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와 비평가, 그리고 미학자 [예술 철학]

예술계의 삼위일체, 영생을 비나이다
글 입력 2016.08.1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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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흥미로운 동물이나 수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저승길 초입에 서 있는 관문을 지키는 파수꾼개, 케르베로스는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동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저승으로 향하는 청동문 앞에서 들어오려는 원혼들을 위로하고, 산 자가 난입하거나 죽은 자가 되돌아 나가는 것을 막는다. 이러한 케르베로스의 특징 중 하나는 머리가 셋이라는 것이다.(헤시오도스에 따르면 50개라고도 한다) 세 개의 머리는 보다 폭 넓은 시야로 가공할 위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삼자간의 갈등은 되려 자멸을 초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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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항아리에 숨은 채 케르베로스를 보는 에우리스테우스.


 문화 예술계에도 예술이라는 공통된 몸을 지니면서도, 각각 다르게 뻗어 나온 머리들이 있다. 예술가와 비평가, 그리고 미학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미적 경험에 있어서 관심사가 같은, 이른바 친족임에도 심각하게 반목할 때가 있다. 예술이라는, 공통된 대상에 골몰하면서도 영역상의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때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서로의 존재 자체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한다. 예술가들은 비평가나 미학자의 너무도 권태로운 추상성에 머리를 흔들고, 반대로 비평가나 미학자는 예술가들의 영감을 몰지각한 우연성이라 낮잡는다. 비평가와 미학자는 서로의 중복되는 부분에 민감하게 맞선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을 그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영화 ‘국제 시장’에 대해 비평가 및 미학자들이 거센 혹평을 쏟아내는 것과 관련하여 배우 유아인이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그의 SNS를 통해 “’객’이 그대들의 사명이라면 이미 패몰한 우물에서 시끄러운 싸움으로 끝내지 마시고, 고여 썩은 물에 파도를 만드는 지혜를 보여 주시라”며, “말의 효용은 어디로 간 건가. 그대들의 끈기라면 스스로를 투계로 몰지 말고, 기꺼이 투사가 되는 기개를 보여주시길”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작품을 이념과 추상 담론으로만 해체하는 듯한 비평가나 미학자들의 태도에 일침을 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 양상은 작품을 통해 인식하는 각각의 방식이 차이를 보임으로써 나타난다. 예술가는 작품창작을 통하여 미적 경험을 ‘느끼기’ 바라고, 비평가는 창작된 작품을 통하여 미적 경험을 ‘재인식하기’ 바라며, 미학자는 미적 경험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예술을 대하는 서로 상이한 태도가 갈등의 도화선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미학자는 중개인으로서 예술가에게 예술상의 ‘법칙’을 가르치려 듦으로 인해 오히려 그에게서 비난을 받게 되고, 비평가는 예술가의 작품을 평가하는 일에 미학자가 끼어들었다고 미학자를 비난할 때, 예술가가 다시 여기에 비평가를 반박하고 나선다. 이렇듯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는 ‘예술 수호’라는 이름 하에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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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자 진중권이 여러 예술가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엮어 만든 책, 예술가들의 비밀. 미학 이론에 집중해 온 미학자가 창작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와 관련하여 예술 철학(미학)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 하자면, 미학자는 미학을 향해 성토하는 예술가와 비평가의 비난에 겸허해야 한다. 이에 대해 미학자 조요한은 “만일 미학이 예술과 비평의 상위개념이라 스스로 칭하며 추상적인 이론에 치우쳐 그것을 구체적인 미적 대상 속에 적용시키지 못한다면 죽은 학문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동안 미학자의 ‘미의 철학’이 미적 향수를 함양시켜 왔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로 논란이 있어왔다. 이제 미학은 참신한 ‘예술 철학’으로서 다른 경험양식과 더불어 예술의 기능을 밝히고, 인간 생활 속에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 좀더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미학을 고답적 담론과 같은 상아탑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인간에 맞닿은 실존적 학문으로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와 비평가, 미학자 각자가 스스로의 위치를 지키면서 예술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분명 괄목할만한 결과로 이어진다. 비평가는 자기의 편견을 소거하면서 미적 인식을 가능한 한 완전케 판단하는 일에 미학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 미학은 개별적인 예술작품에 임하여 어떻게 생생한 접근을 꾀하는가에 대해 비평가에게서 배울 수 있다. 아울러 예술가는 감각적인 작업을 미지의 세계에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비평가나 미학자를 통해 재인식하고, 지각함으로써 영감을 지속적으로 선순환할 수 있다. 예술사에서 기억되는 거장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T.S. 엘리엇, 조지 산타야나, 레너드 번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 등) 이러한 미학 이론과 비평, 창작이 형성하는 삼각형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예술관을 확장한 바 있다.

 작품을 둘러싼 소음은 보다 풍성한 예술 담론을 향해 화음을 맞춰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때로는 그들의 동거가 위태로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려 예술이라는 거시적 시각에서 예술가와 비평가, 미학자는 서로에게 산 진 거북이요, 돌 진 가재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예술에 관한 한 상보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혈혈단신으로 꽤나 고독하고 혹독한 예술계를 버티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를 마주한 그들은 서로를 보호하는 지원군이다. 삼두가 반목과 질시에서 벗어나, 인간과 삶에 치여 예술계를 향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그들이 이끌 삼두마차는 가공할만한 속도로 청동문 너머, 예술의 지평을 넓힐 것이다.


[최연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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