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송이 연꽃 같았던, 연극 '심청'

글 입력 2016.05.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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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심청전은 유년의 기억 속에서 미화된 채 남아있는 동화일 뿐이었다. 심청이 바다로 뛰어든 이후의 이야기가 그토록 흥미진진했더랬다. 개인적으로 상상 속의 세계를 다룬 소재를 참 좋아한다. 특히 본래 이세계가 배경인 이야기보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판타지적 요소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현실 속에 정말 그런 세계가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인당수로 뛰어내렸던 심청의 마음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절대적 관찰자의 시점으로 이미 이야기의 향방과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말을 알고 있다는 것은 때때로 작품을 보는 데에 있어서 치명적일 정도로 편파적인 시야를 갖게 한다.

   그래서 연극 ‘심청’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는 꽤나 충격이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당수로 뛰어들어야 했던 소녀의 마음, 그리고 그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아야만 했던 주변인들의 현실. 포스터 속의 소녀는 강렬한 붉은 색을 휘어감은 채 눈을 내려뜨고 있었다. 다소곳하지만, 어딘가 결연한 눈짓이다. 저 소녀는 무슨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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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간단하게 얘기했던 바와 같이, 연극 ‘심청’은 기존의 심청전을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를 통해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극중 인물이 존재한다. 바로 인당수를 지나가야만 하는 선주이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소녀를 효녀로 이상화시킴으로써 제물로 바칠 소녀를 더욱 구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의 주인공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다. 후대의 심청인 ‘간난’과, 그를 인당수에 바치고자 했던 ‘선주’. 현실적인 시각에서 출발한 ‘새로운 심청’의 이야기는 관람객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평생을 9척 상선으로 중국과 무역을 해온 선주. 그는 매 해 어린 처녀들을 바다에 제물로 바쳐온 사람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선주에게도 죽음을 맞닥드릴 때가 찾아왔고, 그는 나이 든 자신을 생각하며 머지않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상기한다. 그런 선주에게 찾아온 마지막 제물 간난. 그녀는 겉보리 스무 가마에 팔려왔지만 절대로 바다에 빠져 죽지 않겠다고 강하게 버틴다.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선주는 자신의 일과 직접적으로 관계되었음에도 간난에게 죽음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선주의 세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난을 설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선주 자리를 물려달라고 압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선주는 오히려 자신의 경리에게 간난을 데리고 도망쳐 함께 살라고 권유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간난은 오히려 죽음에 의연해진다. 간난과 선주의 관계가 정립되어갈수록 죽음은 그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처음에 그렇게 살고자 했던 간난은 마지막에 가서는 의연하게 인당수로 발걸음을 향한다. 간난은 심청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한 사후세계, 극락에 대한 이야기까지 듣는다. 초반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그녀이지만 점차 자신을 비추어 보고 자신의 삶을 정리해 갈수록 자기 자신만의 시야로 죽음을 바라본다. 단순히 사후세계, 극락의 영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 삶에서 나온 결과였다. 지금껏 살아온 기억, 관계, 감정을 갈무리하고 나 자신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단하게 만든 순간, 그녀는 의연해진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죽음,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히 길을 가도록 해 줄 수 있는 지금 죽겠다고 결심한다.

   반면 선주는 사뭇 간난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간난을 만난 이후 그녀에게 죽음을 설득하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커진다. 선주는 간난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보았다. 선주의 죽음에 대한 고민은 간난을 죽음 앞에서 도망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녀가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선주는 아마 외경에 가까운 마음과 동시에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선주는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이란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등을 떠미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는 자기 자신에 의해 죽음으로 떠밀린다. 하지만 그는 죽음에 완전히 의연해지지는 못한다. 바닥을 붙잡고, 발버둥치고, 몸을 굴린다. 사실 그의 행동은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다만 그는 간난과 같은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기 원했지만 죽음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그의 발버둥은 이에 대한 아쉬움과 절박함 때문이었거나, 혹은 결국 간난을 도망치게 하지 못한 상황 자체에 대해 후회가 남았을 수도 있겠다. 간난을 끝내 도망치게 했다면 아마 그는 좀 더 편하게 죽음을 마주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본 간난과 선주의 모습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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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의 구성적인 면에서, 심청 이야기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스타일을, 무대라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어떻게 보여줄까 궁금했었다. 먼저 막이 오르고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무대 구성이 단순했다는 것이다. 한 켠에 심청이 기거하는 방, 그리고 그 앞 마당, 왼편의 아들들이 대기하는 곳, 왼쪽 뒷편의 악단 분들이 계시는 곳. 공간의 흐름은 관찰자의 상상에 의해 비정형적으로 그 모양을 달리한다. 마당, 집 안, 때때로 바닷가가 되기도 하는 이 장소의 이미지는 청각적인 요소가 더해져 강렬해진다. 악단분들의 시원한 연주와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음향 효과의 조화는 근래 봐온 여타 연극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특히 독특했던 점은 연주자 분들의 존재로 인해 연극의 흐름이 풍성해졌다는 것이다. 극 내용의 일부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탁 트여 시원한 목소리, 감초처럼 자리하는 타악기 소리,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 주는 매혹적인 기타의 선율. 이야기의 감각적인 느낌을 잡아주면서, 더불어 중간중간 이야기 속 다양한 역을 겸하기도 한다. 마치 판소리처럼 막의 구분을 정하기도 하여 막 외의 제 3자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분들의 중간자적인 역할로 인해 관객 입장에서 무대와의 거리감이 상당히 가깝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이야기의 특성상 관객석과 분리된 채 전개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배우 분들을 비롯하여 연주자 분들까지, 관객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무대였다. 연주자 분들의 다채로운 모습은 연극을 빈틈없이 꽉 채워주셔서 정말 즐거웠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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