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보다 더 진한 가족 이야기, ‘허삼관 매혈기’ [문학]

글 입력 2017.05.14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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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가정의 달이다. 5월 5일은 어린이날, 5월 8일은 어버이날, 게다가 올해는 5월 3일에 석가탄신일이 있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긴 황금연휴도 있었다. 가족이란 대체 무엇일까. 가끔 밉기도 하고, 좋기도 한, 이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집합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 등장하는 허삼관은 언제나 가족을 자신의 최우선으로 두었다. 책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설 중심내용은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보통 ‘피’하면 끔찍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소설 내용은 이와 다르게 (혹은 위화답게) 비극적인 인생을 유머와 익살로 승화시켜 끈끈한 가족애의 이야기를 그려놓았다. 주인공인 허삼관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피를 기꺼이 내주었고 중국의 흔들리는 역사 속에서 가족을 항상 지키고자 했다.



일락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고?

 

 허삼관의 마을에는 피를 안 팔아본 남자는 여자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 돌았다. 피를 판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건강하다는 것을 뜻했으며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재력을 뜻했다. 그래서 허삼관의 첫 번째 매혈은 색시를 얻는 데에 썼다. 방씨와 함께 의사이나 피를 사는 ‘혈두’에게 자신의 피를 팔아 번 돈으로 허옥란과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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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삼관 매혈기' 중, 허삼관과 허옥란의 결혼 장면)


 그렇게 허삼관과 허옥란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출산의 고통과 반대로 자신은 즐거움을 느꼈다 하여 ‘락(樂)’을 이름에 사용함) 세 형제와 화목하게 잘 살아가는 듯 했으나 일락이가 허삼관의 친아들이 아닐 것이라는 소문에 휩싸이게 된다. 사실 허옥란은 허삼관과 결혼하기 전 하소용이라는 부자와 사귀는 사이였는데 그한테서 겁탈을 당하고 일락이를 임신한 것이었다. 일락이와 관계가 제일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허삼관은 아주 매정하게 일락이를 차별하고 가족에서 배제한다. 심지어 이락이와 삼락이를 불러 세워놓고는 나한테는 아들이 둘 뿐이라는 둥, 하소용의 두 딸을 강간하여 꼭 복수하라는 둥의 말도 안 되는 말을 풀어놓는다.

 허삼관은 배신감을 느꼈다. 공짜로 9년이나 키웠는데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니. 허삼관은 아주 기초적인 생각, 혈연만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느껴 일락이 마음에 못을 박는다. 게다가 과학적 근거도 없이 허삼관은 그저 일락이가 하소용을 닮았다는 소문을 듣고 일락이를 심하게 차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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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과 일락이)


 너무하지 않나 싶을 때 허삼관의 두 번째 매혈이 진행된다. 일락이가 방씨네 아들을 때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하소용도 일락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그러고, 허삼관도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그러니 방씨는 허옥란을 찾아와 약값을 달라고 한다. 마땅히 돈이 없었던 허삼관네는 결국 방씨에게 집안 물건들을 차압당하게 되고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팔아 다시 집안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다시 그가 일락이를 받아들이겠구나 하는 순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심정으로 허삼관은 임분방이라는 처자와 바람을 피운다. 게다가 임분방에게 고마움을 느껴 허삼관은 피를 팔아 먹을 것을 사주는데 여기까진 그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일락이와 허삼관의 갈등이 있던 시기에 인민공사, 대약진 운동, 제강생산운동이 중국 전국에서 일어났다. 가뭄도 겹쳐 먹을 것이 부족했던 허삼관은 네 번째로 자신의 피를 팔아 일락이만 빼고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그러자 결국 일락이는 자신의 가족을 찾는다며 가출을 하게 되고 허삼관은 말로는 일락이를 욕하면서 그를 애타게 찾는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았던 일락이를 다시 찾게 되고 함께 국수를 먹으러 승리반점에 가게 되는데 여기서 이 둘의 관계는 혈연을 넘어 진정한 부자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인민공사 (1958년~1978년)
상점, 농가의 부업을 금지하고
공사 소유제에 근거한 분배제도,
농업 집단화를 위해 대규모 집단농장을 추진함

* 대약진운동 (1958년~1962년 초)
집단 농장화 (인민공사와 함께 이루어짐),
인력에 의존하는 노동집약적인 산업화,
사적 소유제 파괴,
농촌의 노동력을 공업 노동력으로 이동시키면서 공장 활성화
그러나 대약진 운동 시행할 때 자연재해도 함께 겹치면서 인명피해가 매우 컸음

*제강생산운동
대약진운동과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농촌에서 철강을 생산하고자 했음,
집안의 냄비, 솥, 숟가락 등 쇠붙이는 모두 인민공사로 향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정부가 지정해 준 식당에서 밥을 해결해야 했으나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음.



