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고래

글 입력 2015.04.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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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고래
저자: 천명관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13,800원




<책소개>

제1회 <새의 선물>의 은희경, 제2회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의 전경린, 제3회 <예언의 도시>의 윤애순, 제5회 <숲의 왕>의 김영래, 제8회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의 이해경... 문학동네 소설상이 오랜만에 당선작을 냈다. 주인공은 지난해 여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천명관씨. 등단작 '프랭크와 나'를 제외하곤 아무 작품도 발표하지 않은 진짜 신인이다.

'이 소설을 '특별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임철우, '자신과는 소설관이 다른 심사위원의 동의까지 얻어냈다는 사실이 작가로서는 힘있는 출발'이라 말하는 은희경, '소설이 갈 수 있는 최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고 평하는 신수정까지. 추천글부터 심상치 않다.

소설의 1부, 2부에서는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의 일대기와 주변 인물들의 천태만상이 그려진다. 3부는 감옥을 나온 뒤 폐허가 된 벽돌공장에 돌아온 금복의 딸이자 정신박약아인 춘희의 삶을 담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 편의 복수극"이라는 작가의 말대로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을 품고 죽은 박색 노파가 등장, 주인공을 파국으로 이끈다는 설정이다.

조각조각, 수십 개의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놓은 양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듣던 옛날 이야기, 동화책에서 본 설화와 신화, TV 연속극 같은 스토리, 인터넷에 떠도는 엽기 유머 등이 섞여든다.

맨몸으로 시작해 큰 사업가가 된 한 사람의 이야기인가 싶으면 벽돌을 굽는 한 장인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시 여러 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의 지난 세기의 이야기인가 하면 바로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썩 인상적인 데뷔작.


<책속으로>

살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자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天刑)의 유니폼처럼 그녀를 안에 가둬놓고 평생 이끌고 다니며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다시 이곳 벽돌공장까지 데리고 온 그 살들을 춘희는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햇볕에 그을리고 군데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의 피부는 아직도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춘희는 자위행위를 하듯 부드럽고 은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냈다. 목욕을 하는 동안 文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 전, 의붓아버지인 文은 이미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에 가까워지는 그녀를 펌프 옆에 세워놓고 몸을 씻기며 말하곤 했다.

춘희야, 너의 이 굵은 다리로는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진흙을 이길 수 있고 이 두꺼운 팔로는 누구보다도 벽돌을 많이 들어옮길 수 있으니 그게 다 너의 복이란다.

그녀에게 벽돌 굽는 방법을 가르쳐준 文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서서히 눈이 멀어갔으며 깊은 고독 속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춘희는 문득 가슴이 먹먹해져 몸을 닦는 손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목욕을 끝내고 그녀는 옆에 벗어둔 수의를 짓이기듯 꼼꼼하게 빨아 풀 위에 널었다.
멀리 계곡 쪽에서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거대한 알몸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을 음미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뜻한 기분이었다. 이제 그녀의 예민한 감각은 목욕을 통해 새롭게 되살아나 바람 속에 섞여 있는 계곡의 음습한 기운과, 그 계곡 아래 바위틈에 숨어 잠들어 있는 너구리의 누린내와, 벌판을 지나오는 동안 묻혀온 온갖 풀들의 향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비로소 자신이 의당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그녀는 오랜 긴장에서 서서히 풀려나고 있었다.


<목차>

1부 부두
2부 평대
3부 공장

심사평
수상작가 인터뷰 / 이야기, 혹은 소설의 미래
수상 소감





[나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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