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감각02. 그래도 아름다운 건 (김윤아, 봄이 오면)

글 입력 2017.02.2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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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하얗고 붉은 향기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연둣빛 고운 숲속으로
어리고 단비 마시러
봄 맞으러 가야지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묶고
마음엔 한껏 꽃 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봄바람 부는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으면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들녘은 활짝 피어나네

봄이 오면
봄바람 부는 연못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노 저으러 가야지
나룻배에 가는 겨울 오는 봄 싣고
노래하는 당신과 나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김윤아, 2집 <유리가면> 중 '봄이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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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김윤아의 두 번째 앨범 수록곡인 ‘봄이오면(Guitar ver.)’은 슬픈 곡이다. 슬플 때 유독 이 곡을 찾아 들어 그 습관적인 감상이 고질적이고 천착된 감성을 낳은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항상 앓는 편이다. 가사만 본다면 노래는 환상적인 동화의 한 장면으로 다가올 만큼 과하게 아름답다. 꽃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그림 같은 봄날에 당신과 나 둘이서 화창한 봄을 맞으러 가고 싶다는 아득한 고백이니까. 그런데 왜 나는, 항상 그 ‘아득함’ 앞에서 무너지는 것인지. 노래 속에서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오지 않았으니까 봄을 노래하는 노래다. ‘봄이 오면, 꼭 당신과 그리해야지’ 를 되풀이 말하며 약속하고 또 약속하고 상상을 덧대고 미래의 행복을 기약한다. 노래하는 입술이 꽃이 될 지경으로, 이미 봄날 속에 당신과 내가 있는 것 마냥 다정하기 그지없다.
 
  지금껏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며 살아왔지만 (지금도 그렇고) 어쨌든 내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은 나는 그 ‘아득함’에 홀려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 적당한 슬픔과 허무와는 흔쾌히 타협하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나는 삶이 본질적으로 경이로움과 환희로 가득하다 믿는 이들을 멀리했다. 그들을 경멸할 때도 적잖게 있었고. 흔들리며 소진되어 가고 있는 삶에 ‘영원’의 딱지를 붙이며 맹목적인 희망과 사랑을 부추기는 이들을 무례하고 무서운 존재라 여겼다. 그들이 말하는 삶에 대한 확신이 내겐 믿음에 대한 게걸스러운 욕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에 찬 자들이 싫다.
 

**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어진 삶과 인연을 사랑하지 않는 냉소적인 인간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나는 불안하고 떨리는 가운데 전해지는 신성한 만남들을 사랑한다. 죽음과 실패는 언제나 존재하고 인간은 그 안에서 조건적인 삶을, 제한적인 언어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자각하고 있다면 그 안에서의 모든 행위는 내게 숭고하다.
 
  지상 모든 약속은 미래의 관할 아래 있기에 그 자체로 불안하고 허무하다. 사랑의 맹세도, 꿈의 다짐도, 다음 날 오후 1시에 역 앞에서 만나자는 사소한 계획도, 모두 말이다. 그 순간에 당신과 내가 두 눈을 맞추고 손을 꼭 붙잡았다 해도. 약속을 발화하는 순간, 그 약속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도중에 파손된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로 과거를 머쓱하게 맴돌 뿐이다. 환상과 허황된 기대가 그 자리에 무너져 있을 뿐이다. 미래가 뭔가. 살아도, 살아도, 아무리 오늘을 살아 내도 끝내 알 수 없는 뒷날인 시간인데. 우리는 약속의 주체들이면서 약속 자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현재에 남겨지고 시간에 내맡겨진다. 따라서 달콤한 사랑은, 설레는 꿈은, 가까운 내일은 언제나 종말의 낭떠러지에 위험천만하게 발을 걸치고 있는 모양새라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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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만남은 아름답다. 영원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을 낳은 부모와 아플 줄 알면서도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 예술을 만난 예술가들, 내 안의 나를 발굴하는 나. 이 ‘아득함’을 넘어 언젠가의 봄날을 꿈꾸는 존재들. 꿈을 꾸다 황폐해지는 한이 있어도 끝내 그 약속을 부둥켜안고 사랑할 존재들. 오르테가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는 데 참여하는 것, 그가 부재할 수도 있는 세상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즈음에 다시 듣는 ‘봄이오면(Guitar ver.)’. 아득한 꿈을 위해 빈틈없이 사랑을 담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린다. 다정해서, 더 슬픈 곡이다. 


***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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