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하지 말랬잖아

글 입력 2016.04.2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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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연극이었다. 사랑인지 무엇인지, 사랑이 어때야 하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조금의 고민도 엿보이지 않았다. 나는 연극을 보는 내내 저 각본가가 정말 사랑을 해 보았을지, 아니면 자신이 상상한 사랑의 판타지에 취해 있는 것일지 고민했다.


연극에는 총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은 첫 번째 여성과 달콤한 사랑을 하다 정작 여성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면서 연애는 막을 내린다. 두 번째 여성은 남성에게 집착하며 남자의 사랑을 의심하다가 사랑의 괴로움을 이야기하는 남자의 노래를 보고 충격을 받아 관계를 끝낸다. 세 번째 여성은 남자가 정말로 사랑했던 여자로, 극 결말에 귀신으로 등장한다. 과거 그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이 죽으면 오르페우스처럼 사랑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찾아 오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여자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남자는 진심으로 다른 여성들에게 사랑노래를 부르면서도 자신의 사랑이 흔들리지 않음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첫 번째 장면과 두 번째 장면 사이에는 그 어떠한 설명도, 계기도, 그 장면의 전환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그 어떠한 서사적 힌트도 없었다. 첫 번째 연애는 남자가 프로포즈를 거절한 순간 끝났다. 그 흔한 "왜 거절했느냐"는 질문도 없이 단순히 경악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과 침울한 남자의 얼굴이 전부였고, 난 객석에 앉아 저게 헤어진 것인지, 충격을 받아 서로 시간을 갖는 것인지, 싸운 것인지 이해하려 안간힘을 썼다. 죽음과 절박감이 결부된 드라마틱한 사랑을 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과 연애는 그처럼 깔끔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훨씬 더 질척질척한 과정의 연속에 가깝다. 사랑은 유리창 안에 예쁘고 멋있는 것처럼 전시된 작품이 아니라 매일 자라나면 깎아 주어야 하는 손톱이며, 그 질척질척함과 찌질함을 이겨내고서 상대를 품으려고 노력하는 일상이다.


첫 번째 연애는 그저 그렇게 뽀송뽀송하게 막을 내렸다. 달달하게 사랑하는 예쁜 남녀의 모습 - 프로포즈의 거절 - 끝. 그 끝이 관계의 끝인지 다툼인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두 번째 여자가 등장했다. 심지어 그 두 번째 여자는 첫 번째 여자와 동일한 배우였고, 눈에 띌만한 외관적 변형도 없었다. 다시 말해 두 번째 여성이 첫 번째 여성과 다른 인물인지, 아니면 미래 또는 과거의 첫 번째 여성인지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장면 내내 첫 번째 장면과의 연결성이 이해되지 않아 극에 몰입할 수 없었고,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관계도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극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첫 번째 장면과 두 번째 장면에서 남자의 사랑 연기는 어색하고 기계적이다. 그것이 극 끝에 이르러서는 의도된 연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정작 연극 대부분의 시간에서는 그 어색함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연기를 못 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극을 보는 내내 그 미숙한 연기로 보이는 '사랑해'와 사랑고백들, 그리고 깊이 없어 보이는 사랑에 관한 미사여구들을 견뎌내야 했다.


 그렇게 납득되지 않는 긴 극을 인내하면서 이 모든 상황을 일거에 설명해 줄 결말을 기다렸다. 결말은 끔찍했다. 여자주인공의 부탁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서 남긴 유언이 아니라 오르페우스의 영화를 보면서 장난처럼 던진 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장난으로 인해 두 여성의 사랑은 철저히 이용됐다. 남자는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로써 두 여자의 마음을 이용했고, 두 여자는 그 어떠한 순간도 연인의 진심을 갖지 못했다. 세 여자가 모두 같은 배우에 의해 연기되었다는 것, 그리고 외형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 모든 여자가 남자에게는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남자 눈에는, 그 두 여자가 보이지도 않았던 거다. 사람은 생각보다 사랑에 예민한 동물이다. 꾸며진 사랑은 그 공허가 순간순간 보이기 마련이고 여자들의 마음을 좀먹었을테다. 주인공의 극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밝혀주는 조명으로 두 여자의 사랑을 소모했다. 이입할 여지도 없이 이기적이고 생각이 짧다.


굳이 꼽자면 조명의 사용이 좋았다.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형식도 눈여겨볼 만 하다. 배우들의 가창이 나쁘지 않았고, 노래들에는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교로는 덮어질 수 없는 서사의 결함이 있는 연극이었다.


[이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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