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울 중심에 위치한 힐링 공간, 덕수궁 [문화 공간]

글 입력 2015.05.07 23:3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130984138.jpg


며칠 전 정동에 들렀다. 명목상 연극을 보러 갔지만 오히려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따로 있다. 정동은 서울시 중심부인 중구에 위치한 곳으로 서대문역과 시청역를 양 옆에 끼고 있다. 정동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청 등 주요 공공 기관과 관광명소가 있어 관광객들과 직장인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내가 갔던 세실극장은 시청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옆에는 우리나라 5대 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이 있다. 덕수궁이야말로 정동 최고의 명소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고궁이 아니라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자 미술관, 관광 명소이기에 관광객들부터 연인들, 가족, 미술 관람객들, 서울 주민들까지 모두가 사랑하는 문화 공간이다. 하지만 덕수궁에는 아픈 과거와 상처들도 남아있다.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덕수궁을 만나보자


htm_2010110901095830003010-001.JPG


덕수궁은 조선 시대의 궁궐로 600년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여러 명의 주인을 섬겨온 역사 깊은 고궁이다. 원래 덕수궁 터에는 세조의 큰손자인 도원군의 개인저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 때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안타깝게도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었고, 이후 세자빈이 출궁할 때 조정이 덕수궁 터에 집을 지어주고 두 아들과 살게 했다. 하지만 곧이어 둘째 아들이 성종으로 즉위하며 그의 어머니도 함께 입궐하게 되었고 그 집에는 첫때 아들만이 거처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당시 피난을 갔던 선조가 한성으로 돌아왔을 때 경복궁이 전소되어 머물 곳이 없자 이곳을 임시거처인 정릉동행궁으로 삼았다. 정릉동행궁은 점차 면적을 넓혀가 경운궁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광해군 때까지 이곳에서 업무를 보거나 거처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이사가면서 경운궁은 주인을 잃었고 광해군이 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그의 어미였던 인목대비를 이곳에 유폐하면서 궁궐은 퇴락하게 되었다. 


ds-003.jpg


경운궁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다시 궁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가면서 왕실 가족이 이곳에서 생활했고 이후 고종도 경운궁에서 생활하며 정궁이 되었다. 고종이 이렇게 경운궁에 애착을 보였던 건 일본의 압박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정동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영사관이 밀집해있겄고 고종은 여기서 정치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1904년 큰 화재로 대부분의 중심 건물과 보물들이 소실되었지만 다시 건물을 보수하고 1907년 고종이 거주하면서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덕수는 고종의 궁호로 덕을 누리며 오래 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후 고종이 승하하자 덕수궁은 빈 궁궐로 쓸쓸히 남아있게되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덕수궁은 사실 많이 옹색해진 모습이다. 개인 저택을 궁궐로 개축했기에 비교적 작은 궁궐에 속하기도 하지만 경운궁으로 불릴 시절에만 해도 상당히 넒은 면적을 차지했고 임금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920년대 일제가 궁궐의 역사과 국권, 자치능력의 상징성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덕수궁 터를 분할 매각했고 주변에는 여러 외국 공사관들이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덕수궁 돌담길도 우리 선조들이 만든 외각길이 아니라 일제가 도로를 만들면서 생긴 길이다. 1933년에 이르러 600년의 역사를 지닌 덕수궁은 한낱 공원으로 전락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고 이어지는 해방과 한국전쟁 속에 계속되는 훼손과 퇴락을 겪었다. 가슴 아픈 역사 속에 온전히 예부터 남아있는 것은 오래된 고목들과 불타지 않은 궁궐의 주춧돌뿐이다. 


