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톤체홉 ‘갈매기’라는 그릇에서 본 세상 [문학]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체홉의 '갈매기'가 말하고 있는 세상
글 입력 2016.12.1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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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읽고 쓴 글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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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는 희곡으로, 문학에 직접적으로 포함되나
상연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으로
공연예술의 범주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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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 안톤 체홉. 그의 4대 희곡의 하나인 ‘갈매기(챠이카)’는 상연 당시 전례를 볼 수 없을 만큼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보이고자 했던 새로운 실험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필자는 안톤 체홉에 대한 관심과 희곡에 대한 열정으로 갈매기를 탐독하고, 그간 극 상연을 조사해보았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챠이카는 수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는 그릇’이란 것이다. 어쩌면 신과 구의 대립을, 어쩌면 고난을 겪는 젊은이들을, 사랑의 충돌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극이다. 특히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가 하나하나 뜻하고 있는 바가 있고, 그들의 사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아 그 위주로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뜨리고린

  가장 먼저 이야기 할 사람은 꼬스챠가 아니다. 사실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뜨리고린이다. 왜냐하면 그를 보면서 작가의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종일 글의 소재를 찾는다. 나중에는 그가 그의 의지로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글의 의지로 행동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가 니나를 글의 좋은 소재로 착안하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시초여서 그런지, 중반부에 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진심인지 혹은 글에 대한 집착과 관심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그를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면 그가 ‘작가’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뇌 그 자체다. 글을 몇 번 적어본 사람이라면 글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존재인지 잘 이해할 것이다. 뜨리고린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그의 캐릭터가 가장 신경 쓰였다.(좋았다거나 인상 깊었다는 말보다 신경 쓰였다는 말이 가장 정확하다.)


-니나와 아르까지나

  그를 사랑하는 니나와 아르까지나는 아마도 그의 그런 정신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 의미가 있을 테지만 아마 니나는 동경이 더 컸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뿐이다. 다만 그가 니나를 2년 만에 손쉽게 떠날 수 있었던 만큼, 니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는 니나를 까짓 글 소재로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나가 참 안쓰러웠지만, 그런 선택을 한 뜨리고린과 그런 그를 받아준 아르까지나도 참 불쌍했다. 그들은 예술이라는 삶의 일부분 안에 서로 얽매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니나가 본인을 갈매기라 언급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꼬스챠가 지나가다가 별 생각 없이 쏴버려 죽음을 맞이한 갈매기만큼 그녀의 인생은 뜨리고린으로 한순간 추락해버린다.(어쩌면 배우에 대한 욕망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명예와 무대가.) 그 밝고 순수하던 니나는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그녀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괴롭힘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젊음을 괴롭힌 것은 예술이었을까, 아니면 명예에 대한 욕망이었을까? 아, 어쩌면 기성세대의 욕심과 기만일지도 모르겠다. ‘춥다, 춥다, 춥다! 공허하다!’ 이 대사는 실로 젊은이들의 현실 상황과 닿아있었던 것 같다.


-꼬스챠

  꼬스챠에 대한 얘기도 좀 해보자면, 그도 참 안쓰러운 청년이다. 어머니인 아르까지나와 그녀의 애인 뜨리고린에게 눌려 그의 예술과 사랑은 무참히 무너진다. 예상해보길, 그들을 모스크바에 보내고 혼자 남아 온갖 정신을 쏟아냈던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그들이 남겨주고 간 고민과 고뇌의 산출이었기 때문이었겠다.

  작가란 고독한 존재, 아르까지나가 보여주는 엄마로서의 모습은 아들을 이해하거나 보살필 줄 모르는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작가인 꼬스챠를 키우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니나의 도피도 마찬가지다. 작가 꼬스챠에게 사랑은 일종의 소스가 되었다. 꼬스챠는 아마 사랑을 얻고 잃으며 작품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갔으리라. 그러나 다만 아쉬웠던 것은 꼬스챠는 젊은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공허함을 안고 있었다. 결국 그 공허함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특히 그를 더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아마 연극 초반에 보여준 ‘새로운 형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기성세대의 예술에 만족하고 그 이상은 배척하거나 틀렸다고 지적한다. 혹은 아르까지나처럼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은 그 기준이 없고 그 한계가 없다.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게 예술이다. 꼬스챠가 선보인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의 극은 아무래도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틀렸다고 삿대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그 나름의 생각을 펼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이성의 벽이 꼬스챠에게는 너무나 높았던 장벽이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형식의 관한 논의가 현실에서도 계속 무너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는 계기였다.


-마샤와 마샤의 어머니

  마샤와 마샤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은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 마샤와 마샤의 어머니는 아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본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다른 사람과 함께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것은 거의 고통이다. 특히 그 다른 사람이 가부장적이고, 자기 자신만을 더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것에 있어서 마샤와 마샤의 어머니는 참 딱했다. 반복을 거듭하는 그녀들이,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네 여럿과 얼굴이 겹쳐보여서 더 그랬다.


-그 밖 인물

  덧붙이자면 의사는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극을 풀어가는 일종의 해설사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삼촌은 아마 젊은이와 기성세대를 완전히 벗어난, 노인의 삶을 잘 그려낸 인물이었다. 교사는 반대로 진부하리만큼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비춰보자면 이 극에서 뜻을 가지지 않은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어,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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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상연되었던 '갈매기'의 사진 


  사실 필자는 이 ‘갈매기’라는 체홉의 희곡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체홉이 가지고 온 실험성은 괜히 혹평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해하기,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 그 내면에는 체홉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이 담겨있었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주 여러 겹의 이야기들이 ‘갈매기’ 속에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무한한 주제에 관해 토론하고, 희곡과 연극을 사랑하는 젊은이로서 그 내용을 실천할 의무가 있다. 이는 희곡과 문학에 대한 사랑과 관심만이 의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갈매기’의 다양한 인물상들은 결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갈등하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산다. 이것은 희곡과 문학을 떠나서, 우리네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현실과 다시금 마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갈매기’를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이 그릇이 담고 있는 세상은 과거 러시아 시골의 체홉이 보던 세상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의 세상, 그리고 나아가 미래를 살 후대의 세상까지도 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부디 시간을 내서 체홉의 글을, 그가 말하고 있는 세상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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