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력에 맞서 오르는 작가, 손보미 [문학]

요즘 같은 날씨에 찾아 읽기 좋은 소설가, 손보미 작가
글 입력 2016.11.1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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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을 써내려가려 키보드에 손을 얹기 직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이번 주에 본 연극에 대해서 쓸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얘기를 잠시 미뤄두고 한 작가를 소개하려 하는 이유는, 단지 노트북 바로 옆에 그녀의 책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소재를 재칠만큼 그 책이 최근의 생각들을 빠르게 앗아갔기 때문이겠다.

  손보미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건 어느 여름날이었다. 한창 비가 내리던 날, 집과 조금 먼 문고에서 그녀의 소설, 「폭우」를 만났다. (제목과 절묘하게 닮은 날에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까지도 그녀의 소설 중 나는 「폭우」가 가장 인상 깊다.) 두 부부의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게 맞물리면서도 어떠한 해결이나 폭발 없이 끝나는 소설이 참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무대책의 결말이 ‘에이, 이게 뭐야.’에서 점점 ‘그래. 근데 이게 현실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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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단편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호기심에 손보미 작가의 소설을 더 찾아 읽었다. 「담요」, 「임시교사」, 「육인용 식탁」… 결국 그녀의 단편소설집까지 냅다 빌려 읽고 몇 번이고 생각에 젖었다. 그녀의 구성은 독자를 휘어잡는다. 매우 좋은 소설은 아니더라도 가끔 그 특이한 구성에 피식 웃게 된다. 특히 그녀의 전매특허, 의심의 연속은 소설 전체에 계속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데, 결국 그 긴장감이 완연한 채로 어떠한 충격이나 해결 없이 소설이 끝이 난다. 의심만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유쾌한 반전을 던져준다. 「여자들의 세상」에서의 반전은 그간 계속되어온 의심을 “빵!” 터트린다. 그러나 그 반전 역시도 어마어마한 충격이나 갈등을 낳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 그 긴장, 그 묘함 그대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어느 누구는 이러한 결말을 ‘허무’라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허무’를 이렇게 바꾸어 부르고 싶다. “여운”.

  이 “여운”은 위에서 얘기했던 ‘현실’을 끌고 오는데, 이것이 제법 묵직한 충격을 준다. 우리네 현실에서는 여러 갈등이 반복되지만 대부분의 갈등이 표출되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서 삭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어떤 말을 속으로 하고 있을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손보미는 소설로 담아낸 듯하다. 그녀의 나이에 비해 제법 공감이 어려운 주인공을 가져왔다고 해도, 그것은 그것대로 특색 있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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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행우주를 끌어다 쓴 소설도 있다. 그녀의 등단작 「담요」가 「애드벌룬」로, 같지만 다른 이야기가 되어 독자를 반기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범주 안에서 손보미 작가는 독자가 의심하게 만들고, 갈등하게 만들고, 또 한없이 허무하게 만들다가, 허무를 여운으로, 여운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재주꾼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그녀의 소설을 마침내 ‘소설의 중력에 맞서 날아오른다'고 표현했다. 그녀의 소설은 우리에게 어려운 주제를 던져주진 못해도 한없이 떠오르는건 자신 있게 해낸다. 그리고 중력마저 거스르고 이 갈등, 이 의심, 심지어 평행우주까지 모든 것을 쓸어가고야 만다. 그 것이 바로 손보미 소설이다.


  필자는 언제나 그랬듯 본인 의견에 대해 소심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결론에 끼워 넣는다. ‘이 오피니언은 어쩌면 필자의 자의적 해석이 지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 젊은 작가의 단편 소설에 대해 ‘한 번쯤 읽어보세요.’라고 권유하고 싶다. 날씨마저 오락가락하는 요즘 같은 날, 오락가락 하는 소설 몇 편을 읽으며, 오락가락 생각해보는 것. 그 것만큼이나 흥미롭고 새롭고, 그리고 어렵지 않으면서도 고민하게 되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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