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서로에게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화전반]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
글 입력 2017.06.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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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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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자체제작한 따끈따끈한 신작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원제: 13 reasons why)>를 보았다. 이 드라마를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의 홍보 게시글.

    
 
‘어느 날 갑자기 한 소년의 집에 테이프가 담긴 박스가 배달된다. 그 테이프를 만든 주인공은 소년이 알고 지냈던, 그러나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나 베이커’이다. 7개의 테이프에 열세 개의 면에는, 해나가 왜 자살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담겨있다…’
    
 
 
미스터리하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줄거리에 홀려 드라마를 시작했다. 배경은 미국의 한 고등학교이고, 해나 베이커와 클레이 젠슨(소년)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고등학생들을 둘러싼 것이다. ‘에이, 또 미국 하이틴 드라마?’ 농구팀과 치어리더를 꼭대기로 하고 공부벌레(nerd)들이 최하층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미국 고등학생들의 피라미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 질투, 따돌림, 폭력, 일탈… 처음엔 이 드라마도 결국 권선징악이 실현되고 주인공은 성장하고 사랑을 이루는 등등 뻔한 하이틴 드라마의 전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지닌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생각보다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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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사소한 장난, 사소한 험담이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제이 애셔(Jay Asher)의 2007년 베스트셀러 를 각색한 것으로, 스토리 구조가 탄탄하고 다양한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치밀하다. 특히 단순히 해나 베이커가 고등학교 내에서 따돌림 당하고, 폭력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겪는 청소년들끼리의 갈등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선생, 부모, 상담가 등 모든 아이와 어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잘못을 저지를 때에야 미성숙한 청소년의 장난, 시기와 질투, 두려움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 합리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해나가 남긴 테이프 덕분에 세상에 자신의 잘못이 다 드러나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가해자들이 모여 앉아 어떻게 그 일을 덮어버릴지 논의하는 장면은 전혀 순수하거나 미숙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의 모습처럼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다. 물론 드라마는 가해자 한 명 한 명의 아픈 가정사나 과거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절대악’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장난, 사소한 험담이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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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의 세계에서 ‘평판’이라는 것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종종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이 큰 이슈로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학교라는 좁은 사회, 특히 몇 명도 안 되는 소그룹 사이에서 벌어지는 따돌림이 뭐가 그렇게 힘들까, 조금만 참으면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텐데,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해나의 자살 사건을 두고 부모와 선생님과 상담가가 문제의 핵심에 쉽게 다다르지 못하고 뱅뱅 도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청소년 문제는 아주 사소하고 편협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의 서열화(소위 일진, 찐따와 같은 개념)와 좁은 인간관계, 게다가 SNS까지 합쳐진 10대의 세계에서 ‘평판(reputation)’이라는 것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왜 모두 그 시기를 거쳤으면서도 잊어버린 걸까? 단 몇 명의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실패해도 10대들은 크게 좌절하고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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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피해자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과 조롱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남녀가 공존하는 학교 사회에서 성폭행의 문제는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도 이 드라마에서 절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단 것도. 어른들의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혹은 오히려 더, 청소년의 세계에서도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피해자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과 조롱을 감수해야 한다. 이 드라마에서 성폭행 장면, 자살 장면 등 끔찍한 장면들(*이 드라마는 청소년 관람불가입니다)을 매우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그러한 것들이 절대로 미화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드라마 말미에서 미국에서 진행되는 캠페인 잇츠 온 어스(It’s On Us)를 소개한 것도 의미 있다. 잇츠 온 어스 캠페인은 버락 오바마와 백악관 의회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교내나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근절에 대해 모두가 책임의식을 갖기를 요구하는 캠페인이다.


잇츠 온 어스(It's On Us) 캠페인 홍보영상


   
 
흔히 ‘냄비 근성’이라고들 말한다.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반짝 관심을 가졌다가 금방 식어버리고 무관심해버리는 사람들의 특성을 일컫는 말이다. 자극적인 드라마의 시놉시스에 홀려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보았더라도, 청소년 문제, 성폭력 문제에 대해 금방 시선을 돌려버린다면 우리도 냄비 근성이란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주는 강력한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클레이 젠슨의 마지막 대사를 인용해본다.

 

“나아져야 해요. 우리가 서로를 더 잘 대하고, 서로를 더 위해야 해요. (It has to get better. The way we treat each other and look for each other.)”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결을 고민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더 이상 해나 베이커가 쓸쓸히 죽어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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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 파일의 출처는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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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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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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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달곰
    • 현진씨 안녕하세요. 현재 '보암보암'을 기고하는 중인 반채은이라고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하이틴드라마, 어린이연극처럼 연령대가 붙어버리면 왠지 수준이 낮고 유치할 것 같은 그런 선입견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손도 대지 않곤 하죠. 작품성이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이들 사이에서도 '정체성 투쟁'이 필요한 듯 합니다.  그래서 <루마의 루머의 루머>에 대한 지원사격으로서 현진씨의 글은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본문엔 그 외에도 10대 청소년들의 영악함, 타인의 아픔을 사소하게 여기는 태도, 교내 성폭력에서 여성의 고통, 냄비근성 등  여러 가지 내용들이 섞여있어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연결이 조금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의 영악함과 성폭력과 그 2차 피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을 연결시킨다거나 타인의 아픔을 사소히 여기고 금방 관심이 식어버리는 것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이나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논조였다면 보다 전달력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셜록>을 제외하고는 외국 드라마에 무지한 저로서는 현진씨의 글을 통해 또 하나의 좋은 작품을 알아가는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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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ny
    • 안녕하세요. 에디터 10기의 정연수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페이스북을 하지는 않지만 넷플릭스가 참 마켓팅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ㅎㅎ 인터넷 여러 곳에서 이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많이 보았거든요! 그렇게 관심이 생겨서 였는지 현진씨의 글도 이번 두레를 통해서 접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이미 읽어보았답니다ㅎㅎ '우리가 서로를 더 잘 대하고, 서로를 더 위해야 해요.'라는 말 참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인 것 같아요. 당장 나의 하루를, 일주일을 보내는 데에 바빠서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많은 사람이 말하지만 서로를 조금만 더 신경쓰면 훨씬 더 따뜻한 일상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답니다. 물로 그 작은 신경조차 없었을 때에 이 <루머의 루머의 루머> 속 해나 베이커처럼 누군가가 쓸쓸히 떠나갈지도 모르겠지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세, 강조하신 것처럼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진님의 글에 크게 공감하며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ㅎㅎ <루머의 루머의 무러>도 이번 방학 때 보아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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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밤바434
    • 두레 활동중인 김마루입니다.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미국 드라마를 안 본지 오래되었는데 한번 보고 싶네요 ㅎㅎ 확실히 청소년 시절 학교라는 공간은 청소년들에게 모든 것으로 인식되는 부분이 큰 것 같습니다. 공간적으로 제한이 되어있을 때, 관점도 그만큼 좁아지기 쉽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그렇기에 그 좁은 세계를 함께하는 존재들, 이를테면 친구, 선생님 같은 존재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거겠죠?
       청소년과 여성이라는 두 소수자적 입장에서 드라마를 잘 해석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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