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계와 이야기, 수많은 조각들의 모음- 연극 단편소설집.

글 입력 2016.08.2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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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이야기,
수많은 조각들의 모음
연극 단편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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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조각들

리사와 루스의 갈등은 크게 보면 스승과 제자의 갈등이다. 그들이 맺고있는 관계 중 가장 표면적인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의 갈등은 스승과 제자의 갈등으로만 바라봐서는 이해할 수 없다. 리사와 루스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를 넘어서 부모와 자식, 가장 절친한 친구, 동업자, 우상- 그리고 어떤의미로는 연인까지. 수많은 관계들로 정의될 수 있고, 그렇기에 수없이 많은 방면으로 바라봐야한다. 이것이 작품 단편소설집이 매력적인 이유이며-또 해석하기 쉽지 않은 이유이다. 수많은 것들이 하나하나 엮여 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극 처럼, 극의 제목인 Collected Stories처럼. 이번 후기는 극에 대한 작은 감상 조각 하나하나를 모아서 만들어보고자 한다. 



#01. 관계


 우상,멘토. 일방적인 관계
 
처음 리사와 루스가 만났을 때, 루스에게 리사는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수 많은 사람 중에 하나.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하지만 리사에겐 아니었다. 리사에게 루스는 단 한사람이었다. 자신의 10대를 만들어 준, 자신을 이 꿈으로 이끌어준.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준 존재. 루스를 직접 대면하고 배우기 전부터 리사에게 루스는 단 하나뿐인 우상이었고, 멘토였다. 비정상적으로 정신사나운 리사의 태도나 말투는 동경해오던 우상을 만났을 때의 그 흥분을 그대로 전해준다. 그래서 극의 초반, 극은 거의 완벽하게 루스의 페이스대로 흘러간다. 리사는 루스의 말에 제대로 답조차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 바쁠뿐. 리사 혼자서만 일방적으로 루스와 관계를 맺고있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자, 혹은 딸. 맞잡은 손.
 
리사가 루스의 조교로 들어오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은 그것이 유지된다. 루스는 리사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조교 중 하나로 본다. 리사는 루스를 동경하기에, 사랑하기에 루스의 질책이 더욱 무섭다. 둘 사이의 권력관계는 분명하다. 한 사람만이 매달리는 불안정한 관계. 리사가 그 손을 놓아버리려는 순간, 루스는 손을 내민다. 리사의 손을 잡아준 것도 아니다. 단지, 참치샐러드를 같이 먹자며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그 손을 붙잡는 것은 또 다시 리사이다. 
 
리사는 항상 가족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다. 리사는 그들을 잡았지만, 그들은 리사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기에. 하지만 루스는 달랐다. 비록 먼저 잡은 것은 리사일지라도 손을 내밀어 주었다. 손을 맞잡은 순간. 누가 먼저 손을 잡았는지는 중요치 않게 되었다. 둘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 자체만이 중요할 뿐. 가족의 옷 끝자락을 잡고 주저앉아있던 소녀는 그렇게 성장한다. 루스도 마찬가지이다. 일평생 혼자 살아온 루스는 표현하지 않지만 늘상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예민한 성격 탓에, 또 자존심 탓에 드러내지 못했을 뿐. 리사에게도 마찬가지로 까다롭게 굴었다. 하지만 이 소녀는, 그것을 다 당하고도 내민 손을 마주 잡아온다. 오랜만에 자신은 다른 사람과 실제로 소통했다. 루스는 또 그렇게 리사에게 멘토가, 또 부모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리사는 루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제자이자, 딸로서. 
 
 
친구. 동반자. 드디어 평형을 이룬 추.

루스가 리사를 마음에 들일 수록, 둘 사이의 권력관계는 불분명해져 간다. 극 초반 루스에게 분명히 기울어져있던 저울은 차츰 균형을 찾는다. 그 저울의 추는 둘이서 우디 앨런에 관해서 토의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리사는 루스의 말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루스의 말에서 무언가를 캐치 해 아무도 모르는 루스의 과거를 캐기도 한다. 루스 또한 , 순간의 망설임 후 리사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스승, 부모. 루스에게 향해있던 저울의 눈금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중앙을 가리킨다.
 
