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공간을 뛰어넘은 여행, 역사를 걷는 시간 - 아라비아의 길

글 입력 2017.05.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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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뛰어넘은 여행
역사를 걷는 시간
아라비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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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전시를 다녀왔지만, 아직까지도 전시를 감상하고 나면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셰퍼드 페어리의 전시에선 미국의 거리를 다녀왔었고, 미켈란젤로 전에선 15-16세기 유럽을, 모네전에선 19세기 유럽을 다녀왔었죠.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에선 14세기 무역선에 올라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넘어서 시간마저 넘나드는 여행. 저는 여러 전시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공간과 시간을 여행해 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 ‘아라비아의 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한걸음마다 10년, 아니 50년 이상이 오갔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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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길’은 선사시대부터 시작됩니다. 아라비아 반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중동’의 이미지가 되기 이전. 그러니까 사막이 아닌 초원이었을 시절부터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라며 배워왔던 뗀석기나 간석기를 볼 때는 그 익숨함에 즐겁기도 했지만. 그 돌의 재질이나 모양이 우리의 것과는 같은 듯 달라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딜 가나 인간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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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나 말의 모양을 한 조각상은 생각보다 정교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의 울주반구대 암각화가 떠오르며 ‘사냥이 잘 되길 기원하는 마음’은 어디나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헀죠. 사실 초원이라고 해봤자 현재의 아라비아의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았었는데요. 코끼리의 뼈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초원의 이미지를 굳건히 해줬습니다. ‘곧 사막이 될’ 그런 초원이 아니라, 코끼리까지 살 정도로 제대로 된 초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전시에 오기 전까진 아라비아 반도가 예전엔 초원이었다는 사실보다 놀라운게 있을까,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시에 오니, 초록의 아라비아보다 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요. 바로 고대도시 ‘딜문’이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등장한다는 ‘딜문’이란 고대도시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로, 메소포타미아부터 페르시아, 그리스까지 교역을 했던 곳인데요. 메소포타미아에선 ‘바다 건너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풍요로웠던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 까마득한 옛날, 메소포타미아에서 페르시아까지 교역할 정도로 엄청난 도시가 있었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이런 고대도시는 딜문 하나뿐 아닙니다. 아라비아엔 ‘게라’라는 고대도시도 존재했다고 하는데요. 이 도시 또한 주변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현재의 터키나 인도, 중국과도 교류를 했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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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라의 중심지였던 ‘타즈’에서 발굴 된 소녀의 무덤은 그 교류의 증거입니다. 어쩐지 단어만으로도 신비한 느낌을 주는 ‘황금마스크’는 그리스 미케네 지역에서 유행했던 양식이죠. 부장품 대부분이 황금인 것을 봤을 때, 그 주인의 부는 엄청났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게라’의 풍요로움을 예측 가능한 부분이죠.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가 머물렀던 ‘타이마’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이 나보니두스왕에 얽힌 이야기는 성경에까지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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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문명들은 어딘지 신비로운 느낌을 줬다면 ‘울라’는 신비로움을 넘어 압도감까지 느껴지는 문명입니다. 이 3개의 조각상만 봐도 그런데요. 앞선 아라비아 반도의 모든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상업이 발달했고,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울라에선 거대한 인간 모양의 석상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사막 배경을 뒤로하고 위풍당당하게 우뚝 서 있는 세 개의 조각상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을 자랑했는데요. 근육까지 실감나게 표현 돼서 그런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걸어오진 않을까 싶어, 왠지 모를 두려움까지 생겼습니다. 가까이에서 오래 서 있지는 못했죠. 계속 보고 싶어 모든 전시를 보고서도 몇 번이고 왔다 갔다하면서 보고, 또 보긴 했지만. 봐도 봐도 두려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두려운 만큼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지만요.

라흐얀 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울라는 이후 나바테이아 왕국이 됩니다. 이 나바테이아 왕국은 로마에 정복당하죠. 때문에 이 지역에선 로마의 글자가 적힌 비석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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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라비아 지역은 워낙 교역로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보니, 고대부터 계속해서 ‘교역의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떼놓지 않고 있는데요. ‘까르얏 알파우’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이 곳에선 아라비아라고 하기엔 너무도 그리스의 것 같은 유물들이 등장하는데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할 법한 꼬부랑 머리를 가진 청동 조각상이나, 그리스 로마신화의 신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심지어 이 지역에서 무척이나 많이 발견된 국자도 그리스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요. 포도주를 담가먹었던 그리스에선 술을 거르는 거름망과 국자 세트가 유행했다고 하는데, 이 지역에서 발견 된 국자들도 같은 양식을 띠고 있습니다.흥미롭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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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교역의 중심지’로서의 고대 아라비아의 모습을 보고나면, 우리가 익히 익숙한 모습의 ‘아라비아’가 나옵니다. 네. 바로 이슬람교죠.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꾸며놓은 길은 성지 메카와 메디나로의 여정, ‘순례자의 길’을 연상케 하는데요. 이 섹션에선 메카와 메디나로 향하는 이정표와, 그로 떠나는 순례자들이 사용했던 물품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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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폐쇄적이란 이미지의 이슬람 문화. 그 중에서도 메카의 카바신전은 이교도는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카바신전을 덮는 키스와의 일부와, 카바신전의 이전 문을 통해서 ‘카바신전’에 대해서 일부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에서 재생되던 동영상을 통해서 ‘카바신전’이 이슬람교도들에게 얼마나 성스러운 곳인지를 보고 나니, 이 두 가지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는데요. 처음엔 단지 예전 문인데 그걸 전시하는 게 뭐 그리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을 보고 나니, 이 문이 한국에 전시되고 제가 이 문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수교 55주년 기념인 이 전시를 위해, 두 나라가 얼마나 힘을 기울였는지도 알 수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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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 뒤에 있는 ‘비석 존’도 멋있었습니다. 하나의 작품과도 같이 아름답게 조각돼 있는 비석들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 그 공간에 발을 들여놓으니 숙연해지기도 했는데요. 각각의 비석이 다 아름다웠음은 물론, 그에 적혀있는 문구들 또한 무척이나 시적이어서 놀랐습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몇 마디를 가져와 보겠습니다.

‘죽음은 세상에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주었소.’
‘또한 그대도 영원할 수 없으며 그들이 영원할 수 있겠는가?’.
‘자격 없는 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신을 믿는 그가 알라에게 돌아가다.‘.
’이 건강하고 착했던 사람의 무덤에 잠시 멈추어 
아름다운 찬송으로 그를 기억하고 쿠란의 파티마 장을 낭독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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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떻게 건국됐는지, 어떤 모습인지를 알려주며 ‘아라비아의 길’전시는 끝이 납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가 사우드 가문이 출정할 때 낙타에 꽂고다니던 깃발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나,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이름이 ‘사우드 왕국의 아라비아’라는 의미였단 것이 흥미로웠죠.

고대의 아라비아 반도의 모습부터,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까지. 정말이지 엄청나게 기나길었던 여행인 것 같지 않나요? 저는 역사를 걸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수많은 유적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고고학은 이제 시작이란 것입니다.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많은 상태라는 거죠! 이번 전시는 ‘현재까지 밝혀진’ 아라비아의 역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수많은 것들이 더 발굴되고, 또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나서가 더더욱 기대되는 대목인데요.

시공간을 뛰어넘었던 여행을 마치며, 새로 쓰여질 역사 또한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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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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