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끊임없이 착취하는 자본과, 곁에 선 우리 [시각예술]

비평가의 시선에서 바라보기 - 아이작 줄리언 : PLAY TIME
글 입력 2017.05.0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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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착취하는 자본과, 곁에 선 우리

비평가의 시선에서 바라보기
< 아이작 줄리언 : PLAY TI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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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소외된 많은 이들을 쉴 틈 없이 짓밟는다.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궁핍한 생활을 간간히 이어가는 노동자에서부터 돈을 위해 꿈과 이념을 포기하는 이들까지, 폭력의 대상은 광범위하다. 보이지 않는 주먹질은 수많은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낳는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우리는 그 답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알고 있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자본,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 대부분을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노예로 마음껏 부리는 중이다.

아이작 줄리언의 3가지 영상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대두되는 단어 또한 ‘자본’이다. 그의 작품의 모티브가 된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을 무기로 약한 자들을 착취하는 이들을 부르주아로, 자본의 결핍으로 인해 착취당하는 약한 자들을 프롤레타리아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노동자가 피땀 흘려 창출한 잉여가치는 모두 자본가 계급이 가로채 자본주의적 소득의 기초가 된다. 이렇게 한없는 착취는 기술개발을 통한 이윤 확대, 결론적으로는 식민지 침탈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적 정책으로 확대된다. 이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가망 없는)계급 투쟁으로 이어지는데, 사실상 현대 사회가 이러한 투쟁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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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두바이의 필리핀 출신 가정부가 화려한 도심을 공허하게 응시하는 모습

 줄리언은 이러한 투쟁의 실상을 은유하지 않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뱉어낸다. < PLAY TIME >에 등장하는 필리핀 가정부는 자신의 처참한 생애를 요약적으로 서술한다. 새까만 메이드 복장의 그녀는 두바이의 찌를 듯한 고층 빌딩과 아이러니한 대비를 이룬다. 줄리언이 두바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이유도, 이곳의 발달이 순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원인 석유에서 기인해, 허허벌판 사막에서 빌딩숲이 되기까지 채 6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가장 부유한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위를 존중 받지 못하는, 피부가 부르틀 만큼 일해도 1달러짜리 바세린밖에 제공받지 못하는 그녀의 삶. 감상자는 필연적으로 자본가에 해당하는 그녀의 고용주에 대한 마음속 비난을 시작하며 무의식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유색인종의 가정부를 호되게 부려먹고 턱도 없는 임금을 지불하는 저들은, 미국계 금융권에 종사하는 백인 부부이겠지. 유럽인들이 식민지의 흑인들을 노예로 팔아 인권을 유린했던 일들과 다를 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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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두 개의 화면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담화를 나누는 모습

 이렇듯 아이작 줄리언은 깊은 통찰을 필요로 하는 주제를 영화의 가시적인 이야기나 간단한 사고만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든다. 두 번째 영상인 < KAPITAL >  또한 이러한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둘러싼 현대인들의 담화를 엿들을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 작품은 내면적, 예술적 향유와는 아주 거리가 먼, 그저 돈을 불리기 위한 투자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화이트큐브에 진열된 작품들의 가격에는 단단히 헛바람이 들었다. 데미안 허스트의 것은 소더비 경매에서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그리고 있는 수많은 무명 예술인들의 회화에는 그 어떤 부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 이상 작품성 또는 질적 가치가 미술품의 가격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예술은 철저히 시장 경제의 원리에 의한, 주식이나 어음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에 기로에 선 감상자는 자문자답한다.

 “너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부자들을 욕하고 있어. 만약 너에게도 제프 쿤스의 작품 한 점을 구매할 만한 능력이 있고 이것을 되팔았을 때에 수 배에 달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같은 값에 무명이지만 뛰어난 예술성과 너의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 열 점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니?”

 “글쎄, 제프 쿤스의 것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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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이집트의 황금빛 궁전

 관객은 < PLAY TIME >과 < KAPITAL >에서 수억 달러짜리 미술품에 관해 들은 후 동선을 따라 < THE LEOPARD >를 감상한다. 열심히 일하는, 아니 열나게 착취당하는 흑인 노동자들은 탈진한지 오래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힘겹게 그물을 들어 올린다. 그들의 노동 행위는 영상의 색감과 음악에 의해 숭고하게 묘사되었지만 이를 퇴색시키는 착취 행위는 전혀 그렇지 않다. < 게이샤의 추억 >을 보는 듯, 동양적 미를 한껏 강조하는 황금빛 궁전은 오리엔탈리즘을 역으로 꼬아 조롱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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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빠른 속도로 빌딩이 지어지는 두바이의 건축 현장

 전시는 수다쟁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본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파생된다. 그저 더 많은 ‘돈’을 손에 쥐기 위해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행위들, 깃털처럼 가벼운 취급을 당하며 내던져지는 양심. 자본주의 사회 아래 녹색 종이는 그 무엇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지닌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무기가 되어 수많은 이들의 육체와 심장을 찌른다. 아이작 줄리언의 화면은 이러한 문제들 중 거시적인 시선에서 큰 쟁점을 조명하고 있다. 식민지화에서 시작해 착취의 대상이 되며 결론적으로 백인보다 하위 계급으로 분류되는 유색인종, 본래의 미학적 가치를 잃은 채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 예술품, 다각도로 바라본 경제위기까지. 능동적으로 사고를 확장해 보면 자본이 낳은 비인간적인 문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수많은 살인/상해 사건의 원인도, 고용주의 강압적 착취를 견디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나라에 입국한 이유도, 새파란 청소년들이 어두운 독서실에 갇혀 수능특강만 줄기차게 풀어대는 이유도 모두 ‘돈’이다.

 이번 전시 《 아이작 줄리언: PLAY TIME 》과 많이 닮아 있는 음반이 하나 있다. 지난 해 12월 힙합 가수 김태균은 신작<녹색이념>을 발표해 돈이 자신에게 준 많은 상처들을 곱씹으며 음악으로 자본주의의 폐단을 신랄히 비판했다. 녹색이념의 ‘녹색’은 돈을 뜻하며, 그가 이념을 가지고 사는 것 자체가 꿈, 즉 꿈과 현실의 괴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단어와 가사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김태균의 이야기는 《 PLAY TIME 》의 컨텐츠와 매우 비슷하다. 미국 유학 시절 받아야 했던 인종 차별, 돈 때문에 자신을 만나고 떠난 애인,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시 당한 악마의 편집, 그리고 음악 차트에 한번 올라 보려고 자신이 지닌 예술적 가치를 버리고 상업적으로 변모하는 많은 음악가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대중이 ‘돈의 폐단’을 노래한 작업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 온 한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자본주의의 대표적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착취하는 이들은 검은 욕망에게 도덕과 이념을 빼앗기고, 착취 당하는 이들은 인권과 꿈을 잃는다. 아이작 줄리언은 이러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내보여 피해자 중 한명인 감상자를 사유에 빠지게 한다. 보는 이는 아파하며 공감함과 동시에 반성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모색을 추구한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이러한 현실의 부조리를 접하면서, 그리고 예술을 향유할 만큼 사회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비판적인 성찰을 해 나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줄리언의 예술과 감상자의 사색이 진정한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10기_신예린
사진 출처_Google 이미지, 플랫폼엘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신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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