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읽다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글 입력 2015.12.3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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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


읽다 포스터.jpg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다!

[보다] - [말하다] - [읽다] 김영하 산문 삼부작의 완결, [읽다]그가 오랫동안 읽어온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문학이라는 ‘제2의 자연’을 맹렬히 탐험해온 작가 김영하의 독서 경험을 담은 책이다. 우리 시대의 작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열렬한 독자로서, 독서라는 가장 인간다운 행위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고자 하는 그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를 깊은 책의 세계로 끌어들여 정신의 미로 속을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헤매는 독서의 쾌락을 선사한다. 

[읽다]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위대한 작품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특질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김영하만의 유려한 스타일로 풀어낸 산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올여름,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6회에 걸친 문학 강연이 열리기도 했다. 책과 독서에 관한 가장 치열하고도 매혹적인 사유,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의 문학작품과 ‘미드’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종횡하는 문학 탐사, 문학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풍요로운 질문과 대답, 그리고 김영하만의 깊고 방대한 읽기의 역사. 읽기에 관한 이 강렬한 산문은 ‘책의 우주’에 접속하도록 연결해주는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길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목차>


첫째 날, 읽다 
_위험한 책 읽기

둘째 날, 읽다
_우리를 미치게 하는 책들 

셋째 날, 읽다
_책 속에는 길이 없다 

넷째 날, 읽다
_‘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다

다섯째 날, 읽다
_매력적인 괴물들의 세계 

여섯째 날, 읽다 
_ 독자, 책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작가의 말 

주 





읽다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


저 : 김영하

출판사 : 문학동네

발행 : 2015년 11월 18일

정가 : 12,000원






- 『읽다』 김영하 산문 (2차)





<상세정보>


[출판사서평]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읽어온 책들, 특히 나를 작가로 만든 문학작품들에 바치는 사랑 고백이다."


우리는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믿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다 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바대로 서술되어 있을까. 고전에 대한 지식은 교양의 잣대이기도 하지만 정작 오래된 고전을 완독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통용되는 상식에 따라 대략의 줄거리 정도는 직접 읽지 않아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을 고전이라 부를 때, 그것은 줄거리 때문이 아니다. 놀랍도록 참신한 서술기법과 연출로 진부할 법한 이야기를 전혀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시켜, 시대와 언어와 국경을 넘어 살아남은 책을 고전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것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으며 현대의 소설이나 영화 또한 아직 그 자장 안에 머물러 있다. 고전은 따라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오로지 독서만이 이런 상식과 교양의 착각과 믿음을 해체한다.

―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 pp.29~31)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일반적으로 돈키호테는 환상이나 비현실적인 것을 좇아 무모하게 도발하는 인물이나 성격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처음부터 ‘책에 미친 자’였다. 기사소설이라는 기사소설은 모조리 읽은 후 그것을 현실로 착각하기에 이른 자가 돈키호테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에마 보바리 역시 로맨스 소설에 푹 빠져 소설처럼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연애를 꿈꾸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인물이다. 에마 보바리 역시 이야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미드 [빅뱅 이론]의 오타쿠적 캐릭터들은 또 어떤가. 그들 역시 마블코믹스에 푹 빠져 그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려 든다. 지나치게 책에 빠져든 나머지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병리학적 증세일 뿐일까? 이야기는 우리의 실제적 삶에 영향을 미쳐왔고 그래서 책은 온순한 사물이 아니다.

―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책은 서점에서 값싸게 팔리고, 도서관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물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책에는 주술적인 힘이 서려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서 금지당하고, 불태워지고, 비난당했습니다. 
(/ p.57)


읽기의 기쁨과 고통  
한편 소설을 읽을 때면, 첫 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전개될 이야기를 예측하고 결론에 어서 다다르고자 조급해한다. 예측은 맞을 때도 틀릴 때도 있으나 개연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이야기가 예측을 조금씩 빗겨나갈 때 스릴을 맛보기도 한다. 독자인 우리는 처음부터 의심하며 읽는다. 작가 혹은 작품의 의도를 짐작하기도 하고, 작품에 압도당하기 원하면서도 쉽사리 설득되려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다 읽기를 포기하고 덮어 버린 책과 마지막 페이지에 닿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소설 읽기는 그런 의미에서 끝없는 정신적 투쟁이다.

