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자리 [회화, 갤러리 소소]

글 입력 2015.09.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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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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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일자 : 2015.10.3 ~ 2015.11.1

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장소 : 갤러리 소소

주최 : 갤러리 소소




문의 : 031.949.8154





<상세정보>


-노충현-

7년 만에 다시 <자리>전시를 연다. 이 전시는 2006년 대안공간 풀에서 있었던 <자리>전과 연결된다. 그 사이 <살풍경>전시와 <실밀실>전시를 했다. 마주치는 현실의 양상과 강도에 따라서 연작을 달리해 그리게 되었다. 연작은 대체로 일정한 틀을 지니며 대상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좀 더 느슨한 관계의 방식으로 연작을 꾸려가고 있는데 회화적 소재나 대상에 대하여 감각이나 인식이 변화하더라도 그냥 묶어둔다. 특정한 제목을 다시 달기보다는 이미 설정한 제목아래서 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연작을 하다보면 반복됨으로 인해 지루해지거나 회화적으로도 별 진전이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면 진행하고 있는 연작을 그만두고 다른 내용의 연작을 찾아보거나 연작의 내용을 세분화시켜 진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강시민공원과 동물원이란 두 장소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그 장소들이 주는 익숙함과 더불어 회화를 해나는데 있어서 여전히 해볼 만한 것들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 장소들을 시간차를 두고 그리게 되면서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사물들이나 풍경의 질감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감각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2006년의 <자리>연작은 프랑스 신구상주의 화가인 질 아이요Gilles Aillaud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대학교 다닐 때, 열화당에서 만든 『신구상주의』책에서 그의 그림을 우연히 보았다. 그의 동물원은 자연스럽게 인간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환경과 그에 억압된 인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질 아이요는 미술의 사회적 발언과 고발을 통해서 정치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반면에 내 작업은 동물을 그리지 않거나 장소성을 약화시킴으로써 의미가 불분명해지거나 의미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은 내가 정치성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이미지를 통해서 직설적으로 말하는 방식, 무언가를 확정하려는 태도가 다소 기질적으로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동물원이 지닌 장소적 특성들은 회화에 어떤 사실성을 부여한다. 이때의 사실성이란 현실로부터 내가 받는 어떤 작용(힘)이나 반대로 현실에 반응하는 나의 몸짓과 의식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근거들을 형상화시킨다는 의미에서의 사실성이다. 

세월호 참사 후 우리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죽음은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사건이다. 죽음이 일상적인 사고로 간주될 때 우리는 책임과 윤리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세월호 참사는 사건해결을 위한 책임자 처벌, 제도와 구조적 모순을 고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악용되면서 오히려 시민들 사이에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사이 피해자인 희생자 유가족들은 오히려 일상의 삶을 방해하고 공공의 광장을 독점하려는 세력으로 몰려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세의 역전은 우리사회가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공세에 취약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예의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능력이 상실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죽음을 모욕하는 정치인들이 있었고 그에 동조하여 어린 학생들의 영정 앞에서 애국과 자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피자파티를 열었던 일베의 젊음도 있었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오늘의 삶은 어제보다 퇴폐적이다. 

이번 전시에 모티브가 된 작업은 텅빈 원숭이 우리를 그린 <서커스>(2006) 그림이다. 그림에는 훌라후프, 플라스틱 의자, 어린이용 그네와 같이 사람들이 쓰다만 용품들이 매달린 채로 그려져 있다. 매달려진 상태는 <놀이방>(2006)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데, 두 작업 모두 을씨년스런 공간에서 벌어지는 놀이를 떠올리며 그린 것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물원의 다양한 우리들을 그리기 보다는, 원숭이 우리를 모티브로 하여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고 장치-공, 나무 조각, 타이어, 그네, 끈 등을 이용하여 무대의 구조를 만들려했다. 대부분의 그림들에서 사물들은 천장에 매달려진 상태로 놓여있다. 나는 공간의 주체가 사라진 부재(不在)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보다는 장치들의 구성을 통해서 개인의 심리적 상황이나 사회적 정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림들은 실제의 장소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장소의 풍경과 일치하지는 않고, 그곳의 사물들을 참조하지만 좀 더 자의적으로 구성되었다. 그렇다면 이 허구적인 장면은 무엇이 될까? 대략적으로 일종의 무대를 떠올리며 그리게 되었다는 것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동요, 위기적 상황을 느끼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무엇을 원하는 지를 묻고 그린 것만은 확실하다 할 수 있다.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이 그림들 뒤에 감추어진,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현실을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일까? 실체를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실체를 지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질수록 미끄러져 버린다. 어쩌면 회화에 필요이상으로 의미를 묻는 것은 그다지 쓸모 있는 것이 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의미는 연기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니까. 마음과 생각의 궤도를 따라서 손을 두려했지만 생각만큼 되지는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러한 방식이 내게 가능한, 유일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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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충현_붕대와 침목 Bandage and sleeper_캔버스에 유채_72.5×72.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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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충현_사다리1 Ladder1_캔버스에 유채_65×45.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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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충현_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Human, very human_캔버스에 유채_162.5×227.5cm_2015



 

[나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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