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련한 참신함, 극단 떼아뜨르의 [이강백의 심청]

극단 떼아뜨르의 [이강백의 심청] in 나온씨어터
글 입력 2016.04.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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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의 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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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새 연극 <심청>을 관람하러 나온씨어터를 찾았다. 대학로 로터리를 지나 골목길을 들어서서 10분정도 거리에 있는 극장!! 원래 효심이 지극한 사려깊은 인물로 그려지는 심청이 이번에는 등장하자마자 왜인지 계속 악을 쓰며 죽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알고보니, 익히들어 알고 있는 심청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심청이야기 뒤에 숨어있는 수많은 또 다른 심청들의 이야기였다. 그런 심청 중에서도 이번 심청은 선주의 마지막 심청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선주의 자리를 아들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본래 심청의 이야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선주의 이야기. 잘 생각해 보면 <심청>이야기의 숨어있는 가장 큰 수혜자는 선주로, 교묘히 숨어있는 <심청>의 화자라는 것이 이 연극의 모티브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심청들의 죽음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선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심청이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연극전반을 힘있게 이끌어간다. 죽음을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입장차이와 그들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이 리드미컬한 대사, 코러스들의 음악들과 함께 재미있게 전개되어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연극을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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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청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쉽지 않다. 자신을 팔아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죽음에 내몰린 자신의 처지…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와 이해관계들에 대해 수십번 되뇌이고 생각해본다. 누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를 죽음으로 떠밀 수 있는 힘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연극을 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삶 속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은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심청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죽음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내면적 변화는 연극을 보는 내내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아버지와 선주, 타인들의 삶, 또다른 많은 춘향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변화는 놀라웠다. 선주 또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춘향을 대하는 태도는 어느때 보다 극진하다. 마치 정말 마마를 모시는 듯한 그의 말과 자세가 그러했다. 그리고 선주가 그녀를 살리고자 하는 순간 심청은 죽음을 결단한다. 어쩌면 둘의 관계속에서 오가는 연극적 진실이 삶의 문제를 이해하게 하고 용서를 이끌어낸 것은 아닐까?

 연극은 효녀라는 타이틀에 어긋난 적이 없는, 죽음을 마치 잘 짜여진 운명적 사건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신화적 인물 ‘심청’을 살아 숨쉬고 말하는 인물로 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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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없이 죽음을 설득하고 이끌었을 선주조차 자신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는 모습이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였다. 죽음이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순리라며 죽음 뒤의 존재를 대변해 왔던 스스로도 마치 ‘떠밀리듯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선주 또한 수많은 심청들이 자신과 같이 죽어갔음을 깨닫게 된다. 선주 역을 맡은 손흥진 배우의 연기에서도 연륜이 느껴져 죽음을 다루는 연극적 상황에 깊이를 더하였다. 또한 말없이 연극 간간히 나타나 시를 읊기도 하고 천천히 사람들 사이를 움직이기도 하는 이두성 배우가 맡은 마임역도 항상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는 죽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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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주의 자리를 탐내고 있는 아들들이 심청과 그녀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또한 연극의 볼거리와 의미를 더한다. 자신만만하게 죽음에 대해 재미를 더해 설명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죽음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렇게 죽음의 또 다른 측면은 살아감이며 생동감인 것이다. 어쩌면 타인의 죽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연극적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자칫 엄청 무거워 질 수 있는 주제를 가벼움과 무거움 그 사이 어딘가를 오가면서 음악적 요소와 함께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연극이었다. 판소리의 고수와 같은 코러스들은 무거운 이야기를 흥겹게 만들어주었다.

 떼아뜨르 봄날의 공연을 이전에도 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꽤 높았던 나의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는 연극 <이강백의 심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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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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