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망각의 늪 [문화 전반]

신입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글 입력 2016.12.0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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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늪

수능이 끝났다, 논술도, 면접도 모두 끝났다. 
이제 수험생들 에게는 또다른 경쟁의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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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의 참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중 하나, <세 얼간이>는 입시에 지친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꽤나 익숙한 영화일 것이다. 비록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교의 교육은 영화에서 추구하는 진짜 행복찾기를 위한 여정은 아니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러한 열망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학교 기숙사에 사는 나는 매년 11월~12월 쯤 논술고사를 치르러, 면접을 치르러 학교로 몰려오는 고3 수험생들을 목격한다. 수능의 경우에는 그저 남일로만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내 눈 앞에 고3 학생들이 보이면 이들이 대학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을 비슷하게 겪어 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하다. 생각만큼 대학에는 별 게 없기 때문이다. 3월, 4월에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할 거고, "내가 이려러고 공부했나" 자괴감도 들 것이고, 우주의 기운을 담아 과제를 몰아치시는 교수님들도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재학생으로서 신입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꼰대같은 이야기를 늘어 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겪었던 '망각의 늪'에 다가설 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변화하는 대학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을 뿐이다. 2013년 7월의 시작은 뜨거운 날씨와는 다르게 싸늘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한창 입시준비에 시달리고 있었다. 7월은 기말고사를 끝으로 내신등급이 마무리되어 학교장 추천이 결정되면서 수시의 성패가 어렴풋이 갈리던 시기였다. 학교의 내신 시험도 끝나고 논술이나 면접 준비에서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겉으로만 보면 그동안 달려온 만큼 약간의 휴식기를 가지는 시기여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당장에 추구해야 할 즉각적인 목표가 없어지자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신은 얼마나 될지, 학교장 추천은 받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이때까지 해온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었다. 무엇을 했는지, 또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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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순식간에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사라져버릴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겪는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최종적으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쫓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소위 ‘시험기간’의 학교들을 둘러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대학교까지 모든 학교가 조용해진다. 학교의 자습실은 학생들로 넘쳐나고, 학교의 모든 것이 시험에 집중된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는 순간이면 학교를 둘러쌌던 긴장감은 사라진다. 자습실은 텅텅 비고, 학생들은 놀기 바쁘다. 이러한 모습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기준으로 순환시스템처럼 반복된다. 이러한 순환시스템의 끝에 도달할 때, 즉 사회에 나가게 될 때가 돼서야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뒤돌아본다. 하지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한 답만이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물론 공부의 목적에 대한 상투적인 답은 존재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사회적 인정, 돈, 물질적 욕망 등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 답은 지극히 물질적인 이유에만 공부의 목적을 한정시킨다.이러한 경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는 소위 ‘대학의 시장화’라 불리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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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의 시장화란 말 그대로 대학이 진리탐구의 기관으로서의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인력을 만들어 내는 직업훈련소로 전락한 상황을 의미한다. 과거 중세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대학은 지식인들의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에 대학을 가는 이유는 더 다양한 지식을 탐구하고, 깊게 사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의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을 왜 가는지 물어본다면, 대학생들에게 대학에 왜 왔는지 물어본다면 이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취업을 위해서라던가, 사람들 대부분이 대학에 가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대다수일 것이다. 대학들은 높은 취업률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학생들은 소위 ‘대학의 간판’을 가지기 위해 대학에 들어온다.

  학생들은 전공을 선택할 때에도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찾는다. 소위 취업이 잘 된다는 경영학과나 간호학과 등은 늘 경쟁률이 높고, 복수전공률도 높다. 왕의 학문이라 불리던 철학, 역사학, 문학 등의 순수 인문학은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외면당한다. 학생들은 학점에 집착하고, 공인영어시험과 봉사, 대외활동을 하느라 바쁘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는 끝이 없다. 대학은 이제 진리탐구의 기관이 아니라 취업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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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우리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공부의 목적을 잊었다. 아니 애초에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취업을 위해, 물질적 부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외부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사회적 성공을 위한 공부에 매달리다가도, 때로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물론 사회에서 일정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또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물질적인 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자신의 꿈보다 물질적인 부를 우선적으로 추구한다.돈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자신이 추구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탐구해보지도 않은 채로, 돈을 향한 획일화된 레이스에 참가한다. 우리는 현재 망각의 늪에 빠져있다. 공부하는 이유가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물질적인 부 자체가 목적이라는 생각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을 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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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다. 망각으로 인해 잊어버리기 전에 우리 스스로 계속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찾아야한다. 공부에 비유한다면, 단순히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공부의 목적을 따를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자신만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러한 궁극적인 목적을 늘 자신에게 주지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궁극적인 목적을 찾고, 그것을 늘 인식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둘러싼 망각의 늪에서 한 발짝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입생들에게 <세 얼간이>를 추천하다. 자신만의 공부의 이유에 대해서, 인생의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Il faut vivre comme on pense, sans quoi l'on finira par penser comme on a vécu.
-폴 부르제 [Paul-Charles-Joseph Bourget, 1852.9.2 ~ 1935.12.25.]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세 얼간이>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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