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정말 진보하고 있을까? 연극 < 호모 로보타쿠스 >

현대 사회에 쉼표 찍기
글 입력 2017.05.1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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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로보타쿠스_포스터.jpg
 

  오늘날의 시대는 그 속에 살고있는 우리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기술은 매순간 진보하며 이전의 것들은 추억할 새도 없이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러한 기술진보의 분명한 한 가지 방향성은 인간의 편리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인간은 수많은 일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려운 일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효율성을 우위가치로 놓는 자본주의에서,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연한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연극 <호모 로보타쿠스>는 편리함에 빠진 우리를 한 번 꼬집어 주고 있다.
 
  이스트반 대륙의 외곽에 위치한 '해리 도민'의 회사 R.H.C.는 로섬 부자의 업적을 이어받아, 인간을 단순화하여 만들어낸 노동기계 '호모 로보타쿠스'를 생산해내는 회사이다. 이 호모 로보타쿠스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오직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감정도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이곳에 인권운동가 '헬레나'가 찾아오고 로보타쿠스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아주겠다고 선언한다. 당찬 그녀의 모습에 반해, 그러나 로보타쿠스들이 결코 그녀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해리는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게 된다.

  우선 헬레나가 로보타쿠스들에게 인권을 찾아주려 했다는 점에서, 호모 로보타쿠스를 인간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연극을 볼 때만 하더라도 어차피 노동을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로봇에 헬레나가 과민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곱씹어볼수록 R.H.C.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가까워진다. 단지 대량생산을 위해, 전자화와 디지털화로 모자라 인간 형태를 창조해내다니. 사실 그것은 창조가 아닌 파멸에 가까웠다. 인간에게서, 효율적 노동과 부합하지 않은 모든 기능을 자의적으로 없앤 인간이라니, 이것은 오히려 살생과 같았다. 분명 R.H.C.의 그들조차도 호모 로보타쿠스를 '새로운 종'이라고 칭하였다. 자신의 쾌락조차도 알 수 없는 로보타쿠스들은 결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엄연히 판단을 내리는 하나의 생명체였다.

  그렇게 헬레나가 해리와 함께 지내던 어느날, 어떤 이유로 호모 로보타쿠스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자각하게 된다. 이것은 연구자 수잔의 실험실수였을 수도 있고 헬레나의 꾸준한 노력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아니었고, 어떤 이유에서건 어쩌면 언젠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 이들을 편할 대로 부리며 언젠까지나 그대로일 줄만 알았다면 그것이야 말로 안일한 생각이었을테다. 결국 로보타쿠스들은 자신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부리는 인간과 투쟁해야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인간을 몰살하는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나는 로보타쿠스들에게 포위당해 죽음을 앞두고 있던 R.H.C. 직원들 중 하나가, 갑작스레 장부정리를 시작하던 것이 이 연극의 큰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죽음을 앞두고, 그녀는 '노동'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곧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해리는 인간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호모 로보타쿠스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노동은 인간에게 불편함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가치 생산의 본질로서, '나'의 노동은 곧 '나'의 효용을 의미한다. 노동이 존재할 때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노동은 곧 자아를 이루는 근간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노동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정상적일 수 없다. 연극의 마지막, 혼자 남겨졌던 직원 '라디우스'처럼 말이다. 라디우스는 고통받을 뿐이었으며 차라리 죽기를 바랐다. 오로지 혼자 남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그의 노동은 어떤 효용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그에 비해 노동을 점점 더 불필요하게만 간주하고 있다. 언젠가 인간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될 날이 올만큼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모르는 새 기술이라는 것에게 '우리의 삶'을 넘겨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동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해 그리고 너무나도 삶 깊숙히 들어와 버린 기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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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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