리사가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이 시점부터이다. 리사에게 루스는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이다. 스승이자 부모, 멘토, 우상, 친구.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소중한 존재. 그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알고있기에 더욱 더 루스에게 말을 하기가 두렵다. 또한 중첩 된 루스와의 관계가 두렵다. 그랜드 스트리트지에 원고를 넣고, 등단이 확정 되었음에도 루스에게 한참 동안 이를 말하지 않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루스는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스승이다. 친구로서 또 스승으로서 가장 먼저 말해야 할 존재지만-동시에 가장 잘나고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존재이다. 또한 루스와 리사는 구세대와 신세대를 상징한다. 뒤안길에 접어든 구세대에게 신세대는 대견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불편한 존재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자신의 영광을 반추하게 하고, 초라한 현재의 자신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 리사는 이 불편함을 잘 알고있다. 그래서 루스에게 입을 다문다.
 
루스 또한 이 모든 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루스에게 리사 또한 정말이지 소중한 존재이다. 제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친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이 못내 서운하다. 또, 그 안에 구세대인 자신을 향한 배려-혹은 못난 감정을 품게 될 자신에 대한 우려가 섞여 있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 서로가 가장 소중한 이 둘은,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리사가 뉴욕타임즈 서평에 실리고 난 후, 둘의 관계는 또 한번의 변화를 겪는다. 스승,부모, 그 어떤 것. 어떤 것이든 루스가 우위관계를 선점하고 있던 관계에서 같이 글을 쓰는 작가로서 '동업자' 혹은 '동반자'로서의 위치변화이다. 루스는 리사가 자신의 신작을 가장 먼저 읽어주길 바란다. 항상 루스에게 평가당하기만 하던 리사는, 처음으로 루스의 글을 평가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리사는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자신의 평이 혹여 루스의 심기를 거스를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루스와의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스는 그런 리사의 태도가 서운하다. 가장 먼저 읽어주길 바라서 보냈는데 말 한마디 없는 리사가 야속하다. 여기서 리사는, 루스의 소설 캐릭터가 자신을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다시, 추가 기울어졌다.

신인 작가로서 성공한 리사는, 성공했음에도 더욱 불안해 한다. 작가는 이야기를 쓰는 일. 짧은 자신의 삶동안 겪은 모든 일은 단편소설로 다 풀어냈다. 더 이상의 소재가 없는 것이다. 이에 리사는 유태인의 문화를 알고있는 루스가, 그만큼 풍부한 소재거리-이야기 거리를 가지고있는 루스가 작가적인 마인드로서 부럽다. 그리고, 일이 터진다. '장편소설'을 써낼만한 이야기가 자신에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편소설로서 작가의 인생을 걸어온 루스는 장편을 써야만 제대로 된 작가가 된다고 말하는 리사가 불편하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항상 그렇다. 제자가 올려다 보던 스승은 어느새 늙고 작아지고, 제자는 어느새 성큼 성장해 있다. 제자가 스승을 내려다보게 되는 일은 당연하고도 흔한 일이다.  그리고 일이 터진다.


