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폴란드의 역사와 예술을 한눈에, 폴란드 천년의 예술展

폴란드라는 나라의 역사를 에술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시간
글 입력 2015.07.20 13: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150713_114510.jpg




역사와 예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역사를 통해 예술을 확인할 수 있고,
예술 작품을 통해 역사를 볼 수 있다. 이번 '폴란드, 천년의 예술展' 역시
폴란드의 위대한 위인들과 수 많은 회화 작품, 공예, 포스터 등을 통해
천년을 이어온 폴란드의 역사와 예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전시이다.
본 전시는 폴란드의 역사를 따라 관람할 수 있도록  총 5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각 섹션을 대표하는 혹은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작품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 )



★ 워낙 전시 규모가 큰 이유도 있겠지만 무려 31개의 오디오 가이드가 준비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자마자 들려오는 음악들이 정말 좋았다. 각 작품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며 작품 설명을 듣다보니 더욱 실감나고 작품을 즐겁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도슨트를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오디오 가이드를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Section1. 폴란드 예술의 기원, 중세
 


폴란드의 중세 예술은 주로 교회 건축이나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 11-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서 부분적으로 조각이 장식되었고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지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보존되어 내려오는 것은 많지 않다.

- 13-14세기로 접어들며 교회의 힘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조각은
건축의 일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표현 양식을 띄기 시작한다.

- 15세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교회가 폴란드 문화의 중심이 되자
제단은 화려한 조각과 그림들로 장식되며 값비싼 예배 도구들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아름다운 <성모상>을 통해 당시 중세 예술의 높은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untitled.jpg
15세기 폴란드 조각가 <성모상>, 1420-30년경, 
바르샤바국립박물관 소장 Photo©Ligier Piotr 





폴란드에서 동정녀 마리아는 언제나 숭배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성모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폴란드의 그림과 조각들이 많은데,
이번 전시에선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자애롭게 쳐다보는 젊은 성모 마리아,
소위 '아름다운 마리아'라 불리는 작품들이 여러점 소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위의 <성모상>은 '아름다운 마리아'의 대표적인 조각상으로
중세 유럽의 미술 양식인 '아름다운 양식'이 잘 드러난다.
흘러내리는 듯한 옷주름의 표현과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인데,
이는 영적인 아름다움을 미의 기준으로 삼았던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을 엿 볼 수 있다.





★ 들어서자 마자 느껴진 엄숙하고 신성한 느낌이 가득 다가왔다. 대부분이 잘 알지 못하는
작품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도 가장 친근하고 편하게 느껴젔던 전시관이었다.




Section2. '사르마티안' 시대의 예술 



- 16-17세기는 폴란드의 전성기였는데, 이 식기를 흔히 '사르마티아' 시대라고 일컫는다.
이는 당시 폴란드 귀족들은 자신들이 용맹한 사르마티아 사람의 후예라고
생각했던 믿음에서 형성된 문화사조이다 . 폴란드의 정신, 관습, 문화에
큰 영향을 준 이 사르카티즘은 여러 예술 장르에서 잘 나타난다.




szt2786,szt2798,szt386.jpg
콘투시(색-백 기운), 18세기 말,
모직, 리넨에 바느질, 길이 128cm, 밑단의 둘레 323cm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소장 Photo©Andrzej Ring 
 
 



폴란드는 동과 서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유럽 국가와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이는 폴란드의 전통 의상에서
이러한 배경을 살펴볼 수 있는데, 16세기부터 폴란드 귀족들
사이에서는 터키나 페르시아 지역에서 유래된 의상이 유행했다.


소매에 긴 트임이 나 있는 외투인 콘투시 안에
중동의 카프탄과 유사한 쥬판을 입고 허리에는 실크로 만든
긴 허리띠를 매는 것이 바로 당시 귀족의 상징이었다.


화려한 의상뿐 아니라 사르마티아 시대의 귀족들은 해외에서 포도주잔, 접시,
시계 등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했고, 그 밖에도 중국 도자기를 모방한
화병을 제작하거나 수준 높은 예술적 기념품과 장신구들을 사용했다.
이같은 모습은 당시 화려했던 폴란드의 귀족 생활을 잘 보여준다.



