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었으니, 시간을 들여 그리워해도 좋다

글 입력 2017.01.3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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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암보암을 쓸 때 대체로 작품을 먼저 선택하고 그 속에서 마주했던 감정과 느낌을 나의 상황이나 그간의 생각들과 결부시켜 그것을 실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형태, 분위기, 냄새, 촉감, 장면으로 나타내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순식간에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리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연결고리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감정에 깊숙이 파묻혀 있다 보면 그에 맞게 떠오르는 작품들이 하나 둘 와서 내 옆에 차분히 앉는다.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이 두 작품은 유독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내게로 왔다. 있는 줄은 알았으나 오는지는 몰랐다. 내가 그런 감정 속을 헤매고 있는지도 몰랐기에 갑작스러웠으나 그만큼 마음 속 깊숙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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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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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정지용의 <향수>와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고향과 사랑하는 이로 각기 그 대상은 다르지만 한 가지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바로 그리움이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에 품기엔 많이 어려운 시였고, 또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리운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있다면 참 슬프겠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이 들었을 뿐.

 두 시에서 묻어나오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건 다름 아닌 통증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몸이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인가 싶어 제때 밥을 챙겨먹고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러나 해서 부러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죄 없는 마음을 고쳐먹기도 하고 체력을 기른다며 운동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속이 쓰리고 갑자기 어지럽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찬바람에도 쉽게 목이 에었다. 반갑게 맞이한 햇살에도 배신당한 채 앓아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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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문제일까.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아픈 걸까. 그러다 문득 나사 빠진 기계처럼 틈만 나면 몸이 고장 나는 건 아마도 ‘그리움에 대한 부정’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혼자 지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줄곧 잘 지냈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고향에 가고 싶어서 눈물짓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처음으로 혼자 하는 객지생활인데도 딱히 힘들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딸의 모습에 부모님이 서운해 하실 정도였다.
 남자친구와 멀어지고 난 뒤에도 나는 무척 잘 지냈다. 친구도 많이 만났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 혼자 여행도 다녀왔다. 그에게 의지했던 만큼 때때로 허전하고 힘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집에서 떠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금세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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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괜찮아 보이고 싶었다. 사춘기 소녀도 아닌데 폐지 줍는 할머니의 굽은 등에도, 맥없이 흩날리다 힘없이 쌓인 낙엽에도 코끝이 찡해질 만큼 눈물이 많은 나지만 그리워하는 일에는 지독히도 인색했다.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울어도 이상하지 않을 때일수록 눈과 코를 꽉 틀어막고 눈물을 감추기 바빴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다 보니 언젠가부터 진짜 괜찮은 것 같았다. 혼자 있는 일에 능숙한 그런 어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곧 나를 속이는 일이었음을 몰랐다. 태풍의 눈처럼, 폭풍전야처럼, 맹렬하게 몰아치는 그리움 속에서 나는 아주 오래도록 외로웠으나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르는 척 고요했다. 그렇게 마음을 부정한 대가를 몸이 치르는 듯 했다.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맞은 몸은 마음 대신 아파하고 상처 입었으나 마음은 영문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사무치게 그리워했음을 인정해야했다. 침묵만이 소리를 내는 자취방이 싫다는 것을. 혼자서 짊어진 공기의 무게가 버겁고 우습게 웃는 표정을 벗어 던진 낯선 얼굴이 싫다는 것을. 어딜 가든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다녀야 하는 일에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혜화역 4번출구’가 아니라 ‘우리집 앞 골목’이라 해도 말이 통하는 고향이 그리웠다. 익숙한 냄새가 밴 공기와 어딜 가든 익숙한 골목을 걷고 싶었다. 언제나 소음으로 가득한 집이 그리웠다. 그 사람도 보고 싶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나는 언제 어디서든 눈으로, 귀로, 손으로 그의 흔적을 쫓았다. 애써 못 본 척 했으나 그는 전적으로 내 마음 때문에 항상 내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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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을 드러내는 건 많은 경우에, 그리고 나처럼 스스로를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꽁꽁 동여매고 겹겹이 둘러 싸 아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종종 본인이 감춘 감정이 무엇인지를 자신조차도 잊어버리게 된다. 종래엔 몸이든 마음이든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앓는다.
 
 정지용과 백석 시인이 시를 통해 그리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내가 그리움을 알고 나서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에 토해냈듯이 그들도 그리움에 질리도록 앓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그리움은 숨기면 숨길수록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몸과 마음을 짓이겨 놓으니 말이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움이 마음속에서 뛰쳐나와 어떤 형태를 가졌을 때 그것은 어떤 감정보다도 순수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정지용 시인은 향수를 느끼는 그곳을 꿈에도 잊지 못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시인이 흰 당나귀를 타고 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푹푹 나리는 눈 사이를 거니는 장면은 캄캄한 밤인데도 환하게 빛난다. 한편으로는 ‘당신이 그리워하는 그것은 늘 아름다우니, 그건 당신이 살아온 시간들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생은 살만하게 아니냐’ 하고 그리움이 나를 타이르는 것만 같다. ‘그러니 충분히 시간을 들여 그리워해도 좋다.’ 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밤도 아름다운 그들을 그리워하며 아파하지만, 그리움을 미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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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모든 이미지 출처 구글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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