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힘쎈 여자 도봉순이 약자들의 세상에 남긴 것, 그 아쉬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4.3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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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힘쎈여자 도봉순>이 JTBC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했다.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는 나 또한 보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본방 사수를 할 정도로 매력적인 드라마였기에, 시청률이 10%를 넘었다는 사실에 수긍이 갔다. 여성들을 납치한 범인도 잡고, 주인공 커플의 사랑도 이루어지고, 봉순이도 약자들을 도와주며 자신의 힘을 원하는 곳에 쓰는 결말 또한 만족스러웠다.용역 깡패를 응징하는 도봉순 (출처: JTBC "힘쎈여자 도봉순")“잘 만들었다”는 호평은 많이 받았지만, 시청률의 벽은 넘지 못했던 JTBC 드라마들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힘쎈 여자”라는 독특한 설정과 귀여운 이미지로 그를 소화한 박보영일 것이다. 그 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았던 주인공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 신선함과, 작고 귀엽지만 “힘쎈 여자”인 도봉순이 여성 대상 범죄에 맞서 범인을 잡는다는 설정은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수 많은 범죄 사건들의 가해자들에게 도봉순처럼 시원한 펀치를 날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봉순을 보면서 다들 한 번씩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막강한 힘을 이용해 범죄자들을 날려버리며 이런 욕망을 실현시키는 봉순이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주었다.또 다른 흥행 요인으로는 B급 코미디 감성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 낸 배우들의 열연과 로맨스에만 치중하지 않은 장르의 신선함이 있다. 강력반 형사들과 범인 김정현, 백탁파와 미친 존재감을 지닌 오돌뼈 등을 연기한 탄탄한 연기력의 조연들과 그 중심에서 균형을 잡아준 주연 커플 덕분에 범죄를 다룰 때는 한없이 심각해졌다가도 연애 장면은 로맨틱하게, 어이없게 웃긴 장면은 코믹한대로 잘 살려낼 수 있었다. 이러한 장르의 혼합 때문에 한편에서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거나, 중구난방이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비교적 자연스럽게 로맨스와 스릴러, 코미디라는 세 장르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고, 드라마에 재미를 더했다고 본다.<힘쎈 여자 도봉순>이 어느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설정과 신선함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만큼,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많다. 우선 “힘이 세다”는 봉순이의 설정이, 말 그대로 육체적인 힘이 센 것에 멈춰버렸다는 점이다. 봉순이는 뛰어난 괴력을 가지고 힘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응징하기도 하고, 경호원으로 취직해 상사를 노리는 범인을 제압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녀의 영웅적인 면모는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영역에서로 한정된다. 그녀가 고졸 신분으로 들어가기 힘든 회사 아인소프트에 입사해서 기획1팀에 배정되는 일은 연인인 안민혁 대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PT 발표로 좋은 평가를 받는 등 봉순이가 노력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게임 개발이라는 자신의 꿈을 위해 봉순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의 주체적인 모습이 진지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컴퓨터로 맨날 같은 그림만 만지고 있는 도봉순의 모습은 제작진이 이러한 부분에 무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성에 비해 육체적으로 약한 것으로 상정되는 여성의 특성을 전복시킨 것은 좋았지만, 물리적인 힘이 강하다는 설정에서 좀 더 나아가서, 도봉순이라는 인물 자체가 여자로서 지니는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안민혁 대표에게 꽂힌 봉순 모 (출처: JTBC "힘쎈여자 도봉순")또한 “약자가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노력하는 도봉순이 전하는 메시지의 진지함을 반감시키는 요소들이 눈에 띄어 안타까웠다. 소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까워지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봉순이의 엄마가 ‘딸이 돈 많은 남자를 물어 팔자 피기를’ 바라는 모습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부분이 그렇다. 코믹함을 연출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안민혁 대표가 등장하거나 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가 만나라, 잡아라 하는 바람에 봉순이는 부담과 불편함을 느끼고, 보는 우리는 더 불편하다. 봉순이 엄마가 기대하는 “남자 덕분에 팔자 피는” 여성상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닌, 남자의 보호를 받지 않아도 되는 힘 센 여자”라는 설정이 추구하는 주체적인 여성상과 상충하며, 그 캐릭터가 지닌 매력까지 감소시킨다.미친 존재감을 지닌 조연 오돌뼈의 캐릭터도 같은 맥락에서 주제의 진지함에 대해 의문이 들게 한다. 극 중에서 게이로 등장하는 그는 안민혁 대표를 좋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안민혁의 연인인 도봉순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괴롭힌다. 그 과정에서 도봉순의 보복을 당하며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다. 진하게 화장을 하고 파인 옷을 입는 그의 겉모습 또한 이전부터 전형적으로 가볍게 소비되던 게이의 이미지를 따른다. 어떤 장면에서도 성 소수자로서의 그의 모습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며, 그는 단지 주인공 커플을 돈독하게 하고 시청자들에게 유희를 주기 위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힘 없는 약자를 위해 싸우는 힘쎈 여자 도봉순이 주인공인 이 드라마에서, 아직도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진정한 약자인 성 소수자를 이처럼 가볍게 치부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아마 도봉순이 도와준 사람들만큼 그 무신경함에 상처 입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약한 사람만이 약자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에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임예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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