 

N1.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20150713_124521.jpg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업적이 담긴 전시가
제 2전시관 안에 마련되어 있다. 얀 마테이코가 그린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작품과
그가 실제로 저명한 책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원고, 그가 천문관측에 사용했던 도구
아스트롤라베와 토르케툼 등 지동설을 주장했던 그의 사상이 담긴 흥미로운 자료들이 가득하다.



★ 이론으로만 보았던 그의 사상을 직접 확인하고 느낄 수 있어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쇼팽에 비해 너무 간소화시켜 전시되어 제대로 살펴볼 수 없어 가장 아쉬움이 크다.
따로 전시실을 만들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유동적으로
이동하며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을 좀 더 확보했다면 훨씬 즐겁지 않았을까. 

 

 
Section3. 억압의 시대에 핀 영혼의 왕국



제 3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강렬한 붉은색 벽지와 스크린 영상이 눈을 사로잡는다.
아래 사진과 같이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폴란드의 역사'가 약 8분 30초간 진행되는데,
영상 옆에 폴란드와 세계의 역사를 연도별로 비교한 도표를 함께 보면
폴란드의 역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 오랫동안 서서 진지하게 관람한 영상이다.  폴란드의 역사를 깔끔하고
몰입감 있게 표현하여 인상적이었다. 아쉬운 점은 이와 같은 영상과 연표는
폴란드의 역사를 시작하는 처음이자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에 전시되었으면
더욱 빛이 났을 것이다. 꼭 보아야 하는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특히나 좋은 영상에는 앞에 의자를 배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50713_130256.jpg




- 그토록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폴란드가 18세기 후반,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영토가 분할되며, 약 120여년간 유럽의 지도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 결국, 폴란드는 여러 주변 국가들로부터 압박을 받게 되었고, 19세기에 폴란드인들은
자국의 독립을 위해 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켰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이 국권을 완전히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폴란드는 역사와 민속 등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 주제로 대거
다양한 장르와 회화 명작을 탄생시키며 이같은 억압의 시대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6825d754_03.jpg
얀 마테이코 <포스코프의 스테판 바토리 왕>, 1870-72년,
  바르샤바 왕궁 소장 Photo©Andrzej Ring





우선 이 작품은 제 3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운 크기에 입이 딱 벌어진다. 
근엄한 왕의 모습과 강렬하고 다양한 색채들, 그 역사 속에 존재했던
가지각색의 인물들과 역할과 표정이 돋보여 더욱 생생하고 웅장한 느낌을 선사한다.


16세기 폴란드의 황금기를 통치했던 스테판 바토리 왕이
1579년에서 1581년까지 러시아를 상대로 치른 전쟁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얀 마테이코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특정 장면을 재현하기보다는 여러 사건을 한 화면에 같이 표현했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작가는 러시아를 상대로 한 승리보다는
스테판 바토리 왕이 프스쿠프를 오랫동안 포위한 끝에 항복을 받아낸 후,
공물을 받는 장면을 그림으로써 폴란드의 국권과 힘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이는 반(反)러시아 봉기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는 폴란드 국민들에게
지난 세월을 떠올림으로써 큰 위안이 되었다.





c36be5cb_05.jpg
아폴로니우시 켕지에르스키 <워비치 지역 소녀의 얼굴>, 1910년,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소장 Photo©Wilczyński Krzysztof 
 




역사와 더불어 19세기 폴란드 회화에서 주요 주제가 된 것은 바로 풍경과 민속이었다.
역사적 주제를 거부하고 폴란드 현실에 있는 그대로를 추구했던 화가들은
폴란드의 전통 문화에 관심을 보였고 특히나 마을의 순수한 소녀들에게 매혹되었다.