 서먹함에서 다시 끈끈함으로 돌아오기란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일락이와 허삼관의 끈끈한 관계는 이제야 형성되는 듯싶다. 하소용이 교통사고로 인해 의식이 오락가락하자 하소용의 아내가 무당을 불러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 부탁한다. 그러자 무당은 아들을 데려와 곡을 하라 이른다. 처음 허삼관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야 다 정리가 되었는데 다시 하소용 가족과 얽히는 일이라니, 나 같아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허삼관은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일락이에게 곡을 하라 이른다.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중략)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pg. 205)


 일락이는 자신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한테 등 떠밀려 곡 하는 것이 억울했다. 지붕 위에 올라가서도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하기 싫다며 울자 허삼관은 마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칼을 가져와 자신의 팔을 찢고 피를 보여준다. 일락이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다시 하소용의 아들이라고 지껄이면 칼로 찢어버리겠다고 위협한다. 허삼관이 마음으로 일락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이 부자관계가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락이는 허삼관의 진짜 아들이 되었고, 허삼관은 일락이의 진짜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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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네 가족)



웃고 우는 아버지의 일생



 그 이후 중국에는 문화대혁명의 바람이 분다. 문화대혁명은 4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1966년 시작되었던 무산계급의 확산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러나 무조건 마오쩌둥을 따른 젊은 홍위병들은 옛날 사상, 문화, 풍속, 관습을 철저히 비판했다. 이뿐만 아니라 대자보를 크게 써서 특정 인물을 비판하고, 공개 비판대회를 열어 사람들 앞에서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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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공개비판의 모습)


 이 단계에서 일락이의 어머니이자 허삼관의 아내인 허옥란이 큰 비판을 받게 된다. 바로 하소용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밖에 서 있는 허옥란에게 맛있는 도시락 반찬도, 물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맛있는 것을 주면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게 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게 되지만 허삼관은 매일 그녀에게 도시락을 갖다 준다. 오직 그만이 허옥란을 감쌌고 그의 세 아들들이 홍위병을 따라하며 어머니를 비판하자 아내의 편에 서서 자신이 임분방과 바람피운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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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과 홍위병의 선전물:
"온 세계인민단이 힘을 모아 미제를 타도하자! 소련을 타도하자! 각국의 반동파를 타도하자!")


 두 번째 단계는 학습 재개이다. 1966년 8월부터 2년 간 마오쩌둥 주석은 ‘학습을 재개하고 혁명을 지속하자’라는 말을 언급했다. 물리적 수단보다 언어적 수단의 투쟁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때라 일락, 이락, 삼락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생산 촉진이었다. 공장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허옥란과 허삼관은 노동자가 되어 일을 한다.

 네 번째 단계는 지식청년들의 하방이었다. 10년 동안 생산하향운동이 강조되어 지식청년들은 농촌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재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웠으며 1970년대 후반까지 도시에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여기서 일락이와 이락이가 농촌으로 향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버지인지라 이락이의 생산대장이 허삼관의 집을 방문하자 허삼관은 다섯 번째로 자신의 피를 팔아 생산대장에게 이락이를 잘 봐달라며 술을 대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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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 향했던 젊은이들의 모습)


 그러나 잘 지냈던 이락이와 다르게 일락이는 농촌생활을 잘 버티지 못했고 결국 간염을 얻어 시름시름 앓게 된다. 바로 여기서부터 허삼관의 눈물겨운 매혈 여정이 시작된다. 허삼관은 한 달 내에 다시 피를 뽑을 수 없다는 혈두의 말에 장소를 옮겨가며 매혈을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피를 파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던 허삼관은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린푸에서, 바이리에서, 쑹린에서 피를 팔았으나 결국 쓰러지게 되고, 자신이 두 번 피 판 돈을 모두 잃게 되지만 항톈에서 피를 파려는 래희 형제의 도움을 받아 결국 마지막 장소인 창닝에서 피를 팔아 치료비를 악착같이 모은다.


“여보, 당신 왜 또 울어요?”
허삼관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까는 일락이가 죽은 줄 알고 운 거였고, 지금은 일락이가 살아 있어서 우는 거야...”
(pg.320)


 자신의 생명이 위독한 것을 느끼면서까지 그는 아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끝까지 노력했다. 그리고 아들이 다시 살아나자, 그는 가족의 소중함과 동시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느꼈다. 허삼관의 이러한 모습들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아버지의 모습과는 달랐다. 철이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정이 많았고 또 정의로웠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족한 면이 없어 보였다.





 격동적인 중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허삼관은 아버지의 역할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뭐 이런 아빠가 다 있나 싶었지만 결국 그는 피보다 더 진한 마음으로 이어진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현대에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들도 허삼관처럼 우리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과 자식들의 관계는 얼마나 가까울까. 아마 허삼관과 일락이의 관계만큼 가깝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허삼관 매혈기는 진정한 아버지상을 얘기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자식으로서의 도리도 생각하게 해준다. 표현이 서툴러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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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머스럽고 해학적인 위화의 소설은 언제나 큰 메시지를 보게 해준다. 그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 중국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소중한 가족 관계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한국에서도 배우인 하정우가 ‘허삼관 매혈기’ 감독을 맡아 영화를 제작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래도 소설이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면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소설을 먼저 보는 것이 어떨까. 언제나 우리를 위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행복한 5월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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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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