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주어진 탄생과 선택하는 죽음 - 연극 심청

글 입력 2017.03.1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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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없이 찾아오는 죽음과 맞닥뜨릴때
진정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들


살아가는 모두가 결국 마주해야 할 죽음은 그 인기척을 느끼기 전까진 쉬이 생각할 수 없다. 일상의 간접경험으로 조각된 무거움, 불확실성, 슬픔, 숭고함의 이미지는 감히 스스로를 연결해보는 것마저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가끔 어떤 작품은 멀게만 느껴지던 삶의 끝자락을 불러,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내어주곤 한다. 연극 <심청>이 그러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띄워놓은 이 극은 춤과 노래, 유연하고도 딱딱한 대사, 달고 짜고 쓴맛을 낼 줄 아는 연기가 모여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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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의해 제물로 팔려온 ‘간난’은 알지도 못하는 선원들의 안위를 위해 인당수로 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제물의 자발적인 죽음만이 무사 운행으로 인도한다.’ 라고 믿는 ‘선주’와 그의 ‘세 아들’은 삶을 갈망하는 간난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노쇠로 죽음의 인기척을 느낀 선주는 자신의 처지를 간난에게 투영하기에 이르고, 이 둘에겐 같지만 다른 마지막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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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다양한 연출을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무대 뒤에 나란히 앉아있는 악사들은 극을 구성하는 각 장면에 힘을 불어 넣는다. 리드미컬한 음악소리는 극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긴 했지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음향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가끔 대사가 묻히기도 했다. 제물에 의한 무사안위를 믿으며 몸을 싣는 선원들을 위한 뱃노래는 목사의 설교체를 빌려 부르기도 하고, 제물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고안한 이야기 심청을 듣고 중전마마를 연기하는 간난의 모습에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연주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심부름꾼으로 등장하는 알 수 없는 인물은 간난과 선주의 마음을 정적이며 초현실적인 몸짓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감각적인 연출들은 시종일관 관객의 마음을 탄력적으로 공략하고, 자칫 지칠 수 있는 극의 분위기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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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죽음은 그나마 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주의 집으로 팔려온 그 순간이 어찌 보면 간난에게는 또 다른 탄생과 다름이 없다. 눈에 보이기에 의식할 수 있는 죽음을 통해 ‘살아감은 곧 죽어감’임을 알게 되고 피해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설령 이 상황을 벗어나 도망칠 수 있음에도 갈 곳이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인정한 그녀는 어쩔 수 없는 탄생과 그로 인한 불행했던 삶을 뒤로 한 채, 수많은 죽음의 기회 속에서 가장 가치 있는 마지막을 스스로가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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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난’이 변화해간 그 며칠을 길게 늘려놓은 것이 곧 우리의 인생임을 인정하는 순간, 가슴속 한 겹씩 쌓이던 젖은 종이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연극이 영원할 난제의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간난의 죽음은 개인적인 성찰과 믿음 속에서 가치를 발견한 것이지 실제로 선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 있음에도 밀어내게 되는 죽음의 또 다른 모습들을 바라보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조금은 친절해진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공연정보※
공연일정: 2017.03.03 ~ 03.19
공연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공연시간: 평일 화~금 8시/ 토 3시, 7시
일 3시 / 월 공연없음

※예매정보※


[이정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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