화가이자 삽화가였던 '아폴로니우시 켕지에르스키' 또한 마을의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작품들을 많이 그려, 마침내 마을 소녀들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
<워비치 지역 소녀의 얼굴>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작품 대부분은 제 2차 세계 대전 때 망실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마 모두가 위 작품은 <폴란드, 천년의 예술展>을 통해 가장 많이
보았을 작품일 것이다. 천을 감고 녹색 눈을 가진 신비스러운 소녀,
바로 워비치 지역의 한 소녀의 얼굴을 그린 작품이다.
'워비치'는 폴란드의 민속 문화로 유명한 지역인 폴란드 중부 지방의 도시이다.
작품 속의 소녀는 '파나포어'라고 하는 폴란드 전통 의상을 걸치고 있는데,
이 화려한 색감의 의상이 폴란드의 일상과 민속 문화를 사실적으로 잘 나타내주고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접하기 전, 왜 이 작품이 <폴란드, 천년의 예술展>의
대표작이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이 작품의 가치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N2. 쇼팽, 조국을 연주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태어날 무렵, 폴란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망명자의 신분으로
생애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지만 그는 한 순간도 조국 폴란드를 잊지 않았다.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름답고 슬픈 선율이 흘러나온다. 곡의 이름
<마주르카 마단조 op.6 No.3>.  그의 영혼이 담긴 친필 악보도 함께 찾아왔다.

마주르카는 그의 곡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데, 초기부터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작곡된 곡이기도 하다. 폴란드 민속 음악의 영향을 받아
가장 폴란드적인 구성을 띄기도하지만 결코 선율 자체를 인용한 것이 아닌
쇼팽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식으로 작곡되어 조국을 향한 그의 애국심이 담겨 있다.
쇼팽이 지닌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유를 빼앗긴 슬픔의 멜로디는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싸우는 많은 폴란드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시에 쇼팽의 다양한 조각상과 그의 명언, 실제 악보와
회화 작품, 그의 생애를 그린 영상 등 알찬 구성으로 눈과 귀과 모두 즐거운 쇼팽 전시였다.
아마도 애국자로서의 쇼팽을 사랑하고 그의 음악을 더욱 즐겨듣게 될 것 같다.




Section4. '젊은 폴란드' 시기의 예술



- 20세기로의 전환기에서 폴란드 예술계에는 젊고, 새로운 예술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역사와 전통과 같은 애국적인 성향에서 벗어나 시, 음악, 신화 등과 같은
여러 장르의 종합 예술을 지향하며 자유롭고 순수한 작품을 창조해 나갔다. 전환기인 만큼
폴란드 예술은 현대와 역사, 국가와 순수예술의 사이에서의 충돌과 균형이 지속되었다.




1b9e48b6_06.jpg
야체크 말체프스키 <한 줄의 현, 자화상>, 1908년,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소장 Photo©Ligier Piotr 





야체크 말체브스키는 예술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주제로 그린 화가로서
젊은 폴란드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상징적인 그림들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종교, 신화, 민속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작가 자신의 상상력으로부터 기인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얼굴은 그대로 유지하되 대 제사장에서 부터 광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의상과 표정을 바꿔가며 묘사해낸 상징적인 자화상 작품을 다수 그려냈다.


그 중 위 작품 <한 줄의 현>에선 보이는 바와 같이 작가는 폴란드 갑옷을 입고
육군 코트를 걸친 기사의 모습을 한채 한 손에는 한 줄의 바이올린을 들고 있다.
이는 한 줄 밖에 없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연주해야만하는 예술가로서의 소명의식과
애국심을 지키려는 작가의 깊은 신념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 양 옆에 묘사된
인물들은 천사 엘로이와 목동 엘리아니로, 낭만주의 시대 3대 작가 중 한 명인
율리우스 스워바츠키의 시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상징화한 것이다.






