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름다운 공포와 광기,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소개 [문학]

글 입력 2015.03.1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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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드거 앨런 포는 누구인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가 쓴 시론을 공부했을 때였다. 새로운 문학 이론을 제시한 '문학비평가'로서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현대문학의 시작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통 문학사의 흐름을 보면 이전 세대에서 영향을 받아 그 작업을 토대로 삼아서 새로운 작업을 이어나간다면, 포우는 '심미주의'라는 문학사조를 미국 문학의 시작점에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문학을 진리나 도덕과 같은 다른 어떤 것에 봉사하지 않는, 오로지 '예술을 위한 예술'로써, 영혼을 고양시키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문학사의 개척자라고 볼 수 있는 포우에게서 남다른 천재성을 엿볼 수 있지만, 그는 동시에 문학 작품을 작가의 치밀한 분석과 노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쓴 시론에서 이런 문학과 작품의 창작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녹아있는데, 그는 그의 대표작인 「갈가마귀」(THE RAVEN)의 습작 과정을 예시로 들면서 하나의 작품이 얼마나 섬세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는지 보여준다. 물론 그가 펼쳐놓은 그 과정을 면밀히 살피지 않고 그의 작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하나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계획과 사고의 과정을 거쳤는지 느낄 수 있다.


2. THE R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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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보통 '갈가마귀'로 번역된 「THE RAVEN」이라는 시를 제작년에 처음 보고 올해 수업을 통해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포우라는 작가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것은 「THE RAVEN」이라는 시를 읽었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쓸쓸한 밤 피로와 슬픔에 젖어
잊혀진 전설의 , 기묘하고 신비로운 책을 읽다가
선잠이 들어 머릴 꾸벅일 때 갑자기
누군가 살며시 나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지.
"어떤 손님이 방문을 두드리는 거야. 그뿐이야."
나는 혼자 중얼거렸지.

아, 분명히 기억나는군. 음산한 겨울이었지.
타다 남은 검불 하나하나가 마루 위에 유령처럼 그림자를 새겨놓았지.
난 아침이 빨리 와주기를 간절히 바랐지. 책으로 슬픔을―
죽은 레노어에 대한 슬픔을―잊으려 했으나 헛된 일이었지.
천사들이 레노어라 이름 지은 둘도 없이, 찬란하던 그 소녀는
지금은 여기 영원히 이름 없이 누워 있네.

(중략)

내가 덧창문을 활짝 열자 야단스럽게 펄럭이며
들어서는 것은 성스러운 태고의 당당한 갈가마귀였네.
새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잠시도 주저치 않고,
오연한 태도로 침실 문 위에 올라앉았지.
문 위에 놓인 팔라스의 흉상 위에 날아올라 걸터앉았지.
그뿐이었네.

이 흑단의 새가 엄숙하고도 준엄한 표정을 지었기에
슬픈 마음에도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네
그래서 나는 말했지. "너의 깃털이 심히 깎였는데도, 두려워 않는구나.
밤의 기슭에서 날아온 음울하고 해묵은 갈가마귀로다.
밤의 명부의 기슭에서 어떤 당당한 이름을 지녔는지 내게 말해다오!"
그러자 갈가마귀는 말했네. "다시는 안 돼요."

-에드거 앨런 포의 「갈가마귀(THE RAVEN)」중에서

시가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화자는 자신의 연인 레노어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과 피로에 젖은 상태로 홀로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레노어가 죽었다는 사실로 인해 밀려오는 절망을 책을 읽으면서 애써 떨쳐버리려고 하지만 화자는 동시에 레노어에게 가닿고 싶어한다. 화자는 레노어가 죽어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녀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녀의 부재를 화자 자신도 의식 저편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레노어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화자 앞에 갈가마귀가 나타나, 화자의 질문과 맞지 않는 "Nevermore"라는 외침이 연속적으로 들리는 것은 화자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게 하는 것 같다. 사실 이 "nevermore"라는 외침이, 화자 자신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기에 더욱 절망적이다.

