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또 엄마들 탓인가? -월간 독서경영-

글 입력 2017.06.06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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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독서경영의 특별호를 신청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조정래 작가의 인터뷰였다. 작가들의 독서 비결은 무엇이며 그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푼 기대감을 안고 그의 인터뷰를 읽기 시작했지만 그러한 기분도 잠시. 나의 기대감은 산산조각이 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한 여성 혐오로 인해 나는 아주 깊은 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지듯 아득하고도 참담한 기분만을 느꼈다. 도저히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



아이들의 독서 기피가 엄마들 탓입니까?


스마트폰이 독서 방해꾼이라는 조정래 작가의 말에는 공감했다. 나 역시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을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교양 있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책은커녕 스마트폰만 쥔 채 기사 몇 줄 읽는 것을 독서라고 변명한다. 그럴 때마다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지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맞아. 그놈의 스마트폰’ 이라 중얼거렸다. 본인이 독서의 중요성을 자각해야 읽기 시작한다는 그의 이야기 또한 공감했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다음 대목이었다. 아이들의 독서 기피가 어째서 엄마의 교육 탓으로 귀결 되는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한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인물은 엄마입니다.
엄마가 책을 읽으면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엄마가 책을 읽기는커녕 아이가 가령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을 읽고 있다고 칩시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이나 읽고 있다며 난리가 나겠죠?"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인터뷰 말미에서도 또다시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하신다. 아이 엄마들이 장롱만 좋은 걸로 바꾸려 들지 말고 장롱의 절반 크기만이라도 좋으니 책장을 두고 거기 책을 꽂으라고. 그리고는 이런 말도 첨부하신다.


"당신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게 자식이다. 그러니 읽어라"


이 나라의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 바로 조정래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들이다. 이따위의 여성관을 지니고 있는 한, 그들이 아무리 허울 좋은 말로 주입식 입시 교육의 폐해를 떠든다 한들 소용없다. 자신들이 입시교육에 불을 붙이는 장본인임을 절대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말이 뜻하는 요지가 무엇인가? 결국 자식 교육은 엄마 몫이며 자식이 잘못되고 독서를 하지 않는 것, 나아가 교육 문제까지 모두 ‘어머니’ 들의 문제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런 발언들이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서 한국의 어머니들에게 과도한 책임과 의무를 덧씌우는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은 삭제하고 어머니에게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그 무게감에 짓눌려 ‘어머니’라는 정체성만 남아버린 여성들은 애처로운 인정 투쟁의 벼랑 끝으로 내달린다.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가는 것이 어머니라는 여성의 성공이므로. 과도한 교육열은 이러한 부작용의 산물이다. 물론 모든 어머니들이 인정 투쟁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여성의 잘못은 여성 전체의 잘못으로, 남성의 잘못은 남성 개인의 잘못 또는 인류의 문제처럼 비춰진다. 조정래의 발언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는 것은 조정래 자신이다. 문화일보가 교보문고에 요청해 입수한 '2006∼2015년 연령·성별 도서 구매 점유율’ 자료에 따르면 40대 여성은 17.0%의 비율로 가장 책을 많이 구매한 층이다. 이들은 자기계발과 치유를 위한 인문서, 에세이 구입은 물론 자녀들의 학습서까지 대신 구입해준다. 심지어 전자책마저 여성(70.7%)이 남성(29.3%)보다 훨씬 더 많은 비율로 활용한다. 세대별 전반으로 여성의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녀가 있을 확률이 높은 30대와 40대 여성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계층이다. 그런데 엄마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니. 조정래 작가는 본인의 가부장적 여성관을 기반으로 자녀를 둔 어머니들을 폄하한 것이다. 누가 소설가 아니랄까봐. 꽤나 열이 뻗쳐 검색을 해보니 최근 발행된 그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라는 소설도 아니나 다를까.

"자식 사랑이 과잉인 욕망 덩어리의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 "짙은 화장발처럼 속물근성을 전신에 맥질하고 있는 한국의 흔한 여성", "엄마들의 과도한 집착과 무절제한 몰두", "집집마다 엄마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다" 등의 표현으로 어머니들을 비난하셨다. 반면 아빠들에 대한 묘사에선 이런 수준의 표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한 기사까지 있다.

본인의 뇌내 망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어머니’ 혐오가 가득한 소설까지 쓰셨다. 나는 조정래의 꼰대 기질과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보면 이런 말이 떠오른다. 개저씨 문인의 정수로구나(그의 또 다른 여성혐오 발언 ‘망할 놈의 어미로구나‘의 미러링이다.)

오혜진 문화연구가는 지금까지의 주류 문학이 계몽주의, 가부장주의, 시장 패권주의, 순문학주의와 같은 퇴행적 성격을 가졌으며 이 같은 성격이 자신들의 문학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심하게 동떨어지기에 젊은 독자들이 기성 문학을 '개저씨 문학', 좀 완곡한 표현으로는 자조적 의미의 'K문학'이라고 부르며 외면한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정래가 쓴 소설을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ㅡ안 봐도 개저씨 문학의 냄새가 풍겨서ㅡ. 하지만 앞으로도 그가 쓴 소설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시간에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에밀리 디킨슨의 시, 정유정, 한강, 진 리스의 소설을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체화한 남성이 쓴 소설에 내 시간을 허비하긴 아까우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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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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