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망 속에서 울려 퍼지는 기적의 선율, 영화 '피아니스트'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10.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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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는 스필만이라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2차 세계 대전 중 자행되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독일 나치의 폭력을 생생히 보여주는 영화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영화에서 피아노 음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이 영화에서는 특히 음악의 가치가 빛난다. 독일군 장교 앞에서 스필만이 손을 떨며 혼신의 연주를 해내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계속 명장면으로 꼽히며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는 경우가 많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이 영화를 5번 넘게 봤는데, 볼 때마다 어쩜 이렇게도 담담하게 참극을 그려냈을지 늘 감탄하곤 한다. 특히 중간에 나오는 쇼팽의 음악의 선율이 묘하게도 그 비극과 잘 어우러져 그 음악을 찾아 들을 때가 많은데, 이제는 들을 때 쇼팽에 대한 생각보다는 영화 피아니스트에 대한 생각이 앞서게 된다.

영화는 스필만이 폴란드 라디오 방송국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방송국에 갑작스런 폭격이 가해지지만 스필만은 멈추지 않고 계속 연주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은 잔잔한 쇼팽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극을 강조한다. 가족과 다 헤어진 후 은신처에 거주하게 된 그는 피아노를 보고는 망설이다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 들킬까봐 허공에 손을 올리고 피아노를 친다. 그 음악은 영화 속의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스필만과 관객에게는 들리며 애상적 정서를 배가시킨다. 마지막으로 독일 장교와 만나 연주를 하게 되는 스필만은 손을 마주 비비며 선뜻 시작하지 못하지만 연주가 시작되고부터는 마치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피아노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씬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처절한 울부짖음과 같이 들리는데,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스필만이 어린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이 진한 먹먹함과 밀도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 세 번을 제외하고는 쇼팽의 음악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데, 이렇게 음악의 출현 빈도는 낮춤으로써 음악이 등장하는 씬에서 특히 강렬한 인상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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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화는 1인칭 시점으로, 주인공 스필만의 시각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이는 관객이 상황을 직접 보는듯한 느낌을 부여하여 사실감과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스필만의 시선을 따라가는데, 이에 관객은 스필만이 겪는 전쟁의 목격자가 된다. 스필만이 다리를 다친 상태로 게토 안을 걸어 다닐 때, 카메라는 그의 걸음 속도대로 천천히 움직인다. 독일군에게 끌려간 동생을 찾을 때는, 카메라의 일정치 못한 움직임을 통해 동생이 걱정되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도로타의 집에서 일어난 후 스필만의 시선으로 첼로를 연주하는 도로타를 문틈으로 지켜보는 장면에서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한때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슬픈 감정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이렇듯 스필만의 시각을 철저히 좇고 있으며, 스필만이 바라보는 세상을 무덤덤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인 화면과 사실감 있는 대사들은 별다른 과장 없이 사실성을 유독 강조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사가 많지 않고, 나레이션 또한 없어서 관객이 능동적으로 영화를 해석하도록 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정보를 주지 않는 대신에 카메라 앵글이나 쇼트 기법을 사용하여 간접적인 정보를 주고 있다. 스필만의 표정을 클로즈업 기법을 통해 촬영하면, 관객들은 별 다른 대사 없이도 스필만의 상황이나 기분을 파악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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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계속해서 낡고 바랜 것 같은 느낌의 색으로 가득한데, 높은 채도보다는 주로 낮은 채도의 색을 사용하여 스필만의 고독한 상황과 전쟁으로 인한 우울함과 절망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인물들의 위치를 통해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독일장교와 스필만이 만나는 장면에서 독일장교는 단상 위에 서서 스필만을 아래로 내려다본다. 반면 스필만은 독일장교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데, 이는 강자와 약자의 대비되는 구도를 표현한다. 또한 독일장교의 강인한 뒷모습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방법으로 독일장교의 권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스필만의 왜소함을 부각시킨다.

영화는 별다른 교차 없이 시간의 흐름에 맞게 편집되었다. 주로 년도와 날짜로 씬을 나누었는데, 나레이션 없이 자막만으로 씬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에는 나레이션보다는 담담한 자막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씬의 시작은 스필만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거나, 배경을 길게 테이크하여 표현된다. 그리고 씬과 씬의 연결에는 주로 현재의 씬에 페이드 아웃을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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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점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씬과 씬 사이에 별다른 긴박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담담한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독일 장교와 스필만이 게토 안에서 마주치는 장면뿐인데, 이 장면 역시 곧이어 스필만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통해 금방 긴장이 해소되어버린다. 이처럼 영화에는 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오히려 사실적이고 담담한 연출을 통해 인위적이지 않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수많은 비참한 상황을 겪어도 그 모든 일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거듭나게 되는 스필만의 모습을 보고, ‘절망 속에서 울려 퍼지는 기적의 선율’이라는 영화 문구를 확실히 깨닫고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영화였다.


[김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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