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물단지 피아노에 관한 개인적인 고찰 [문화 전반]

글 입력 2015.11.2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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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집엔 오래된 피아노가 있습니다. 엄마가 열일곱 살이셨을 때,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피아노 산업이 정점을 찍기 시작했다는 1986년에 마련하신 영창피아노죠. 어느 날 운 좋게 집에 영창피아노를 장만한 이후로 엄마는 피아노 연주 삼매경에 빠지게 되셨다고 합니다.
 
 
 7년 후, 엄마가 아빠를 만나 결혼하시고 새집으로 이사하실 때 피아노도 엄마를 따라 새로운 집으로 거처를 옮겨왔습니다. 가사와 육아 때문에 자연스레 피아노를 멀리하게 된 엄마와는 달리, 호기심이 충만해지는 다섯 살이 된 저는 점점 엄마의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엄마가 저에게 피아노를 물려준 셈이었죠. 어린 나이에 피아노의 새 주인이 된 저는 고등학생 시절의 엄마처럼 피아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칠 줄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건반을 누를 때마다 들려오는 가지각색의 선율에 매력을 느꼈었나봅니다. 레이스가 달린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치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당시의 제 사진은 모든 친척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른바 ‘인생사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피아노는 제 어린 시절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일종의 상징과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저는 자발적으로 등록한 피아노 학원을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새 연주곡을 배운 날에는 집에 와서도 피아노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토요일마다 있는 성당 초등부 미사에서 피아노 반주를 담당하기도 했었죠. 그렇다고 연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피아노 전공을 진로로 희망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피아노를 친다는 것 자체가 좋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배우고 성가 반주를 맡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피아노는 당연하다는 듯이 제 일상 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피아노는 언제나 제 방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절 기다리는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피아노.jpg
 
 
 하지만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저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을 전공할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제 피아노를 배울 나이는 지났다는 이유에서였어요.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취미로 피아노를 계속 칠 것이라는 당찬 다짐은 이내 작심삼일이 됐고, 학교 생활과 공부에 치이며 저는 점차 피아노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다니던 성당 토요 미사마저 자주 거르게 되면서 피아노 앞에 앉을 기회는 점점 더 사라져갔죠. 어느 날 좁디좁은 제 방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피아노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전 “가뜩이나 방도 좁은데 피아노 때문에 불편하다”며 아빠에게 투정을 부렸습니다. 아빠는 피아노를 제 방보다 넓은 동생 방으로 옮겨주셨습니다. 그러나 피아노의 ‘피’자도 모르는 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방을 점거한 피아노를 좋아할 리가요. 그렇게 엄마의 학창시절과 저의 유년기를 함께했던 피아노는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갔습니다.
 
 
 피아노가 동생 방으로 쫓겨난 지 벌써 8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아직도 피아노는 먼지가 쌓인 채로 동생 방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피아노를 중고 가격에 팔아버리자”며 엄마에게 제안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엄마는 펄쩍 뛰며 단호하게 거절하셨어요. 함부로 팔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함께한 소중한 물건이라는 이유에서였죠. 더 이상 쓰지도 않을 거면서 굳이 피아노를 남겨두려 하시는 엄마를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엄마의 말씀은 제가 그동안 애물단지라고만 치부했었던 피아노를 조금 새롭게 보기 시작한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엄마에게 피아노는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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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성보경 기자, 2014년 3월 14일 금요일)
 
 
 열일곱 살의 엄마가 영창피아노를 처음 만났던 당시에는 피아노가 꽤 인기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70년대까지도 피아노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상류층만의 악기라는 인식이 강했었다고 해요. 하지만 80년대에 이르러 중산층 여성들의 피아노 구매율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가 여성으로서의 성공, 즉 ‘여성 엘리트’를 실현해주는 수단으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피아노 소비가 확산되면서 가정에서의 피아노는 좋은 재산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고 이러한 피아노 붐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피아노는 이제 집 한 구석에 처박힌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죠. 90년대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던 영창악기나 삼익악기는 이제 대리점의 수가 대폭 줄었고, 많은 사람들이 피아노를 중고로 내놓지만 이 역시 판매가 부진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피아노는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니라 아무도 쓰지 않는 집 안의 애물단지로 여겨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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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출처: 경기일보(위 기사와 동일)
 
 
 그러나 이러한 사회 변화를 떠나, 저는 저희 집에 남아있는 영창피아노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지금의 피아노는 계속 놔두기엔 불편하고 팔거나 버리기엔 아까운 ‘계륵’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늘 저희 집의 동생 방 한 구석에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를 잡고 있는 피아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왠지 모르게 집안이 허전해질 것 같고, 오랜 식구를 떠나보낸 듯이 섭섭할 것 같네요. 그동안 저희 집의 일부분을 꽉 채워주고 있었던 건 단순히 피아노의 부피가 아니라, 30년의 세월을 담은 피아노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익숙함이었던 것입니다.
 
 
 가끔 윗집으로부터 새어나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고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볼 때가 있습니다. 하도 오랜 시간을 피아노와 멀리하며 지내다 보니 이젠 외워서 칠 줄 아는 곡 하나 기억나지 않아 서글프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피아노가 저에게 주는 편안한 느낌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이럴 때면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동안 늘 엄마와 저의 곁을 지켜온 피아노는 오래된 단짝친구와 같습니다. 엄마와 저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고이 담고 있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안식을 선사해주죠. 비록 옛날과는 달리 ‘연주’라는 기능은 거의 잃어버렸지만, 세월과 함께 피아노는 ‘안락함, 편안함’이라는 새 의미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집을 통해, 특히 집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물들을 통해 안식을 얻습니다. 이처럼 30년간 집을 꿋꿋이 지켜오고 있는 피아노가 우리 가족에게 주는 묵직한 안식 때문에, 엄마와 제가 피아노를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소중하게 간직해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자료

서우선, “피아노와 한국 여성의 정체성 = Pianos and the Identity of Women in Korea”, 『여성학연구』제 17권 1호, 133-155면.
<경기일보>, 20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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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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