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와 ‘공감’의 한 끝 차이에서:연극'차이메리카'와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글 입력 2015.06.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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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차이메리카>
 

‘예외’와 ‘공감’의 한 끝 차이에서
 

  세상에는 단순히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단순히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가 있다.

일반적인 규칙이나 정례에서 벗어나는 일. 이것이 예외(例外)이다. 하지만 우리는 긍정적인 의미 혹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보통사람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예외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난 주 막을 내린 2015 두산인문극장이 담고 있는 모티프는 이렇듯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예외이다. 필자는 두산인문극장의 세 작품 중 <차이메리카>와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를 보았고, ‘예외‘에서의 시작을 ’공감‘으로 마무리하며 극장 문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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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메리카’는 중국(China)과 미국(America)를 합성한 단어이다. 이는 G2국가로서 신형대국관계를 형성한 중국과 미국의 현 주소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극 <차이메리카>는 1989년 6월 천안문 사건 당시 탱크에 홀로 맞선 남자의 사진을 찍은 한 미국기자가 이 ‘탱크맨’을 20여 년간 찾아다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민주화요구 시위가 일어난 지 2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는 중국에서, 탱크맨의 존재가치는 모두를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한 인민의 영웅이다. 아무도 ‘탱크맨’이라 불리는 이 남자가 어떤 이유로 탱크 앞에 섰는지, 남자가 들고 있는 두 검은 봉지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사실 남자는 민주화 시위 중 연인을 잃고 환경오염으로 이웃을 잃지만,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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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두산아트센터)
 

  ‘히키코모리’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이러한 은둔형 외톨이의 형태는 일본 내 버블 경제 붕괴에 따른 사회적 충격과 함께 1990년대부터 하나의 사회문제로 인식되어왔다.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10대부터 30대, 40대에 이르는 히키코모리들과, 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도와주는 출장 상담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들이 사회를 거부한 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이유는 다양하다. 방에 있으며 해 온 일, 밖으로 나오게 된 계기 또한 그렇다. 사실 이들은 보통 사람보다 마음이 좀 더 나약해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받고 무너지며, 그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사회의 부적응아, 비정상인, 자기 골방에 갇힌 낙오자로 내려다본다.

  장린이 아닌, ‘탱크맨’. 토미오나 카즈오가 아닌, ‘히키코모리‘. 사람들은 이들에게 또 다른 이름을 붙이고, 보통사람과의 경계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선택을 한 특이한 존재라는 인식을 불어넣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 속 탱크맨의 미화된 모습에 연연했던 조와, 히키코모리를 다소 강압적인 방식으로 바로잡고자 한 상담사 쿠로키는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모습으로만 대하는 것이다.
 

  이 두 작품은 우리에게 말한다. 탱크맨과 히키코모리는 우리와 상관없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중의 하나인 사람들이라고. 이들은 결코 우리보다 위대하거나 열등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단지 순간의 상황이, 기억의 상처가, 이들을 조금 다르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작품은 이러한 점을 이성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을 이끌어낸다. 검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쥔 탱크맨, 그를 막아선 탱크가 오버랩되는 순간, 또 토미오가 기차소리를 뚫고 세상 밖으로 천천히 나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가 알던 것과 화해하고 공감을 이루는 접점이 바로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들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소외된 세상의 모든 ‘예외’들의 외침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진정한 공감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심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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