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자체로 독도였던 연주회, 라 메르 에 릴

글 입력 2017.04.2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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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금요일, 중간시험도 어느 정도 마친 김에 라 메르 에 릴의 제10회 정기연주회에 다녀왔다. 연극이나 영화만 보려고 하는 편식을 고쳐보기 위해 일부러 클래식 공연을 신청해 보러가곤 했는데 이번 라 메르 에 릴 연주회는 아주 고전적이지만은 않은 곡들을 만나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평소 보다 부푼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가 라 메르 에 릴의 구성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괜히 뿌듯해졌다. 단순 초대로 인한 것이든 어떻든지 간에,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독도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는 싶은데 쉽지 않았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마음속에 우리 땅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푸근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는 벤자민 브리튼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세개의 희유곡으로 막을 올렸다. 벤자민 브리튼이 젊은 시절 자신의 친구들을 표현한 곡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악장이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느낌의 곡들이 이어졌다. 어떤 부분은 엉뚱발랄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조용하고 감성적이기도 했다. 붓에 물감을 묻혀 스케치 된 그림을 하나하나 칠해나간다기보다는 액션 페인팅처럼 빨강은 빨강대로, 초록은 초록대로 마구 뿌려놓은 것만 같은 느낌의 곡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곡이 현악사중주로 연주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평소 현악기에 대해 부드럽고 우아한 정적인 선율을 만들어내는 악기로만 여겼는데 이번 연주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다양한 느낌의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생각보다 훨씬 유쾌한 악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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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박경훈의 <신비의 섬>과 임준희의 소프라노, 생황, 가야금,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독도 오감도> 였다. 라 메르 에 릴의 존재 이유이자 연주회의 취지와도 맞닿는 곡들이기도 했고 오로지 독도 때문에 한 뜻으로 모인 이들이 벌써 10회에 접어든 연주회에서 독도에 대해 얼마만큼 숙성된 애정을 보여줄 것인지가 공연 시작 전까지도 가장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두 곡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망망대해 가운데 유유히 떠있는 섬, 그래서 정말 멋있지만 그래서 외로워 보이는 섬, 가본 사람보다 안 가본 사람이 더 많은 섬, 그래서 여전히 베일에 싸인 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섬. 대다수의 사람들이 독도로부터 느끼는 감수성이 이러한 것들이고 이를 담아내는 것이 두 곡의 목표였다면 그것을 훌륭히 해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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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이미지 발췌
 

 무엇보다도 생황의 역할이 결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이름 자체를 처음 들어본 생황은 국악기이면서 관악기인데 17개의 가느다란 대나무 관대가 통에 둥글게 박혀 있는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이 가능한 악기라고 한다.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며 관대 밑에 붙어있는 쇠청을 울림으로써 소리를 내는 이 악기는 두 곡을 연주할 때 모두 등장해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청량하면서도 날카롭고 한편으로는 구슬픈 소리를 내는 생황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같은 서양 악기와 호흡을 맞추면서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서양 악기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생황은 내게 독도 그 자체로 느껴졌다. 당연히 우리 땅인 독도를 자기네 것이라고 박박 우기고 있는 일본, 겉으로는 세계는 하나이며 모두가 평등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뒤로는 일본보다 힘이 약한 국가의 땅이라는 이유로 일본의 횡포를 모른 체 하는 위선적인 여러 국가들. 지금까지도 해결이 되지 않은 독도를 둘러싼 논쟁들이 독도 입장에서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독도는 독도일 뿐인데 자기네 마음대로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대고 있으니 말이다. 서양 악기와 우리 악기가 어우러져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생황의 연주는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없는 소음들 속에서 꼿꼿이 선 채 제자리를 지키는 독도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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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메르 에 릴의 연주회가 감동을 주었던 건 단어 그대로 진정성 때문이었다. 라 메르 에 릴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연주 그 모든 것들이 독도를 향해 있었고 독도로 수렴하고 있었다. 독도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영토문제이고 권력의 문제이며 경제적 이익의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전 세계에 공표하고 일본의 눈 가리고 아웅 하기식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자명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 메르 에 릴의 이러한 노력이 어쩌면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사람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파고들기에 그것이 가진 힘은 돈이나 권력으로 환산할 수 없고 또 파급력을 가늠할 수가 없다. 더불어 나와 같은 소시민들의 입장에서 라 메르 에 릴의 연주회나 전시회는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동시에 독도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애정과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정신적인 결속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써 나는 이 글이 라 메르 에 릴의 행보를 조금이나마 뒷받침 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수천수만의 바람결이 연을 하늘 높이 띄워주듯이 이 글도 라 메르 에 릴과 독도의 비상을 돕는다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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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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