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투명인간 ‘김만수’ [문학]

글 입력 2015.04.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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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순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만에 하나쯤, 그러니까 0.01퍼센트의 확률로 대단히 드물긴 하지만 투명인간도 있다. 나부터 그러니까.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


투명인간을 떠올리면 두 가지 정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첫 번째는. 공상과학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두 번째는. 물리적으로는 사람들 눈에 보이나 소외된 인간. 즉 아웃사이더.

두 번째 정의가 성석제 작가의 장편 소설 「투명인간」이다.

소설 속 주인공 ‘김만수’
이야기는 만수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만수, 만수의 양아들까지 5대에 걸쳐  광범위하게 다뤄진다. 섬세하게 다룬 한편의 한국 근현대사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은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들이 진행되지만, 특별히 이야기의 장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단지 문단을 나누는 방식을 택하여 서술한다. 나눠지는 문단속에서 만수 주변 인물들이 화자로 부상하여 자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만수라는 인물을 녹여낸다. 만수는 직접적인 화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서 있을 뿐이다. 그들의 그림자가 모여 만수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투명인간」은 만수가 태어날 때부터 50대까지의 삶을 따라간다. 그는 정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다. 만수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정의를 지키며 사는 인물이다. 그의 선택에 이기심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저 가족과 남을 위해 희생한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찾아오는 건 행복 보다는 불행들뿐이다. 그가 겪은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심장이 꽉 막히는 답답함뿐만 아니라 성석제 작가가 잔인해보이기까지 한다. 고엽제로 목숨을 잃는 똑똑하고 착했던 형. 연탄가스로 바보가 되어버린 작은 누나. 가난한 집과 결혼한 큰 누나. 아들을 남기고 행방불명이 된 남동생. 자신을 성폭행한 능력 없는 남자와 결혼한 막내 여동생. 그리고 수억의 빚더미에 앉게 된 자신. 신장병에 걸린 아내. 자살을 택한 양아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압축성장과 개발중심의 시대를 살아온 만수와 그의 주변 인물들. 물질만능 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은 몰살당하고 하나의 부속품으로 여겨지던 시대를 통과해온 그들에게 위와 같은 비극은 피할 수 없던 것일까.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반복되는 비극과 암담한 사회 속에서 투명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한 남자. 김만수.

소설은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2015년 현재. 투명인간들을.
비정규직 노동자. 자식들 없는 집에서 썩어가던 노인. 따돌림 당하는 학생들. 굶어 죽은 부녀.
가까이에선, 학비를 벌기 위해 부당대우를 참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소외받는 친구들까지.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 형. 만수 형.

죽을 용기는 없어 투명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
타인을 돌아보기는커녕 나조차 버티기도 힘들게 만든 사회에서,
자문해본다.

내가 누군가를 투명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나는 투명인간이 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을까.

tbs TV책방 북소리 - 제17회 '투명인간' 성석제 저자편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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