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명륜동 벽화골목 [문화 공간]

공공미술의 가치를 찾아서
글 입력 2015.08.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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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서울의 소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빛’이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 도시 곳곳이 뿜어내는 빨갛고 파란 광채들, 새벽 두 시에도 끝나지 않는 건물들의 새하얀 형광등빛. 이러한 모습이 서울의 도시적인 환상을 만들어냈고, 나 또한 이와 같은 분위기를 동경해왔기에 열일곱 살이 되는 해 홀로 서울에 ‘유학’을 왔다.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기숙사학교, 그 건물 사이의 다리에 서면 반짝거리는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 야경 속에는 수많은 대학교, 대학교, 그리고 또 대학교들이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자습실에 들어갔었다. 졸업이 다가와서야 알았지만, 나의 모교 뒤쪽에는 명륜동이라는 나름 유명한 벽화골목이 있었다. 걸어서 5분 내외면 갈 수 있었던 그 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만 무작정 달리던 나는, 심지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가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서울, 명륜동, 이야기
 
  수업이 끝나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도착한 명륜동, 그 가까이에는 모교가 보였고 나는 고등학교 때 즐겨 들었던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를 오랜만에 들으며 느릿느릿 걸었다. 심지어 서울성곽도 가까이 있었다니, 괜스레 새로운 사실에 멋쩍어 터벅거렸다. 혜화동, 성북동, 가회동을 거치며 내가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골목길의 벽과 마주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본 듯한 아기자기한 동물들이 그려진 곳, 아이들이 그 위에 따라 그린 흔적, 6년 째 서울에 머무르면서도 이렇게 사람 사는 느낌의 공간에 와본 적이 있었는지! 재주소년의 <명륜동>이라는 노래가사 중 ‘작은 손을 놓지 않고 명륜동 골목을 누비던 밤을’이라는 부분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를 듣고, 벽화를 만지며 말 그대로 누빌 수밖에 없었던 명륜동의 밤은 그렇게 찾아왔다. 지금까지 내게 펼쳐진 길들이 나를 앞으로 몰아세우기 위해 존재했고 목표를 향해 빨리 가라며 명령했다면, 이곳은 잠시 쉼과 동시에 보다 뚜렷한 목표를 위해 달려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고 있었다. 너 꿈이 뭐니, 하고 누군가 물어보면 공공미술에 관심이 많아요, 하고 대답해온 나를 골목의 벽화들이 마냥 반겨주었다.
  그 계단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여기저기 관광명소보다도 정겨운 명륜동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그 계단의 이름은 하늘계단이었다. 계단마다 구름을 그려넣고 명륜동 3가 전체가 동네미술관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곳이었다. 사실 마을 전체를 미술관으로 바꾸겠다는 프로젝트는 주민들에게의 충분한 설명, 그리고 주민들의 협조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늘과 가깝다는 지역의 특색에 맞추어 하나하나 그려낸 구름들은 어쩌면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명륜동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알려주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숨겨진 정자에 시와 그림을 새기고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문패를 걸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곳보다도 명륜동 3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공동체의 기억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소통하며 친밀해졌는지, 그리고 어떤 풍경을 보며 함께 행복해했는지 그려진다. 시골도 아닌데, 분명 서울인데도 밥 짓는 향기가 나고 손자를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혜화역에 내려서도 가까운 대학로가 아닌 마을버스 8번을 타고 몇 십 분을 가야 있는 명륜동 골목길을 찾아오는 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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