― 
한갓 독자에 불과한 제가 작가의 무의식을 파헤치려고 노력하고, 소설을 작가가 읽기를 원한 대로 읽지 않으려 애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설을 읽는 행위가 끝없는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 소설은 일종의 자연입니다. 독자는 그것의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자연을 탐험하면서 독자는 고통과 즐거움을 모두 느낍니다. 
(/ p.134)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김영하는 이 책에서 우리의 내면을 크레페케이크에 비유한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p.104) 정신적 세계가 형성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읽은 책이, 이야기가 결국 한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인간이 바로 이야기"(/ p.69)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읽은 것들이 작가로서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결정했다"고 고백한다. 마치 보르헤스가 그랬듯, 작가이자 무한한 ‘책의 우주’를 탐사하는 독자로서의 김영하는 이 책에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로 이어지는 책의 세계를 기분좋게 헤매보자고 우리를 다정하게 끌어들인다. 

―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 p.69) 


[본문중에서]

●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겁니다.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해체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 직접 경험하거나,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이론서나 설명서를 읽고 이해하는 세상은 정말 작은 부분입니다. 지와 무지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라만차라는 시골 동네의 돈키호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사람들은 흔히 환상에 빠져 현실을 잘못 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일까요? 인간이 그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현실에 너무 집착해 자기 내면의 정신적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요?

● 세상에 대해 알고 있다 고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을 이야기로부터 배웠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런 인간은 과연 무엇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인간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 책을 읽는 매 순간,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읽겠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해서 한 권의 책을 끝내게 됩니다. 완독이라는 것은 실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 읽고 싶다는 유혹을 수없이 이겨내야만 하니까요.

●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매는 경험입니다.

● 우리는 화폐경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교환이 불가능한 것들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 현실의 우주가 빛나는 별과 행성, 블랙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조용히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와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 작품에 대한 불편함이 윤리적 호오라는 비교적 평면적인 차원에서만 비롯된다면, 호감은 다양한 차원에서 독자를 공략합니다. 윤리적 판단이 정규군이라면 호감은 게릴라입니다.

● 한갓 독자에 불과한 제가 작가의 무의식을 파헤치려고 노력하고, 소설을 작가가 읽기를 원한 대로 읽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설을 읽는 행위가 끝없는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 소설은 우리에게 가해자의 내면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뉴스에서는 피해자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우리가 샤를리 에브도/에릭 가너/이라크다"라고 외치면서 피해자와의 연대의식을 드러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설은 우리가 ‘라스콜리니코프’ ‘롤리타’ ‘히스클리프’라고 말함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자리잡은 독선을 해체합니다. 이것은 가해자와 연대하자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를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괴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혹시 자기 안에도 이런 괴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는 뜻일 겁니다.

●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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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보편성을 담보하는 소설의 주제의식과 트렌디한 소재를 통해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저자 특유의 통찰력과 문제의식으로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있는 소설가 김영하. 단편들에서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 타인과의 연대에 대한 무능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명쾌하고도 아이러니하게, 또한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장편들에서는 독자들에게 늘 새로운 실험을 선보여왔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진해, 양평, 파주, DMZ, 잠실 등 전국을 주유하며 성장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헌병대 수사과에서 군역을 마친 그는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을 가지고 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두드려본다. 첫단추는 낙선. 그러나 그 해 봄 그는 문화비평지 『리뷰』에 이 작품을 보내 바로 "등단해버린다". 

두 권의 작품집과 한 권의 장편 소설을 내면서 기발하고 만화적인 상상력, 인간소외, 죽음, 사이버 시대의 일상성 등을 다룬 묵직한 주제들, 소설의 전통적 원칙을 파괴하는 도전성, 자학과 조롱에 섞여드는 번뜩임 등으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10여 개국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고 있다. 2004년에는 한 해 동안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었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이 있다.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10여 개국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고 있다. 최근 산문집 삼부작 중 『보다』 『말하다』를 출간했으며, 『읽다』는 삼부작의 완결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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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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