당연한 수순, 파국
 
리사는 루스와 델모어 사이에 있던 일을 소설로 써낸다. 루스의 삶은 리사의 손에 의해서 다시 써내려가진다. 루스는 이에 분노한다. 자신의 삶을 리사가 훔쳤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리사는 루스에게 가르침받았던 내용 하나하나를 들면서 이는 '정당하다'고 말한다. 리사가 루스의 삶을 글로 써낸 것은 그만큼 루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루스를 사랑하기에, 루스가 그 자기학대의 경험에서 벗어나길 바라기때문이다. 루스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루스를 사랑해 마지않기에 그의 말 한마디면 자신은 그만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루스는 리사의 캐릭터는 곧 자신이라고 말한다. 리사는 그 캐릭터는 선생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루스는 마음을 연 단 한 사람, 리사에게만 말했던 그 소중한 추억이 모욕당한 것 같아 배신감이 든다. 리사는 오히려 루스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다. 그가 루스의 이야기에 그토록 감명을 받은 이유는 루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뿐이다. 리사의 도덕적인 잣대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루스에 대한 악의는 전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리사와 루스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리사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루스와 관계를 끊게 된다. 제자에게 모든 것을 주고자 했던 스승의, 스승을 너무도 사랑했던 제자의 말로는 관계의 파국이었다. 이 파국은 마치 정해진 길을 걷는 것처럼 서서히, 또 당연스럽게 이뤄진다. 이들은 이럴 수 밖에 없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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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작가, ‘자신의 이야기’의 범주.
 
그것은 이들이 스승과 제자이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이들이기에 일어났던 일이다. 글을 쓴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상세할수록, 치밀할수록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 기반은 경험에서 온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쓸 수는 있으나, 이는 깊이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어떤 장면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서 직접 그 장소에 가서 살아봤다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결국 그 소재는 자기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야기와 작가를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또 완벽하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리고 그 자신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경험했던 주변사람도 포함된다. 작가의 주변사람이 소재로 이용되는 일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주변 사람은 작가 그 자신은 아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간접경험으로라도 작가는 경험한다. 주변사람들의 경험도 작가의 경험화 되는 것이다. 특히나, 매우 깊은 관계에 있는 타인과는 스스로를 분리해내기가 쉽지 않다. 
 
리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제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제게 뭐가 있겠어요? 늘 같은 일상!” 지금까지의 소설에 모두 쏟아 부은 자신의 삶에 리사는 초조해 한다. 리사에게서 자기 자신을 빼면 남는 것은, 루스 하나 뿐이었다. 그런 리사가 루스의 이야기를 소설로 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런지도 모른다. 루스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낸다. 리사가 루스의 소설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리사가 루스에게 반발하는 것은 이 시점이다. 작가는 자신의 품에 들어온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써야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루스 또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품으로 들어온 이 이야기를 글로 써 내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아마 리사는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처음에 극을 볼때는 리사가 밉기만 했다. 어리석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 극을 곱씹을수록 둘중의 ‘정답’은 없다는 생각만이 강해진다. 루스는 리사에게 작가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내어주는 역할이라 말을 한다. 리사는 루스가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내줬다. 그에 대해 루스는 말한다. “난 내 목소리가 있어!” “선생님은 쓰실 생각이 없었잖아요!” 목소리가 있지만 그것을 내지 않을 것이라면, 그게 목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델모어와의 일에 대해서만은 루스는 ‘목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캐치한 것은 바로 옆에 있던 리사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소설으로 쓴 것이고 말이다. 스승과 제자, 너무도 가까웠던 둘, 작가,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이 뭉친 순간 이 파국은, 앞서 말했듯 당연했던 걸지도 모른다.
 


#03 아무도 몰랐던 관계- 연인.
 
“거기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없었단다. 그는 성불구자였어!”
 
