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간과 상실 그리고 아름다움.영화 싱글맨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4.1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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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글맨은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그 당시 미국만의 아룸다움을 황홀하게 담아내고 있다. 미장센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다. 내용을 보기 전, 모든 것이 아름답다. 스타일, 배우, 패션, 색감. 구찌 수석 디자이너 출신의 감독 톰포드가 미적감각을 여기에서도 쏟아 부었구나 싶은 영화다. 정말 완벽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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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앞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톰 포드의 감독 데뷔작이다. 최근 개봉한 녹터널 애니멀스에서도 훌륭한 감각을 보여준 톰 포드는 데뷔작에서도 역시 남달랐다. 한 사람의 마지막 하루를 섹시하고 관능적이고 또 섬세하게 하지만 담담하게 풀어냈다. 누군가는 99분의 화보집을 보는듯하다고 말할 정도로 조지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하나하나가 화보 같았고, 조지가 걷는 길은 패션쇼 같았다. 하지만 이런 시각적인 측면과 반대로 캐릭터 내부는 분명 차가운 흑백이었다. 암울했고 무너져 내렸으며 모든 것을 상실한 내면이었다. 또 그 내면 속에서 젊음과 생동감을 원하는 것. 여럿 보이는 반대요소가 영화를 채워 황홀하지만 씁쓸한 그래서 더 아름답게 만들어진 듯하다.





두 번의 영화를 보고 이해한 부분인데, 이 영화는 조지의 ‘하루’를 담았다. 처음 봤을 때는 사실 하루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 계속되는 고통, 상실에 벗어남으로 죽음을 결심한 뒤 보내는 하루의 이야기. 그의 하루는 어린 내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길었다. 아침에 일어나 늘 그랬듯이 깔끔하고 완벽하게 자신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강의를 한다. 그리고 슈퍼마켓에 가 너무도 매력적인 남성과 몇 개비의 담배를 나누며 이야기하고 가장 아끼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수업을 듣는 제자와 우연히 바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해변에 가 수영을 한다. 이게 모두 하루에 일어난 일이라니. 이렇게 밝은 하루에 문득문득 파고드는 과거의 추억. 삶이란, 과거란 참 질기다. 하지만 현재의 순간은 많은 것을 바꾼다. 순간은 짧고 일시적이지만 그것으로 인한 변화는 삶이 돼버린다. 케니는 조지를 현재로 되돌려놓고 찰리는 끝없이 과거를 추억한다. 그것이 절대 돌아가지 못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았을 때 든 생각은, ‘순간’의 조각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서 한 사람이 머무는 삶이 바뀐다는 것. 우리의 미래는 어떤 순간들로 말할 수 있을까.


‘순간을 즐기며 삶을 사니 그게 날 현재로 되돌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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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내 사람이었던, 나의 전부였던 사람을 잃은 뒤에 개인은 어떻게 그 아픔을 받아들일까. 조지처럼 조용하게 삶을 잠식시키는 경우, 혹은 모든 세상 사람이 다 알도록 고통을 소리치는 경우. 누군가를 상실하는 것은 어떤 경험인걸까. 이런 모든 질문들은 개인의 경험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게 한다. 내 삶, 첫 상실의 기억이자 유일한 상실의 기억은 할아버지의 죽음이다. 갑작스러웠던 할아버지의 죽음은 드라마에서 보던 그 흔한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실감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것도 인지되지 않는 상태. 그 상태는 꽤 고요했다.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아픔은 찾아왔다. 문득 드는 과거의 순간들은 한 번에 몰아쳤고 피할 새도 없이 온 몸이 비로 젖게 만들었다. 그 고통은 남과 나눌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다. 오로지 나만의 기억이 만들어 낸 아픔. 그게 내 유일한 상실의 경험이다.

조지가 느낀 상실의 고통이 이랬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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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을 아낀다. 음악, 장면, 색감, 대사. 그 중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읊고 싶다.


살면서 이렇게 완벽히 명확한 적은 드물었다.
짧은 순간들이 지나가고
침묵이 소음을 뒤덮는다.
생각보다 느낄 수가 있다.
사물은 매우 선명하고
세상은 너무 새롭다
실재하라 한 것처럼
순간을 지속시킬 순 없다
내가 붙잡으려 하지만
다른 것들처럼 희미해질 뿐
순간을 즐기며 삶을 사니
그게 날 현재로 되돌려 놓았다. 
이제야 모든 것은 정확히 의도했던 대로 되는 것임을 안다.
바로 그렇게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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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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