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린왕자 다시 읽기 [문학]

어린왕자를 읽으며 떠올린 사색들
글 입력 2017.05.0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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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년, 10년에 한번쯤은 만나는 친구 같은 책.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고전명작이다. 처음 읽었던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9살이 이해하기에는 제법 어려웠고 항상 바오밥나무가 등장할 때쯤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온통 말이 안 되잖아, 도대체 어린 왕자는 왜 자꾸 모험을 떠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해 덮어두기 일쑤였다. 이건 5학년 때 다시 읽을거야 하면서 말이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12살에 만났던 어린 왕자는 엉뚱하고 흥미로운 모험가였다. 나는 그의 주변에 집중하기보다 여전히 어린 왕자의 꽁무니를 따라가기가 바빴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다. ‘어떻게 별에 갔을까? 보아 구렁이가 어떻게 코끼리를 삼켰지? 바오밥 나무는 진짜 이렇게 생겼을까?’ 그러면서 모자 그림을 한참이나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왠지 글보다는 삽화에 충실했던 12살이었다.
 
 10년 후, 머리가 좀 더 커진 22살의 나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해져 다시 읽게 되었다.  펼치자 마자 첫 장면부터 와 닿는 것들이 많았다. 굳이 의미 부여를 하려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70년도 더 된 소설 속에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여 소름이 돋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우울한 어린왕자 이야기지만, 스물 두 살의 내가 해석한 내용이 이렇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10년 뒤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2.

 첫 번째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모든 존재를 자기 신하로 삼고 싶어 하는 권력의 신이었다. 금지와 허용, 지배와 명령을 통해 복종하게 하는 모습이 꼭 실세계와 마주한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러던 중 왕이 던진 말 하나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네 자신을 심판해봐.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야.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법이거든.

네가 자신을 훌륭히 심판할 수 있다면
그건 네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야."



 한참 사색에 빠져서는, 나는 참으로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늘 관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는 항상 합리화가 뒤따르지 않았는지, 남에게 내밀었던 잣대를 나에게 한번이라도 대본 적이 있는지, 완벽을 추구하지만 스스로에게 진정 엄격했던 적은 있었는지. 자신을 심판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였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세 번째 별에서 만난 술꾼은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그는 부끄러운 것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또 술을 마신다는 무기력한 사람이었다. 어린 왕자는 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어 했지만 나는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부끄러운 모습들을 숨기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고, 숨겨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슬픔과 무기력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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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곰곰이 생각해보니 책에는 유독 ‘어른’이 많이 등장한다. 무력하거나, 욕심이 많거나, 중심에 있거나 혹은 가장자리에 위치한 인물들의 표상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모습은 더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가장 작은 별이었던 다섯 번째 별에서는 가로등을 켰다 껐다 반복하는 점등인을 보았다. 그는 일상에 시달리는 힘없는 어른이었다. 쉬고 싶으면 쉬라는 말에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명령에 충실한 사람이었는데, 어린 왕자는 그를 맘에 들어 했다. 점등인이 하는 일은 오직 불을 밝히는 것뿐이지만 불을 밝히면 별을 하나 더, 꽃 한송이를 새로 태어나게 했고 불을 끄면 꽃과 별을 잠재울 수 있어 의미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점등인이 안쓰러웠다. 내 안의 여유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내려진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는 그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불을 밝히는 일이 명령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그에게는 자고 싶은 꿈이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정작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불은 밝힐 수 없는 것일까? 언제까지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할까?
 과연 타인을 위하는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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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편, 어린 왕자는 자신의 소혹성에서 장미를 길들이다 속상해서 떠나온 것이었다. 장미는 어린 왕자에게 때때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요구했다. 거짓말을 하다가 부끄러워서 얼버무리기도 했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길들인 장미지만, 장미의 이런저런 태도 때문에 공감하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미를 떠나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 왕자는 그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어.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했어야 했는데. 꽃은 나에게 향기를 뿜어 주었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는데. ··· 그 불쌍한 말 뒤엔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 챘어야 했는데..”


 그러면서도 "하긴 난 꽃을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어." 라고 말한다.

 장미가 겉으로 드러낸 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미의 심연을 보았어야 했다는 어린 왕자의 반성적 사유는 매우 도저하다. 세상의 많은 인간관계 역시 이런 점에서 그릇되는 것 같았다. 다툼과 시기, 미움과 결별이 배려의 결여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었다.
 끝으로, 나에게 반성의 여지와 순수함을 일깨워준 어린왕자라는 작품은 평생에 걸쳐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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