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서 "그리고 사랑을 보다"

글 입력 2015.07.27 14:3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그리고 사랑을 보다-
그리고 사랑을 보다 표지 (등포함).jpg
 
분야 - 에세이
2015년 6월 3일 초판 1쇄 출간 / 152×210mm / 200쪽 / 값 13,000원


 아트인사이트 문화 초대로 "그리고 사랑을 보다"를 읽게 되었다. 프리뷰에서 이미 말했듯이 이 책은 출판저널의 대표인 정윤희 작가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바를 여러 책과 작가들의 말을 통해 전하고, 김은기 작가가 그림으로 그 메세지를 표현한 책이다. 에세이임에도 동화책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이 많이 실려있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에 스트레스 푸는 방법으로 컬러링북이 유행하는데, 이 책에도 틈틈이 색칠할 도안들이 그려져 있다. 찬찬히 글을 읽으면서 색연필로 끄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흐르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연필을 깎아 쓰다보니 어렸을 때도 생각이 났다. 그땐 연필 쓰는 게 당연했는데, 요즘은 손필기 자체가 낯설곤 하다. 간단한 필기에서 과제까지 모두 컴퓨터 타자로 하기 때문이다. 컬러링을 하면서 즐겁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연필이 낯설어진 것에 안타깝기도 했다.


CROP_20150727_132014.JPG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인생 이야기를 계절에 따라 말하고 있다. 난 지금 여름을 보내고 있기에 여름꽃이야기부터 펼쳐서 읽기로 했는데, 첫 장의 이야기부터 내 마음을 쿡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이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은유적으로 전쟁터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사랑을 보다 중에서-


 이 문구인데, 작가는 책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집에서 책이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해서 문제거리라고 했다. 그래서 차츰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정리하고 눈에 보이지 않은 책이 생기면 밤새 애타게 그 책을 찾곤 한다고 한다. 그 중 한 책이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였고 이 책에서 전쟁터를 배경으로 한 단편 '적설'에 대해 언급한다. 작가는 소설 속 기관총 사수가 죽음과 맞닿은 순간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에 이 소설이 더 애틋하가도 말한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이기에 작가도 나도 전쟁에 대한 감정을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작가는 우리가 사는 현실 또한 은유적으로 전쟁터라고 말하는데 이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소리 없는 총성이랄까.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입시가 내가 치를 전쟁의 끝인 줄 알았다. 원하는 대학만 간다면 그리던 꿈도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입시는 내가 치를 전쟁의 시작이었다. 스무살에 알게 된 세상은 생각보다 각박했고 꿈은 불투명해져만 갔다. 다들 조용히 걱정없이 잘 사는 것 처럼 겉으로는 보이지만, 속내를 알게 되면 다들 쫓기고 걱정하고 불안해했고, 나역시 그러함을 느꼈다. 이 불안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적설'에서 기관총 사수가 했듯이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게 큰 소리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는 것일 뿐일까. 





 밥을 먹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가을꽃 이야기에서 밥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데, 이수익 시인의 '밥 보다 더 큰 슬픔',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 김훈 소설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언급한다. 


밥 보다 더 큰 슬픔

                       이수익

크나크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
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저 생의 본능이,
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
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


 난 세 작품 중에서 이수익 시인의 '밥 보다 더 큰 슬픔' 시가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도, 아픈 사람 옆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견딜 수 없을 슬픔이지만 우리는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한다. 처음에는 죽을 듯이 힘들지만 그 슬픔도 차츰 견딜만 해 지고 안넘어가던 밥도 넘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음으로써 슬픔을 치유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되는 것 같다. 





 문학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 중에 오랫동안 기억하는 시가 한 편있다.


선우사

                           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허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책에서 밥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 시가 문득 떠올랐다. 앞의 시에선 밥을 슬픔과 연관시켜 이야기 했다면, 이 시는 밥을 먹는 것 자체에 만족함을 느낌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밥상에 있는 흰밥과 가재미와 함께라면 서럽지도 외롭지도 부럽지도 않다고 말한다. 시의 제목 선우사에서 '선우'는 '반찬 친구'라는 뜻이다. 혼자 밥을 먹지만 반찬을 친구라 부르며 외롭지 않게 식사를 하는 모습에, 나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을 보다"를 읽으면서 사소하지만 지나쳤던 것들,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짧은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깊고 소중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하면서 여러 작품들을 인용해가며 이야기해서 책 속에 소개된 작품들도 찾아본다면 더 좋을 듯 하다. 나는 앞서 전쟁에 대해 다루었던 "이별 없는 세대"에서 '적설'을 찾아 읽어보려 한다.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많이 얻게 된 책 "그리고 사랑을 보다"였다.


[황서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