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몸짓으로 말하다, 무용-공연예술 창작산실 (2) [공연예술]

글 입력 2016.06.1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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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 창작산실 시범공연
무용 (2) - 공연감상
'몸짓으로 말하다'
2016.05.13 (금) 13:30 ~ 18:50


   2016년 5월 13일 금요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예술 창작산실]의 무용 시범공연을 보기 위해 대학로를 방문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 예술이 있고, 다양한 취향의 관객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 없는 장르의 예술을 보는 시간에 좋아하는 공연을 한 번 더 보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고, 주로 좋아하는 장르는 뮤지컬, 연극, 그리고 뮤지션들의 콘서트였다. 무용이라는 장르는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예술처럼 보였고, 특히 현대무용 공연은 태어나서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현대무용'은 뮤지컬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춤, 아니면 춤을 다루는 영화(예:스텝업)에 나오는 춤이 전부였다. 고전무용이 가지고 있던 깐깐한 규칙들을 깨버린 춤, 유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동작들이 난무하는 춤. 모든 '현대'자 붙은 예술들이 그렇듯 '난해함'이라는 편견이 따라붙는 무용. 아무래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현대무용은 난해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보면서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편견보다 어마어마한 난해함도 있었지만. 반대로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춤도 있었다.

   나는 이번에 태어나 처음으로 '현대무용'을 관람했다. 시간 관계상 20분짜리 공연을 딱 세 편 보고 왔는데, 세 편이 서로 너무 달라서 신기했다. 세 공연에서 받은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순서대로 난해함, 아름다움, 그리고 무언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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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현대무용, 난해함.

   창작산실 시범공연중에서도 처음으로 본 작품은 '박소정 콜렉티브 콜라보레이션'의 [음-형:공간]이었다.

[음-형:공간]의 컨셉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춤을 출 수 있다.

   [음-형:공간]은 소리와 공간, 움직임과 빛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공간과 에너지를 창출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훔을 움직임이라는 큰 테두리에 넣고 그 안에서 음악, 무용, 설치 미술가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전이하며 실험한다.

   설명에 나온대로 음악과 무용과 설치미술이 모두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공연이었다. 특히 무용의 배경이 되는 모든 음악과 소리들을 즉석에서 마이크에 대고 만들어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상적이었는데...나에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난해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현대무용'에 대한 편견 중에서 '난해함'을 극도로 강조한 느낌이었다.

   두 명의 남녀가 테이블에 앉아 마이크에 대고 소리-음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음", "아아", "취" 같은 소리만 내고, 무용수들은 이에 맞춰 제자리에서 경련하듯 몸을 움직인다. 이 도입부만 5분이 넘게 해서 처음에는 정말 당황했다. 아, 나는 스텝업에 나왔던 것처럼 타이즈 입고 우아하지만 조금 더 생동감있게 추는 게 현대무용인 줄 알았는데. 이런게 바로 진정한 현대무용인 것인가. 정말 난해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빔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다큐멘터리 영상을 틀어서, 빛과 파동이 어떻게 공간을 채우는지에 대한 원리를 설명해준다. 정말...어려웠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알아들을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현대무용, 아름다움

   두 번째 공연은 내 상상속의 현대무용 그 자체였다. 정말 아름다워서 감탄이 나왔다. 사실 이전 공연을 보고 대기실로 올라와 꾸벅꾸벅 졸면서, 그냥 지금 나갈까..? 아니면 이 다음 공연만 보고 갈까? 하고 약간 갈등했다. 이게 현대무용이라면 나랑은 정말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 공연을 보고 생각이 바뀌어버렸다.

   이번 공연은 '신현지'의 [인간]이었다. 본인의 이름 석자를 걸고 만드는 무용! 박소정 콜라보도 그랬지만 신현지 안무가는 아예 이름 석자를 그대로 썼다.

인간 본연의 모습은 무엇인가

   인간성이 상실된 시대에서 믿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온라인 속에 숨어 소통하는 관계만이 마치 진실인 듯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작품은 몸 자체가 인간성이며 다시 우리가 찾아야 할 근본임을 움직임으로 풀어낸다.

   사실은 설명을 읽고 나서는 갈등이 심화됐다. [음-형:공간]보다 더 난해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예감이 드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이것만 보고 나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공연장에 들어갔는데, 몸짓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

