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과 '그들'이 마음으로 빚어낸 빛 [시각예술]

영화 < Batteries not included > 리뷰
글 입력 2015.09.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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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eries not included, but...

  들릴 듯 말 듯한 TV광고 소리가 가난한 재개발 지구의 방을 가득 메운다. “Batteries not included!"라는 성우의 말이 들리는 저 화면에서는 분명 아이들이나 가지고 놀만한 시시껄렁한 장난감이 날아다니고 있을 터이다. 낡은 아파트 구석에 앉아 텔레비전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그들도 배터리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힘없이, 풀린 눈으로 그저 무너져가는 자신의 집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무력해진 그들 앞에 나타난 외계인 로봇 친구들은 배터리가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와 철을 먹으며 스스로 에너지를 얻는 생명체였다. 심지어 그들은 우울하던 아파트 사람들 모두를 행복으로 가득 채워줄 만큼 영화 속 영향력 또한 지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제목이 이 영화의 제목이 가 아닌 인 이유는 단순한 배터리 하나가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영화에서는 유난히 빛이 많이 등장한다. 모든 걸 파괴해버리고 보기 좋은 건물을 짓기 위해 카를로스는 번쩍거리는 불꽃을 튀기고, 로봇 생명체들은 SF영화라는 특징을 차치하고서도 온종일 쉬지 않고 빛을 내며 모든 곳을 오간다. 뉴욕 한가운데에서 아파트 주민들을 누구보다도 환하게 비춰준 것은 거리의 네온사인이었고, 마리사는 어두운 색채로 가득한 그림을 보면서도 빛이 보인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빚어낸 빛들은 왜 그렇게 눈이 부셨을까.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마무리될 때까지, 그들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왜 그리 빛났던 것일까.
   

첫 번째 빛 : 희망에 대하여

  주인공들을 움직이는 첫 번째 힘이자 빛은 ‘희망’이었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 그리고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희망이란 후자와 가까웠다. 철거가 진행되면 철거가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이치였기에, 그들의 아파트가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라일리 부부는 단지 그 기간을 늦추고 싶어 했고, 마리사는 아이를 건강하게 낳기를 원했으며 메이슨은 눈앞의 마리사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들의 희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하지만 그보다 약간 더 구체적인 그들만의 꿈이었다. 그러다 외계 로봇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찾아와 전지전능한 능력을 보여주던 그 때,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조금씩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마리사는 메이슨의 그림을 특별하게 해석한다. “회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졌지만, 뒤에는 분명 햇빛이 있어요. 그래서 그림자가 나타난 거겠죠!”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희망은 결코 가식적이지 않았다. 미술을 공부하고, 수많은 전시회를 다니면서도 어두운 그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에 멍해지기도 했다. 왜 나는 그들의 우울함만을 읽어내려 했던 것인가. 대체 왜 옅게 미소 짓고 있었을 이면은 노크해보지 못했는가. 그래서인지 마리사의 한 마디는 더욱 눈부셨다. 모르는 사람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문을 부수려 해도, 배를 쓰다듬으며 ‘다 괜찮을 거야’라고 혼자 되뇌는 그녀의 마음은 마냥 예뻤던 것이다.
   

두 번째 빛 : 모성애에 대하여

  영화 주인공 중 임산부가 있다고 해서 아파트 주민 모두가 모성애라는 빛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80년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봐도 새롭고 신비한 외계 로봇의 탄생 과정은 인간의 그것과 꼭 닮아있다. 퓨즈가 완전히 나갈 만큼의 진통이 시작되고, 남편 로봇이 빙글빙글 돌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배터리가 들어있지 않은 채로 태어난 막내 아기를 보고 슬퍼하는 엄마로봇과 마리사의 모습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동질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SF인 동시에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외계에서 온 존재가 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성애라는 감정이 여러 사건에서 감초가 된 것이다. 무참하게 무너진 아파트가 다시금, 심지어 더 아름답게 변모한 마지막 장면은 사라진 막내 로봇을 아파트 주민들이 찾아주었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전까지 인간과 쌓아왔던 정 또는 외계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선한 마음에서 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모성애라는 키워드가 일차적으로 연결된다. 즉, 가장 높은 사랑이 인간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부분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했다. 사랑은 인간을 넘어 누구에게나 위대했고, 그 중에서도 부모의 사랑은 고층빌딩보다도 더욱 높다란 곳에서 우리를 감싸 안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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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빛 : 선(善)에 대하여

