 학우들이 데이빗을 '쓰레기'라 일컫는 것을 목격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데이빗은 '쓰레기'가 맞다. 하지만 마냥 데이빗 혼자만 악인으로 몰아가기엔 데이빗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사회에서 태어났기에 쓰레기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James_Baldwin.jpg
 

+ 제임스 볼드윈과 '조반니의 방'

 책은 1950년대에 쓰여졌고, 작중 시대적 배경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른 설정들은 흑인이며 미국인인 저자의 환경과 정반대다. 주인공 데이빗은 금발에 흰 피부의 전형적인 미국 백인이며, 조반니는 이탈리아인이다. 그리고 그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다.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너무나 당연하게 프랑스계 백인이 쓴 소설이라고 생각할 법한 배경이다.

 1950년대 당시는 미국에서 흑인들이 합법적으로 천대받고,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규정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제임스 볼드윈은 흑인이자 동성애자였다. 이 책은 실제로 그의 아픈 연애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럼에도 굳이 그가 백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흑인'과 '동성애자' 둘 다 약자의 위치였기 때문에 오히려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반감을 줄까봐였다고 한다. 실제로 극중 데이빗은 백인으로서의 신분에 상당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고, 동성애는 이 자부심을 깨뜨리는 오점이라고 생각한다.

 동성애가 불법을 넘어서 '병'으로까지 여겨지던 1950년대에도 '조반니의 방'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게 읽혔다고 한다. 2009년 동성결혼 합법화가 단숨에 된 것이 아니라, 무려 반 세기 동안 차근차근 이렇게 인식을 쌓아온 것이다. 미국보다 훨씬 보수적인 분위기의 한국에서는 아직도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강하다. 하지만 근래 소위 '퀴어 붐'이 일어나고 동성애를 다룬 영화와 문학 작품들이 족족 인기작 반열에 오르는 가운데, 훗날 언젠가는 한국의 동성애자들도 숨통이 더 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조반니의 방'으로부터 50년 뒤에 미국의 동성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명수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