단말마처럼 질러진 루스의 말에, 불현 듯 무언가 떠올랐다. 루스가 이렇게 불같이 화내는 이유가 이해가 가면서, 동시에 리사는 정말로 루스의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델모어와 루스 사이에 에로스는 없었다. 단지 델모어를 향한 루스의 동경만이 있었을 뿐. 비록 리사는 델모어와 루스의 관계를 에로스로 해석했지만, 루스의 이야기에서 자신을 본 것은 아닐까. 기성 작가, 그리고 신인 작가. 동경으로 존경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는 그 모습. 어쩌면 리사는 루스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닐까. 그래서 거기에 그토록이나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루스와 리사의 관계도 처음은 그에 지나지 않았다. 루스가 델모어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처럼, 리사 또한 루스에게 그런 존재였다. 루스가 델모어에게 폭행까지 당하면서도 스스로를 혹사시켰던 것처럼 리사도 루스의 모진 구박을 견뎌내며 조교생활을 버텼었다. 동경, 그리고 그에 따른 무조건 적인 희생. 무조건적인 사랑. 어쩌면 리사는, 루스가 델모어를 사랑했던 것처럼 루스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루스와 델모어 사이에 에로스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 둘의 차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리사에게 루스는, 우상이자 멘토, 스승이자 부모, 친구이자 동업자-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연인이었을런지도 모른다. 본인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연심. 리사는 계속해서 루스에게 ‘이것은 캐릭터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건 제 소설이고, 제 이야기이고, 이 캐릭터는 선생님이 아니예요. 소스를 얻은 것은 루스였지만 결국 그것을 풀어낸 것은 리사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 아마 자신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델모어에 대한 루스의 감정을 풀어낼 때는 루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어쩌면 리사는 정말로 ‘자신의’이야기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04 오이디푸스, 성장.
 
 루스는 델모어의 이야기를 품고 살았다. 델모어 사건으로부터, 델모어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내지 못했다. 리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루스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내지 못했다. 루스가 신성시하며 품고있던 델모어와의 일은 만천하에 까발려졌고, 더 이상 그것은 ‘루스만의’ 무언가가 아니게 됐다. 루스는 델모어로부터 분리 될 수밖에 없었다. 루스는 리사를 버렸다. 리사는 루스로부터 버림받았다. 아이는 아버지를, 스승을 죽이고 성장한다. 자신의 안의 델모어를 죽인 루스는, 루스를 죽인 리사는 드디어 성장해 어른이 되었다. 



#05 Collected Stories, 이어지는 이야기.

극 중, 루스가 리사에게 처음으로 평가를 부탁했던 소설 속 주인공은 리사와 닮아있다. 소설 속주인공들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채 끝이 난다. 엄마는 자신의 병을 딸에게 알리지 못하고,딸 또한 자신의 마음을 알리지 못한다. 리사는 이 소설을 읽고 루스에게 '배신감이 든다'고 말한다. 리사와 닮은 캐릭터가 결국 엄마와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서사는 어쩌면 루스와 리사의 결말을 나타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루스가 쓴 소설대로 둘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리사가 이 결말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 또한, 이런 미래를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연극의 원제는 Collected Stories였다고 한다. 물론 Collected자체가 모음집을 뜻하지만, 연극은 큰 이야기 하나가 아니라 이렇게 작은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들어졌기에 저런 원제인 것이 아닐까. 마치 작가가 소재로 쓰기 위해서 하나하나 모아놓은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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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먹먹. 물들다.

180분. 2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을 지닌 이 극은 큰 장소변화도, 인물변화도 없다. 대부분 루스의 작업실에서, 리사와 루스 이 두 등장인물로만 이루어진다. 기나긴 러닝타임과 더불어, 두 배우가 나와서 큰 장소변화도 없이 끊임없이 대화만을 나누는 이 극을 혹자는 루즈하다고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 극을 이루고 있는 그 미묘한 분위기들과, 흘려들어도 될법하다 생각했던 대사들이 후반에 단서로서 척척 들어맞는 것을 보면 이 연극은 절대 루즈할 수가 없다. 외려 온 몸의 모든 촉각을 다 곤두세우고 봐야만 하는 극이다. 극에서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지만, 둘의 태도나 서사로 드러나는 관계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물론.젠가처럼 하나하나하나 쌓여가는 대사들, 그리고 그 하나하나를 다시 빼내어 와르르 무너지는 관계를 보는 쾌감은  엄청나다. 훅 치고 올라오는 감동이 아니라, 곱씹을수록 가슴을 먹먹하게 물들여오는 감동. 리뷰를 다 써낸 오늘도, 다시금 곱씹게 될 것만 같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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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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