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재예술가들의 쥬얼리 금속공예 [공예]

천재예술가 피카소와 앙드레 드랭의 쥬얼리 작품
글 입력 2016.01.1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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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예술가의 쥬얼리 작품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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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주의 회화로 칭송받는 피카소는 작품제작에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사용하여 가장 다방면으로 활약했던 예술가이다.1950년대 중반, 그는 연인 도라마르를 위해 작은 조개로 여러 개의 목걸이를 만들었다.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56년 엑상 프로방스에서 부터이다. 그는 흰색 도자기로 만든 접시를 은을 사용하여 똑같이 만들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의 테라코타 접시들은 발루리스에 있는 도자기 공방인 마두라에서 만들어졌는데 피카소는 진흙의 깨지기 쉬운 성질 때문에 고민 중이었다. 르네상스 금세공업자의 제품에 오랫동안 매혹되었던 그는 몇 세기나 지난 그들의 전통을 부활시켜, 그의 접시 작품이 금속처럼 단단해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피카소는 주조용 틀을 만드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적 재능을 발휘할 적합한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의 친구이자 비평가인 더글라스 쿠퍼는 이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금세공업자 프랑수아 위고와 함께 일해 볼것을 권유했다. 유명한 시인인 빅토르 위고의 증손자인 프랑스아 위고는 거푸집을 이용하지 않고도 완벽한 수작업으로 무늬가 있는 은으로 만든 작품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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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 Gold / 1972


피카소는 이 결과물에 매우 만족했고 이것은 오랜 기간 지속된 그들의 협력과 우정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하나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그들의 협동작업은 정교한 보석을 만드는 것으로 발전해 나갔다. 1960년 세 사람의 신화 속 인물로 장식된 커다란 디저트 접시를 만드는 것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들은 바커스 신의 여사제, 파이프연주자, 심벌즈 연주자를 분리하여 모두 금으로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메달 제작의 시초가 되었다. 프랑수아 위고는 피카소의 스케치 그리고 도자기 모델과 거의 흡사한 순금으로 만든 메달 형태의 펜던트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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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얼굴 / Gold / 1972


우리는 황소 싸움,동물모양, 얼굴, 물고기 등 같은 주제들이 거장 피카소 작품 가운데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작품들을 금 세공업자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하나 하나의 작품들을 마치 보물처럼 간직했으며 이를 전시하거나 많은 양을 생산하는 것도 거부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1967년 판매를 위해 한정적으로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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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얼굴 / Gold / 1972 



앙드레 드랭
ANDRE DERAIN
 1880-1954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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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앙드레 드랭은 고대 유물과 문헌에 매료되어 루브르 박물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고대 미술 작품들을 그대로 그려보곤 했다. 그곳에서 그는 앙리 마티스와 모리스 드 블라맹크를 만나게 되었고 세 사람은 모두 1905년 야수파의 창시자가 되었다. 하지만 드랭의 성격은 복잡했고 그의 작품 스타일도 이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더 부드러운 색채를 사용하기 전, 그리고 더욱 학구적인 작품 활동으로 되돌아 가기 이전 그의 작품은 기입체파와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번갈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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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둥근 얼굴 / Gold / 1952


1940년대에 그는 아내에게 줄 선물을 만들기 위해 크레타섬사람, 가면 등 주얼리를 위한 밀랍 주조틀을 제작했다. 그는 친구인 프랑수아 위고에게 생산을 맡겼는데, 금 세공사인 위고에 결혼식에는 드랭이 입회인으로 서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열개의 펜던트와 브로치를 순금으로 만든 다음 강철 형판에서 손으로 망치질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이 기법을 사용해서 6점씩 생산한 각각의 모델은 약간씩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작품들은 울퉁불퉁한 가장자리를 지닌 기하학적 모습의 두상으로 작가의 작품 중에서 입체주의와 고고학이라는 두 가지영향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드랭은 휴대용 조형물 제작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물감 튜브에서 납을 회수해 그것을 사람의 입술이나 X자형 십자가, 심지어 엉덩이 모양으로 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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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의 섬사람 / Gold / 1960





-참고 문헌 
PICASSO TO JEFF KOONS
THE ARTIST AS JEWELER


[박성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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