이 시가 독자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시 전체에 나타나는 정황과 갈가마귀의 존재다. 방 안에 홀로 쓸쓸히 남은 화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갈가마귀 뿐만 아니라 의자와 자줏빛 커튼까지도 화자를 붙들고 있다. 화자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화자를 붙잡고 있는 사물과 갈가마귀라는 존재, 갈가마귀가 외치는 음성 "Nevermore"는 레노어라는 존재를 더욱 공허하고 희미하게 만드는 것 같다. 때문에 죽어서라도 레노어를 만나서 그녀를 껴안을 수 있냐는 화자의 외침 또한 공허한 울림으로 들린다. 그 외침 뒤에는 또 다시 "Nevermore"라는 음성이 뒤따른다. 이 음성이 어떤 공상이 아닌, 결국 화자 자신의 마음이 외치고 있는 말이라서 화자가 처한 상황이, 그 절망이 더욱 무거운 현실로 다가온다. 

3. 타원형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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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읽고난 뒤에, 포우의 단편소설 전집 『우울과 몽상』을 찾아 읽었다. 그 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잡았던 작품은 「타원형 초상화」였다. 그의 단편 중에서도 국내에서는「검은 고양이」를 쓴 작가로, 포우는 공포와 광기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타원형 초상화」는 그의 단편전집 안에서 '환상'의 주제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포우의 대표적인 코드인 '광기'와 '공포'의 면모를 이 소설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인물이 겪는 기괴한 경험, 작품 전반에 깔린 음울한 분위기가 포우만이 세울 수 있는 미학의 꼭대기로 이끌고 간다고 말할 수 있다.

상처를 입은 주인공은 어느 낡은 성 안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그는 성 내부에 걸린 수많은 액자 속 그림들을 감상한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림을 설명하고 비평한 책을 읽으며 밤을 보내던 주인공은 촛대의 위치를 바꾸려다가 의도치 않게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그림 한 점을 보게 된다.

지금 내가 똑바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의심할 수 없었고 의심하려 하지도 않았다. 촛불 빛이 그 화폭 위에 처음 던져진 순간, 그림은 내 감각에 스며든 꿈꾸는 듯한 황홀감을 날려버리는 것 같았고, 내 삶을 일깨우는 듯한 놀라움을 전해왔다.

주인공은 그 그림에 사로잡혀, 특히 자신의 시선을 이끌었던 원인이 '타원형 틀'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 그림과 역사에 대해 기술한 책을 찾아본다. 기술에 의하면, 그림 속 소녀는 한 화가와 결혼했다. 또한 화가와 결혼한 것이 불운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열정적이고 엄격한 그 화가에게는 이미 신부가 있다. 자신의 작품 속에, 자신의 그림 속에.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마침내 수 주일이 지난 후 입술 위의 붓질과 눈의 색조 이외에는 거의 할 일이 남지 않았을 때 그녀의 정신은 다시 한 번 램프가 켜지듯 깜빡였다. 화가는 마지막 붓질을 하고 동공의 색깔도 칠했다. 그리고 한순간 화가는 자신이 그린 작품 앞에 무아지경으로 서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여전히 작품을 응시하면서 대경실색하여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건 정말 인간 그 자체야!" 그리고 그는 갑자기 아내를 넘겨다보았다. 그녀는 죽어 있었다.


그림 속 소녀의 남편이 소녀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과정은 이렇게 끝이 난다. 또한, 「타원형 초상화」라는 소설도 여기서 끝난다. 주인공이 오래된 성 안에서 타원형 초상화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과 타원형 초상화에 시선을 빼앗긴 인물의 심리 묘사 그리고 그 작품에 관해 기술된 역사까지 이어지면서, 포우의 문장을 따라서 나는 긴장감과 이상한 상황이 전개하는 신비로움에 사로잡혔다. 섬세한 세공사처럼 나를 타원형 초상화 앞까지 불러들인 포우는 이제 인상으로만 남은 그 초상화를 절대 지울 수 없는 이미지로 각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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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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