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에 젖은 우리네 현실, 김성중 『국경시장』 [문학]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을 맛보다
글 입력 2016.12.0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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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오피니언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성중 작가를 처음 마주한 것은 단편소설 <개그맨>이었다. 그녀가 줄지어놓은, 개그맨과 여자 주인공 사이의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 우리에게는 그저 웃기기만 하는 존재가, 누군가의 깊은 연인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 새롭기도 했다. 이러한 내 감상은 김성중 작가를 주목하게 만들었는데, 나는 그녀가 할 말이 많은 작가라는 것을 금세 눈치 챘다. 김성중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국경시장>은 그렇게 내 손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국경시장>에는 총 8개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기억을 사고파는 공간의 이야기인 ‘국경시장’과 천재가 되면 죽는 병 ‘쿠문’, 육체를 잃어버리고 관념만 남은 사내의 이야기 ‘관념 잼’, 거꾸로 읽어야 하는 이야기 ‘에바와 아그네스’, 인간의 생각을 가지게 된 코브라 이야기 ‘동족’, 소나타 하나가 불러일으킨 비극 ‘필멸’, 나무와 인간의 교접 ‘나무 힘줄 피아노’, 그리고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한 방울의 죄’.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환상적 요소가 섞여있는데,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현실의 이야기를 무심히, 그러면서도 부단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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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나와 주코는 골목을 누비며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들였다. …… 로나는 슬픈 삶을, 주코는 지루한 삶을 팔기 위해 자주 환전소를 드나들었다. - <국경시장> 中

  그때부터 그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작곡, 그림, 저작, 무용 등 온갖 창조적인 작업에 매달릴 것이다. ……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재능이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을 방관한다. 그러나 쿠문 사망자들은 한결 같이 미소를 짓고 있어 그들이 만족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쿠문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 <쿠문> 中

  백의 육체에 갇혀 있는데 언어를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녀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곤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욕망’뿐이었다. …… 그가 마을에 내려와 독니를 뽑히고 희롱당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은 것은 모두 인간의 독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 <동족> 中

 
  힘든 삶을 이기지 못해 기억을 파는 사람들, 죽을 만큼이나 천재성에 집착하는 대중들, 동물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간들. 이야기는 저마다의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의 허를 찌르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겨우 단편 소설 하나로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만큼 얻는 것이 많았다. 구태여 오피니언으로 이 책의 서평을 쓰는 이유도 그러하다. 마치 환상담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현실의 이야기가 내포되어있다. 필자는 스쳐지나가던 우리네 현실을 소설 속에서, 그 것도 환상적 내용으로 마주할 줄 몰랐다. 극적인 만남이었던 만큼 깨닫는 점이 많았다. 물욕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 재능에 대한 이야기, 동물에 대한 이야기…. 모두 구체적으로 풀어낸 비문학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다. 비유할 만한 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옛 설화를 읽으며 느꼈던 교훈을 이따금 김성중 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누구는 김성중 작가의 소설이 그저 술술 읽히기만 하는, 그다지 임팩트 크지 않은 평범한 이야기라고 얘기한다. ‘국경시장’의 기억을 사고파는 것은 일본만화에서 흔하게 나올만한 모티프고, 나무 힘줄 피아노 역시 일본 만화인 ‘피아노의 숲’에서 조금 변형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대단하지 않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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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작가 

   
  하지만 작가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유하고 능하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가 쉽게 접하고 느낄 수 있는 소재들로 많은 생각을 떠넘겨 준다는 것이 김성중 작가의 특징이다.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무섭지 않은 환상담은 우리를 안고 올라가 여러 가지 다채로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 또 김성중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이 실험적인 태도를 견주어 보았을 때, 앞으로 그녀가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작가의 마구잡이 개입이 적나라한 ‘관념 잼’, 마치 최근의 사진첩부터 들춰보는 것 같은, 거꾸로 가는 ‘에바와 아그네스’ 등이 그렇다. 특히 ‘에바와 아그네스’에서는 맨 첫 줄을 ‘어떤 책은 거꾸로 읽을 때 가장 아름답다.’라고 단언하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파격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실험적 태도는 작가의 발전을 기대하게 한다.
 
  요즘 들어 내 주변에는 “소설은 재미없다”는 사람들이 우글댄다. 나 역시도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재밌는 것이 너무 많은 21C에서, 소설은 활자라는 매체부터가 우리와 거리감을 가진다. 그러나 내가 여전히 소설을 읽는 이유는 영상이나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스릴과 만족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설은 단순히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많은 여운, 진정한 ‘재미’를 준다. 이런 측면에서 김성중 소설은 그런 내 소설적 요구를 흔쾌히 들어줬던 작가다. 쉽게 읽히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현실적 문제에 대한 고민들을 반문해준다. 만약 소설에 수능 이후에 손을 뗐던 사람이라면 이 소설로 그 취미를 다시 시작하는 건 어떨지, 권유하고 싶다. 아마 새로운 입문 도서로 탁월할 것이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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