  이는 말 그대로 착하고 순진한 몇몇 주인공들의 성격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특이한 점은 외계 생명체가 ‘선’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지금까지의 SF영화에서 이들은 대부분 ‘외계에서 온 침입자’ 또는 ‘외계에서 온 괴물’이라는 설정 하에 인간과 대립하곤 했다. 그러나 몇몇 인간들보다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외계 로봇 생명체들은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참신한 설정은 영화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선인 <악역 카를로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아파트 주민들을 괴롭히는 주동자였고, 외계 로봇의 존재조차 거부하려고 애썼던 그는 막상 자신의 상사가 아파트를 폭파시키려 하자 몸을 던지며 할머니 페이를 구한다. 쓰러진 그녀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마냥 걱정만 하다가, 결국 페이가 입원하자 그녀가 좋아하던 도넛을 사서 병문안을 가기도 한다.
  사실 이 모두가 영화 초반부와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 설정이었기에 그가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를 거칠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작은 로봇들이 그들의 몸보다도 큰 상대에 대항하면서까지 정의를 위하는 모습은 잔인했던 카를로스를 계단 구석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악역의 성격 및 행동 변화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 80년대 중반의 스티븐 스필버그 식의 오락용 가족영화가 주로 가지는 특징인 재미, 감동과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러나 ‘선’의 역할은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에 그치지 않는다. 각박한 세상 속의 현대인들에게 짧게나마 안정을 주는 기능을 하며, 가까운 이웃과의 친밀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당시 만연하던 에고이즘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점은 영화 초반부부터 정의롭고 순수했던 주인공들로부터도 기대할 수 있지만, 카를로스라는 특별한 캐릭터가 외계 로봇이 등장한 이후 마주했던 다양한 사건을 통해 자신만의 선을 ‘획득’하였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빛나다

  따스무리한 트럼본과 호른의 저음이 도시를 철거하는 소음 위에 포개졌다. 그렇게 어둡고 탁한 공기를 천천히 타고 흐르던 8번가의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아파트는 하늘을 찌를 듯 높게 고개를 든 고층빌딩 사이에서 조용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 그 안 어느 방에서는 가난한 예술가가 사랑스러운 애인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화폭에 남기고 있을 것이고, 다른 방에서는 한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약에서 체리맛이 난다며 투덜거리고 있을 것이다. 은퇴한 복싱 선수는 재기를 꿈꾸며 텔레비전 속 경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 옆에서는, 그 선수가 고쳐준 덕에 살아난 막내 외계 로봇이 자신이 수놓은 바닥 타일을 보며 행복한 불빛을 뿜어대고 있을 것만 같다.
  배터리가 없던 그들은 모두들 새롭게 태어났다. 외계에서 온 로봇 친구들이 다가온 이후로 수많은 빛들과 함께 했고, 마음으로 그 빛을 빚어낸 덕분에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다. 실제로, ‘지능을 가진 금속 생물체’라는 비현실적 소재와 ‘선, 희망, 모성애’ 등의 추상적 주제를 다뤘다고 하기에 영화는 우리와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철거가 예정된 건물 안에서 외계의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 로봇들이 꽁무니를 반짝대고 있기를, 그리고 착한 자들의 손을 잡아 그들에게도 눈부신 기억을 심어 주기를!


[전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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