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름을 찾아서, 연극 ‘무박삼일’

글 입력 2017.04.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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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삼일 2.jpg


“철 지난 바닷가…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기타연주 하는 남자…
그리고 조용히 그의 연주를 바라보는 여자
그들의 무박삼일 힐링여행”



#1
 처음 소개를 접했을 때, 무박삼일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바로 저 철 지난 바닷가에서의 장면이었다. 머릿속에만 있던 이 장면은 연극이 시작되자 눈 앞에서 노래와 함께 재연되었다. 어쩌다가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오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두 남녀는 자연스럽게 마주친다. 기타를 치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가 말을 걸고, 남자는 누군가 다가왔다는 사실에 은근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 말을 받는다. 이렇게 만남을 시작한 그들은 무박삼일을 함께 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의 무박삼일 여행을 지켜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삶의 고충을 견디다 못해 훌쩍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하며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찾는 이야기. 처음에는 낭만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아주 낭만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여인과 함께하는 것이 중년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말하는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 특히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곧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여행은 온전히 낭만이 될 수 없다. 여자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털어내고 싶어 했다가, 죽고 싶어하고, 우울해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이기에 오히려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여자는 남자에게조차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라며 소리친다. 여자에게는 완전히 쉴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단 하나의 공간, 꿈을 제외하고. 

현실의 남자는 그녀를 꿈 속으로 데려가고, 꿈 속의 남자는 그녀와 같이 음악을 연주한다. 현실에서 무기력했던 여자는 꿈 속에서 뭐든지 연주할 수 있고 자신감이 넘치며 행복하게 웃는다. 음악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사실 음악은 여자에게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이었다.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가갔고, 남자의 인도로 꿈에서나마 음악을 되찾는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중년 여자의 감정에 비해 그것을 끄집어 내고 위로하는 중년 남자의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덜 느껴져서 마치 남자가 여자를 꼬시러 온 한량 같은 느낌이 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극 후반에 여자의 자아를 찾아주는 악기들 중 하나인 기타가, 초반에 흔히 여자들을 꼬실 때 쓰이기 때문에 가져온 것 같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그 이후에 남자가 하는 몇몇 대사도 마찬가지였다.


#3
여자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꿈에서의 경험은 여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깨우치게 했고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여자는 이름을 잃어버렸기에,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떠난 것처럼도 보인다. 이름이 없는데 힘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름을 잃는다는 경험은 작품 속 여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많은 중년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돌아볼 새도 없이 살고 있다.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자식이 태어나면 키운다. 그 과정에서 여자의 이름은 남편의 직장, 전세 집, 양육비 등등의 것들 뒤로 사라지고, 여자는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견딜 수 없이 힘들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연극을 통해 나도 '중년이 되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린 내가 느끼기에는 그들이 견딘 세월이 너무 커 감히 그 마음을 안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의 이름이 꿈과 음악 속에 있었듯, 마주 앉은 관객들에게도 각자의 이름이 감춰진 곳이 있을 것이다. 무박삼일이 예찬하는 중년의 모습, 어떤 아픔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주먹을 불끈 쥐는 그 의지는 각자의 이름으로부터 나오는 힘이다. 중년은 가족을 지켜야 할 책임감이 있고, 실제로도 많은 중년이 가족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 중년에게도 자아가 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어야 힘들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임을 되새기며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많은 중년들이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이미 한 뭉치의 짐을 어깨에 지고 살아가는 그들이, 잠깐의 여유도 갖지 못할 정도로 몰아 부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이름을 들으며, 꿈을 꾸고 음악을 하고 시를 쓰고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도돌이표를 만나도 또 다른 시작으로 갈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와 함께합니다.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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