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도 우리는 보랏빛 슬픔을 숨긴다 [문학]

돌보지 않는 내면의 상처, 사라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글 입력 2017.02.2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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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보랏빛 슬픔을 숨긴다 


  신경숙의 소설은 하나같이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느리고 부드럽고 정적이다. 나지막하고 유순하면서도 흐릿하다. 뭔가 뚜렷하게 정해진 것 없이, 추상화 같은 그림을 툭 던져줄 뿐이다. 바이올렛도 그러했다. 마치 빗방울이 흘러내려가는 것처럼, 천천히, 나지막하게, 느림직하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에 이상한 울림을 남긴다. 아! 이런 말도 있었지, 라고 깨닫게 하는 예쁜 우리말 단어들은 이 울림을 더 크게 만든다. 감정이 부유해지는 느낌이다. 바이올렛은 이런 추상적인 낱말들로 둘러싸인 많은 메타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어 시간에 그러하듯 각 상징의 의미를 구구절절이 파헤쳐, 달달 외울 필요는 없다. 이해되는 것만 이해하면 충분하다.
 

  소설의 주인공 '오산이'는 이 씨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난 후 집을 나가버렸고, 그녀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냉전 속에서 자란다. 이 씨들이 많은 마을에서 이 씨가 아니었던 그녀는 늘 외로움에 시달렸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씨 성을 가지지 않은 남애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꼈다. 아니, 남애가 딱히 이 씨 성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애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밤마다 항아리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로 인해 상처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은 늘, 푸른 미나리 군락지에서 함께 있었다. 늘. 하지만, 그녀가 남애의 등에서 푸른 반점을 발견한 이후, 남애는 그녀를 떠나버린다.  
 

  사실, 그녀를 떠난 사람은 남애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를 떠났다. 특히 어머니는 그녀를 떠나는 날 아침에, 늘 조기구이와 미역국을 내놓았다. 어찌하든,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떠났다. 그래서 그녀는 늘 자신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은연 중에 품고 산다. 그래서 자신을 마음을 뒤흔들었던 사진기자였던 그에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다 결국, 잊히고 만다. 그 날, 그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시냐고 물었던 날,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사라졌다. 누구도 그녀의 소식을 알지 못 했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돌아간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 송이 바이올렛과 같았던 그녀는 환상일까? '이오의 눈'이라 불리는 바이올렛은 제우스에 의해 소가 되어 아버지와 생이별을 한 이오의 슬픔이 어린 꽃이다. 바이올렛은 매우 까다롭고 예민해서 다루기가 쉽지 않다. 너무 많은 물을 주어서도 안 되고, 너무 많은 햇빛을 쬐어서도 안 된다. 마치 오산이, 그녀와 같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바이올렛과 그녀는 너무나 닮았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바이올렛은 그리고 그녀는 무엇일까? 아마 그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슬픔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뚜렷하지 않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슬픔. 모두가 지니고 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슬픔. 이 슬픔들이 바로 그녀, '오산이'다. 그리고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소설의 결말은 결국, 오늘도 우리들은 내면의 상처를 모른 척하고 지나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슬픔 따위일지라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슬픔을 상징하는 그녀가, 내면의 상처를 대변하던 그녀는 사라졌지만, 독자들은 그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슬픔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법이다. 아마 한 송이 바이올렛 꽃 같은 그녀는 언젠가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무관심에 묻힌 채 사라지는 일을 반복하겠지...



그녀는 자신을 착착 휘감는 넝쿨을
내치기라도 하는 듯
손을 내젓고 내젓는다.

그 남자를 마음에 품을 수 있었을 뿐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건
 그 남자가 그의 동료 말처럼
바람둥이여서도 아니고 
그 남자가 그녀와는 다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어서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어젯밤,

 턱, 하니 
오토바이에 올라타게 할 정도로 
그녀를 방심하게 했던
마음의 가장 밑바닥엔 
어린 시절 남애로부터 갑자기 내팽개쳐졌던
고독이 불타고 있었음을, 
긴 세월 동안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가지를 치고 자라난 그 고독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전에
먼저 그로부터 가버려, 가버리란 말야, 
하는 외침을 듣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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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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