   첫 시작. 한 남자가 무대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주홍빛 조명이 은은하게 웅크린 등만을 비추고 있는데, 맨 처음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 사람이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얼핏 보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가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게 통용되는 시대가 온 건가? 재작년에 프랑스 누드 발레단이 19금으로 우리나라에서 공연했다더니 2년만에 전체관람가가 된 것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살구색 쫄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진짜 누드인 줄 알았다(기대한 것 아님). 그 무용수의 전신이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주홍색으로 빛나는 게 뭔가 신기했다. 가만히 있어도 은근하게 빛을 내는 몸이 춤을 추면서 이리저리 휘둘러지니, 온통 검은 색뿐인 무대에서 주홍빛 잔상을 남겼다. 그 움직임에서 힘이 느껴졌다. 신현지 안무가가 '인간이 되찾아야 할 근본'이라고 했던 우리 몸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그래서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남자가 무대 한가운데에서부터 천천히, 뒷걸음질쳐서 사라졌다. 조명에서 멀어지니 몸의 선이 흐릿해지면서 얼핏 누드인 것처럼 보였다. 점점 더 멀어질수록 주홍빛이 옅어지며 회색을 띠고, 이목구비가 사라지고, 몸의 선이 사라지면서 마지막에는 아주 잠시, 마네킹 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남녀 무용수는, '무용'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유려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전의 남자가 생명력과 힘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의 듀엣은 섬세한 손끝과 발끝으로 부드러움을 느끼게 해줬다. 전자는 태초의 인간, 남녀의 구분이 없는 '인간' 그 자체를 나타낸 것 같았고, 후자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상호보완적인 존재 같았다. 태어나는 듯한 동작, 걸음마를 배우는 듯한 동작,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듯 함께 춤을 추는 모습, 키스하는 것 같은 동작, 그리고 죽음을 나타내는 것 같은 동작. 이 모든 것을 통해 몸이 사는 삶을 엿본 듯한 기분이었다.

   이 모든 동작들이 검은 허공에 잔상을 남기고 내 머릿속에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범공연에서 뽑혀 연말에 제대로 무대에 올랐으면 하는 공연 1위였다. 물론 단 세 편밖에 못 봤지만 말이다.





세 번째 현대무용, 무언극

   이 작품은 진짜 무언극 같았다. 연출의 힘이 많이 돋보여서, 대사 없는 연극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의 다양한 장르 간에는 서로 교류도 있고, 그래서 어느 정도씩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다. 수학시간에 배운 교집합처럼. 이 세 번째 무용은 연극과 무용 사이에 걸쳐진 느낌이었다.

'FLOW Dance'의 [제 3의 선택지-마콤(maqon)]

불완전한 존재들, 그들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고통일까?

사무엘 베케트의 'END GAME'을 모티브로 부조리극의 구조와 형식과, 그로테스트하고 분절된 몸의 언어를 융합함으로써 작품의 주제인 '이데올로기의 허황함과 불합리성'을 보여준다.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에서 모티브를 따서 그런 것일까? 연극적인 연출이 많이 보였다. 처음, 한 여자가 발걸음을 내딛는데, 발치에 따라붙은 사람들이 그 걸음을 손으로 직접 옮겨준다. 힘을 들이지 않고 타의에 의해 걷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걸음을 앞서 걷는 남자가 손전등으로 비춘다. 모든 레퍼토리가 끝나고 그 여자가 처음과 같은 곳에서 같은 각도로 나온다. 발을 비추는 빛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매우 힘겹게 스스로 걷는다. A와 A', 그리고 그 사이에 보여주는 무용들로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춤 레퍼토리마다 연극적인 연출이 듬뿍 들어 있다. 발만을 비추는 조명, 얼굴만을 비추는 조명, 그리고 무대 중앙 아래쪽에서 쏘아올려 무대 뒤 벽면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드는 조명, 빛을 이용한 착시효과들. 그리고 고의적으로 크게 숨쉬는 소리, 춤추는 이를 마구잡이로 방해하고 잡아끄는 사람들, 마지막에는 목을 죄어오는 손길. 사람이 앞으로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무대가 뒤로 가는 것 같기도 한 연출. 춤도 아름다웠지만 연출적인 면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시범공연을 보고 나서

   나는 개인적으로 세 작품 중 뒤의 두 작품이 좋았다. 조금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었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한 작품만 뽑자면 2번, [인간]을 선택할 것이다. 주제도 무거운 듯하지만 복잡하지 않고, 그것을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해낸 것 같다. 공연시간이 길든 짧든 기승전결이 확실하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거나 찝찝함이 남는다. [인간]은 제한시간 20분보다 5분 적은 15분의 시간 동안 두 파트를 보여주었는데, 각 레퍼토리가 알차서 하나 하나를 봐도, 둘을 이어 봐도 완벽하고 깔끔했다. 더불어 인간의 몸이 가진 아름다움을 110퍼센트 발산해주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그 영상의 잔상이 남아 있다. 잔잔하게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은! 이 작품을 무대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거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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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이번 우수작품 제작지원에 선정되어서 4천만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연말에는 더 다듬어지고 아름다워진 모습으로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하고 있다! 무대에서 본다면 느낌이 색다를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난해함이 커서 부담스러웠던 [음-형:공간]도 이번에 선정되어 제작지원을 받게 되었다. 사흘동안 공연된 열여섯 작품 중에 겨우 세 작품을 봤는데, 선정작 여덟 작품 중에 내가 본 공연이 두 개나 들어있다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아무쪼록 무용계가 대중들에게도 조금 더 널리 알려지고 지원도 많이많이 받아서 더 멋진 작품들이 많이 탄생하길 바라며 이번 [공연예술 창작산실]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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