ds1.jpg

P3218859.jpg


시청광장을 마주하고 있는 덕수궁 정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으리으리한 궁궐 대문이 아니다. 대한문이라고 불리는 정문은 원래 경운군의 동문으로, 출입구가 작아 주말에 시위를 하거나 관광객이 몰리기라도하면 매우 답답해보인다. 본래의 정문은 현재 서울시청사 별관 건물 자리에 있던 인화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문을 기점으로 중심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대한문이 자연스레 정문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계속되는 도로 공사로 인해 대한문은 뒤로 쫓겨났고 이 때 미처 옮기지 못한 계단은 아예 땅 속 깊이 묻혀버렸다. 서수(성스러운 동물)머리 모양을 한 소맷돌(순우리마로 돌계단의 난간을 뜻한다)만이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마비금천도 기본 궁궐 형식에서 벗어나 산만한 곳에 배치되어있다. 하마비란 조선 시대 종묘나 궁궐 앞에 세웠던 비석으로 누구나 이 앞을 지나면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일종의 표지판이다. 당연히 하마비는 문 밖에 있는 게 정상이건만 덕수궁의 하마비는 대한문 안에 들어 와있다. 궁궐 정문 안에 흐르는 물길인 금천도 흐릿한 형태만 갖춘 채 그 쓰임새를 잃었다.


1614030.jpg


대한문을 지나면 중화문을 마주한다. 중화문은 덕수궁의 중문으로 이전에는 여느 다른 궁궐의 중문처럼 좌우에 행랑을 거느려 조정을 만들었지만 일제에 의해 철거된 후 현재는 그 문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중화문 안에 위치한 중화전은 의례 공간으로 본래는 중층건물이었다. 하지만 1904년의 화재로 불에 타면서 규모가 훨씬 작은 단층 건물로 지어졌다. 중화문을 지나 왼쪽에 자리잡은 광명문은 그 위치만 보면 절대 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 곳은 본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이었지만 1904년 화재로 인해 함녕전이 사라지자 엉뚱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그 기능마저 잃고 자격루와 종을 전시하는 곳으로 사용 중이다.


20090427103107772.jpg

2.jpg


덕수궁에는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전통 궁궐 양식과는 전혀 다른 건물이 존재한다. 현재 국립 고궁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의 이름은 석조전이다. 석조전은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지은 궁궐 건물이다. 주로 외국 사신의 접견 장소로 이용되다가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 국립중앙박물관 등 다양한 정치문화적 용도로 쓰였다. 과연 석조전은 현대와 전통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일까? 우리 고유의 목조 건물들 사이에서 덩그러니 놓여있는 서구식 석조 건물은 어색해 보인다. 그 앞에 조성된 연못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럽식 정원으로 소중한 근대 문화유산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전통 문화를 해치는 생뚱맞은 분수대이다. 덕수궁 중앙에 세워진 석조전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슬픈 근대사를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애틋해진다. 


4.jpg


덕수궁 매표 및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지만 퇴장 시간은 오후 9시이다. 매주 월요일은 문을 닫으니 날짜를 잘 확인하고 가야한다. 입장료는 매우 저렴하다.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면 궁궐 관람료가 보통 5유로를 훌쩍 넘기는 반면 우리나라의 고궁은 일반 대인 관람료가 1000원이며 다양한 할인 혜택도 적용된다. 만 24세 이하 청소년이나 만 65세 이상 어르신, 장애인, 상이군경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복을 착용했을 시에도 무료로 입장 가능하니 친구들과 한복을 입고 방문하는 추억을 남겨도 좋을 것 같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도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덕수궁 내부의 미술관은 덕수궁 관람권을 포함 내부에서 별도로 관람권을 구입해야 한다. 5월 10일까지는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야간 음악회도 개최하고 있다. 서울의 밤하늘 아래 석조전 계단에 앉아 운치 있는 클래식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데이트 코스로도 훌륭하다. 

복잡한 도심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궁궐 덕수궁. 산책로, 미술관, 고궁 등 다양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어 꾸준히 많은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평화로운 덕수궁의 모습은 겉모양일 뿐 그 속에는 가슴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 아픔을 견디고 600년 동안 서울 중심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덕수궁이기에 더욱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slow_city_map01.gif

slow_city_map02.gif



[하민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