Section5. 20세기의 폴란드 예술



- 20세기, 1918년 폴란드의 독립은 예술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새로운 국가 이래서 새로운 예술 형식을 창조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기존의 전통과 역사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럽 아방가르드 사조의
급진적인 태도를 수용하는 등 다양한 주제와 시도들이 전 분야에 걸쳐 확산되었다.
이같이 다양한 노력과 열정을 지닌 화가들이 폴란드 예술을 이끌어 와,
천년의 예술을 간직한 오늘날의 폴란드 예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10투명~1.JPG
타데우시 칸토르 <우산과 투명인간 Ⅲ>, 1973년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소장 Photo©Ligier Piotr





20세기의 폴란드 예술가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타데우시 칸토르.
그는 작품 뿐만 아니라 예술 공동체와 예술 극장 등을 설립하며
예술 관련 행사를 부흥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이끈 예술가이다.
특히나 유럽 아방가르드 중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낡아서 버려야 하는 일상용품에 관심을 가지며 소재로 까지 활용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또한 캔버스 위에 그대로 우산을 부착하여 강렬하고
독특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작가는 사물의 원래 형태를
보존하면서도 색다른 예술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N3. 20세기 폴란드 포스터



- 1950-1960년대, 20세기 후반 폴란드 예술은 이른바 '폴란드 포스터파' 라고 불리는
일군의 디자이너들을 탄생시킨다. 이들은 '길거리 예술'인 포스터를 단순히 선전이나
정보 전달의 도구로 취급하지 않고 지적이고 간결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높은 수준의
그래픽 디자인으로 끌어 올려 20세기 폴란드 예술을 대표하는 장르로 재탄생시킨다.


20150713_152127.jpg
 



★ 너무나 속상했던 폴란드 포스터 전시 부분. 꼭 이렇게 전시를 해야했을까?
처음 들어서자마자 보이다보니 전시에 입장하지 않더라도 관람이 가능해
기대를 떨어뜨리고 재미없게 만든다. 작품들이 높이 걸려있다보니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 가장 위에 걸려있는 작품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워낙 큰 규모여서 배치할 공간이 없었던걸까 생각이 든다.



20150713_152215.jpg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내에서는 재미난 <폴란드, 천년의 예술展> 이벤트가 진행중이다.
<워비치 지역 소녀의 얼굴> 작품을 색칠한 후 뒷면에 간단한 전시 후기를 남기면 된다.

 
20150713_155219.jpg
 

샵에는 전시 도록과 작품이 그려진 엽서, 필기구는 물론이고 폴란드 식의 악세사리와 도자기, 장식품,
폴란드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책 등 다양한 상품들이 마련되어 있다.


20150713_160147.jpg


 

★ 실제로 전시할 순 없지만 다채로운 전시를 위해 곳곳에 작품을 표현한 것들이 있었다.
벽에 스크린을 비추어 영상처럼 넘겨지며 보여진 <스톡홀름 두루마리>,
제 3 전시실에 들어가기 앞서 앉아서 쉴 수 있는 휴식 공간 벽면에 부착된 <그룬발투 전투>,
스테인드 글라스 <성부-순리에 따르라>를 표현한 스크린 등이 그러하다.

다만 이번 전시의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전시 구성이나 작품도 아닌, '홍보'였다.
훨씬 전시의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충분히 멋진 작품들도 많이 있는데 그러지 못한 작품들을
포스터나 상품, 글귀에 더욱 내세운 것 같다. 단순히 미적인 외관상으로 보이는 것과
사람들이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더 많은 신경을 쓴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번 전시의 대표작들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규모가 큰 작품이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서 드러나 알려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일 뿐이다.


생각 이상으로 그 놀라운 전시 규모에 놀랐고 지치기도 했지만 행복했다.
조국을 잃었던 우리나라와 비슷해 잘 알지도 못했던 폴란드라는 나라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들의 화려한 전성기와 위대한 위인들과 작품들을 보고 실로 감탄하기도 했다.
폴란드라는 나라의 역사를 에술을 통해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끝으로 이와 같이 우리나라도 우리의 역사와 고유의 예술성을 선보일 수 있는
전시가 열려 많은 외국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꼭 희망한다.




서포터즈5기_박정은님.jpg
 
http://www.artinsight.co.kr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합니다 : )


[박정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