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스트셀링'의 함정 [문화전반]

'베스트셀러'와 '좋은 책' 사이의 간극
글 입력 2017.02.2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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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잘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다. 특히 편지가 그렇고, 책이 그렇다. 누군가가 생각이나 느낌을 ‘썼다’는 사실은 그것들을 쉽게 버릴 수 없게 한다. 책이나 편지를 읽을 때마다 잉크와 종이 외의 어떤 것이 더 묻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나는 분명 낭만적인 사람은 아닌데도 ‘절판’이란 단어에서 쇠의 단면같은 단호함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읽힐 수 없는 책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한들 
읽혀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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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ckr by Stewart


 최근 절판된 책들을 다시 복간한다는 출판사를 하나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 일을 '죽은 책'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 설명했다. 출판사 대표의 인터뷰를 읽어 보던 중 몇몇 구절이 눈에 띄었다.

"아마 우리처럼 또 누군가 어떤 절판도서를 목 메도록 찾아다니기도 할 것 같고… 그럼 우리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이왕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직접 만들어 볼까?...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를 인터뷰한 다른 기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절판된 도서를 구하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잠깐 멈칫했다. 세상엔 절판된 책들이, 잊혀진 책들이 그렇게나 많았을텐데 어째서 체감하지 못한 채 지냈는지. 나름 책을 가까이 하며 살았다 자신했는데,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읽고 싶다 생각했던 책들은 모두 ‘어디에나’ ‘잘 보이게’ 진열되어 있었다. 더 이상 읽힐 수 없게 된, '절판된' 책들 중엔 혹시 '좋은 책'도 있었을까. 아니, '좋은 책'이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이 있었나.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책은 단순한 생필품은 아니다. 작가가 던지고 있는 질문, 문장, 함유하고 있는 지식, 중심 주제 등, '좋은 책'을 가르는 조건은 사람마다 분명, 다를 것이다. 어떤 책을 '좋다'고 생각했는지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베스트셀러' 진열대는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수많은 책들 한가운데서 마치 성전처럼 '위풍'하고 '당당'하게 서있었기 때문일까.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았단 사실은 -그것이 '좋은 책'임을 보증해주지 않는데도- 너무나 쉽게 '좋은 책'과의 간극을 좁혀버렸다. '좋은 책'에 대한 고민을 아주 손쉽게 훔쳐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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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판도서들을 복간한다는 그 출판사는 '최측의 농간'이다. 신동혁 대표는 “책이 절판되는 건 철저히 시장 논리 때문"이라 말한다. "돈이 안 되니까 더 이상 찍지 않"는 것은 곧 "주최측(출판사)의 농간"이라며 한 명의 독자라도 원한다면 절판시키지 않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 말한다. 
 
 이들이 선택한 책들에 관심이 갔던 건 그래서였다. '돈이 되지 않아' 절판됐을 그 책들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재출간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처음 읽었던 책은 시인 여림의 유고시집 「비고인 하늘을 걸어가는 일」이었다. '아트인사이트'에 나름 공들인 리뷰를 올려 두기도 했는데, 시의 난해함에 마음이 멀어졌던 사람이라면 꼭 한번 만나보길 권하는 시집이다. 첫 구매의 성공은 곧바로 다음 책을 찾게 했고 지금 읽고 있는 것은 고형렬 시인의 산문집, 「은빛물고기」다. 아직 절반 정도 읽었지만 이 책 역시 오래 소장할 것 같다.
 
 다수로부터 선택 받지 못했단 사실이 책의 매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베스트셀링'은 '좋은 책'이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 책을 사랑한다 자신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쯤 다시 '좋은 책'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가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이 작은 출판사의 선택지에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신동혁 대표, ‘죽은 책’ 되살리는 ‘서적 심폐소생술사’ 송충현기자 2016-10-04
원문 : http://news.donga.com/3/all/20161004/80602612/1#csidx0d298c52576dab1ab2cfff40f19e338
"25살까지 책 안 봤다"는 출판사 사장, '독특한' 포부 2016-07-04
원문 : http://omn.kr/kakr


[이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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