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입체파 형제, 브라크와 피카소[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23 23:5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세기의 서양 미술사 중에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기법 등을 추구하는 화가들의 움직임은 다양한 ‘-isme’(이즘)의 등장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그 첫 출발점이었던 야수주의(Fauvisme)가 약 1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수명을 유지했던 것에 비해 입체주의(Cubism)를 주도하던 입체파는 좀 더 체계적으로 전개되면서 미래주의 등 다양한 예술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이 두 ism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야수주의가 새로운 ‘색채’ 관념을 시도했다면 입체주의는 ‘형태’와 ‘공간’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을 파헤치고 분할하는 데에 집중했던 입체주의 그림은 어두운 톤의 단색으로 통일되는 모노크롬(monochrome)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앙리 마티스는 색채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나타낸 그의 그림을 본 평론가의 비판적인 발언으로부터 ‘야수파’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화가이다. 그러나 한 때 야수주의에 가담했던 브라크가 입체주의적인 새로운 시도를 담아낸 <에스타크에서 그린 풍경화>를 보고 난 후, 이를 조롱하며 ‘입방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 또한 마티스라는 점은 의외이다.

 

브라크2.jpg

▲ <에스타크의 집들> 조르주 브라크, 1908년


  앞서가는 화가의 새로운 시도는 비단 평론가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새로운 시도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목표의식을 지녔던 화가로부터도 항상 공감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또 다른 방향의 새로움의 등장은 언제나 환영 받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고 앞서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즉 20세기에 새로운 ism이 다양하게 등장하였다고 하나, 유행을 주도하고 영향력이 있는 ism이 되기까지는 화가들 사이에서의 미묘한 경쟁 구도와 평론가들의 비판으로부터 살아남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고, 다양한 시도 끝에 체계적으로 입체주의를 주도해 나갔던 대표적인 두 명의 화가로 브라크와 피카소를 들 수 있다. 이 둘은 화상(畵商) ‘칸바일러’를 통해 처음 만난 이후, 공통된 목표의식 아래 작업을 함께 한다. 브라크와 피카소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를 거친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함께하는 작업이 마치 결혼을 한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서로를 가깝게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브라크도 마찬가지였다. 이 둘이 이렇게 가까워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칸바일러의 영향도 있다. 브라크와 피카소의 앞서나가는 가능성을 보는 눈이 있던 칸바일러는 이 둘의 그림을 후원하는 대신 모든 그림을 자신의 화랑에만 전시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약속 받았기 때문이다.


브라크 인물.jpg피카소 인물.jpg

▲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칸바일러.png

▲ <칸바일러> 피카소, 1901년  



 입체주의는 기본적으로 후기 인상주의의 ‘폴 세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세잔은 르네상스에서부터 전해져온 일점원근법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열어준 화가이다. 평면에 나타낼 형태를 다양한 시점으로 열어둔 것이다. 즉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하나의 그림에 그대로 나타냈다.

세잔.png

▲ <바구니가 있는 정물> 폴 세잔, 1888/1890경


‘분석적 입체주의’시기의 피카소는 하나의 대상에 복수의 시점을 적용한다. 복수의 시점은 앞, 뒤, 옆, 아래 등을 포함한다. 이를 2차원적인 평면에 나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평면에 다(多)시점을 나타내려다 보니, 본래의 형태에서 중요하지 않은 개념(예를 들어 ‘색채’와 같은 것)은 배제하고, 형태는 기하학적 입방체로 간소화 되었다.


서양배와여인.jpg

    ▲ <페르낭드(서양 배와 여인)> 파블로 피카소, 1909년


 이 시기의 피카소의 두 가지 초상화를 비교해 보자. <페르낭드(서양 배와 여인)>은 다(多)시점을 서로 겹치고 이어 붙여 쌓아올리는 느낌이다. 

이에 비해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은 보다 더 해체·분해되는 느낌이 든다. 마치 깨진 거울에 모습이 비춰지는 것 같다.


초상.jpg

                              ▲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 파블로 피카소, 1910년


 피카소가 형태에 관심을 두는 반면, 브라크는 공간을 해체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브라크는 “특히 내 마음을 끄는 것은, 그리고 입체주의 최대의 관심사는 내가 지각하는 새로운 공간에 형체를 부여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잔의 관점을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더 확장시킨 것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브라크와 피카소의 그림을 살펴보자. 브라크의 <만돌린과 연인>은 피카소의 <만돌린을 든 소녀(파니 텔리어)>에 비해 형태와 배경이 연속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피카소의 그림에서 배경과 인물의 외관 사이의 구분은  브라크에 비해 좀 더 뚜렷하다. ‘팀 힐튼’의 ‘피카소’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브라크의 야심은 공간을 나타내기보다 공간을 칠할 수 있게 된 것에 있다고 표현했다.


브라크 만돌ㄹㄴ.jpg만돌린을 든소녀.jpg


▲ <만돌린과 연인> 조르주 브라크, 1910년    ▲ <만돌린을 든 소녀(파니 텔리어)>

                                                                      파블로 피카소, 1910년


 형태를 해체하여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려 했던 분석적 입체주의에서 대상의 파편이나 부분만으로 전체 그림을 암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해체와 분해가 강화될수록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암시를 알기가 어려웠다. 이처럼 그들의 그림이 추상으로 치달을수록 상징만으로는 그 형태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로 인해 다음 단계로 나온 입체주의가 ‘종합적 입체주의’이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대상을 암시하기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실물을 사용한 것이다. 종이에 실물을 붙이면 새로운 공간이 생기며, 암시 또한 유용하다. 브라크는 화면에 종이를 오려 붙이는 ‘파피에 콜레’ 작업을 시작 하였으며, 피카소는 이를 ‘콜라주’로 발전시켰다. 종이 외에 다양한 일상 사물을 붙인 것이다.


KakaoTalk_20150124_005314869.jpg



 그러나 이 둘의 콜라주는 차이점을 보인다. 브라크는 종이 등을 화면에 붙일 때,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의 질감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용 했다면, 피카소는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의 유희를 나타냈다. 예를 들어 종이는 나타내고자 하는 형태의 표면이 될 수도 있고, 배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형태의 표면이 된다면 앞으로 튀어나온 공간이 되지만, 배경이 될 경우에는 형태의 표면보다 깊이 들어간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피카소는 콜라주에 붙이는 종이에 써있는 언어를 통해 재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JOURNAL'에서 오려낸 ’URNAL'은 신문을 넘어서서 변기(urinal)를 연상하게끔 한다.


피카소 콜라주.jpg

                                 ▲ <병, 포도주, 신문이 있는 탁자>, 파블로 피카소, 1912년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브라크와 피카소는 같은 목표의식 아래, 같은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도 그 방식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고, 결과물이 완전히 같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둘이 입체주의를 이끌어나가는 과정을 함께 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은 있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닮은 듯 닮지 않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그러므로 제목에서처럼 이 둘을 형제라고 표현한다면 이들을 후원하는 칸바일러는 엄마로 비유할 수도 있겠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엄마가 사주는 똑같은 옷(입체주의라는 미술로 나아가는 것으로 한정시키고 이들을 후원하는 것)을 받은 두 형제(브라크와 피카소)는 공통적인 기본 스타일은 유지하되,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세부적인 리폼(reform)을 하는 개성 넘치는 형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진중권,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편, 휴머니스트, 2011, pp.55-79.

에디나 베르나르, 「라루스 서양미술사 Ⅵ 근대미술, 생각의 나무, 2007, pp.09-75.


KakaoTalk_20150117_012555184.jpg



[차진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