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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심신 달래기

엉성한 나를 견디기

by 서예진 에디터
2026.07.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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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저녁 6시,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가방을 챙긴 후 회사를 급히 빠져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역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면, 최근엔 역을 그대로 지나쳐 신당역 근처의 한 낡고 허름한 건물로 향하고 있다. 좁은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다 약간 숨이 찰 때쯤, 지금 다니고 있는 요가원에 도착한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로 요가에 도전하는 것이지만, 이전에 요가를 배워본 적 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어쩐지 아니요, 라고 답했다. 앞선 두 번의 경험을 합쳐도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지금의 몸 상태는 도저히 요가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굳어있기 때문이었다. 요가 경력직(조각 경력도 경력이라면)이라고 말하는 순간, 혹시 나에게 올 아주 약간의 기대치도 받아들이기 겸연쩍을 만큼의 상태라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고 만 것이다.


요즘 주로 듣는 수업은 하타요가다. 요가 매트에 앉아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굽은 등과 허리를 펴고, 척추를 비틀고, 골반을 여는 여러 동작을 천천히 따라 하고 있다. 그 순간, 머릿속이 깨끗이 비워지며 편안해진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가장 크게 느끼는 감각은 불편함이다. 한 사람의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가동 범위가 1부터 100까지라면, 나는 아무리 후하게 봐도 10에 불과한 거 같다. 요가 하는 내 모습을 보면 양철 로봇도 혀를 끌끌 차며 관절에 기름칠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닌 너라고 말할 수준이다.

 

슬쩍 곁눈질로 본 다른 사람들은 발에 손이 닿는 건 기본이고 발바닥도 감싸던데, 나는 온 힘을 다해 앞으로 상체를 숙여도 발목이 최대치라니. 여태껏 이런 몸으로 살아왔지만, 유독 요가를 할 때면 관절과 근육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새삼스레 분하고 서글퍼진다. 모두가 나를 약 올리며 멋대로 행동해도 내 몸만큼은 마음대로 움직여주면 참 좋으련만... 마음은 서둘러 앞서가는데 몸은 저 멀리서 느릿느릿 뒤따라오니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건 늘 나다.


요가는 이렇게 날 조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나를 달래주는 것도 요가다. 어느 요가원에 가도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라고 차분히 말해주신다. 잔인한 평가와 경쟁의 사회에선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말을 요가 선생님들은 어쩜 그렇게 확신을 담아 다정하게 말해주시는지. 그 말에 뻣뻣한 몸을 저주했던 마음은 금세 힘을 잃어 흐물흐물해지고, 대신 지금의 나여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나를 부드럽게 감싸온다. 마지막 사바아사나 자세를 취하며 가만히 누워있을 때면 혼자 벅차올라 요가 좋다... 평생 하고 싶다... 조용히 읊조리곤 했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지금까진 그 들끓는 열정이 오래가지 못했다. 앞서 고백했듯이 나는 요가를 6개월 이상 꾸준히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주변에 요가를 추천하며 다니고 심지어 할 수 있는 만큼만 동작하며 기준을 타인이 아닌 나로 두니, 내 작은 변화를 눈치챌 수 있어 좋다는 글까지 쓰며 요가를 찬양했었지만, 한순간에 시들해진 마음을 마주할 땐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왜 이러지... 그것도 두 번씩이나.

 

처음엔 가능한 데까지만 동작하며 미세하게 달라지는 몸의 변화를 느끼는 게 좋았다. 그런데 갈수록 생각보다 더딘 변화가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좋아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양심 없이 눈에 띄는 즉각적인 효과를 원한 것이다.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보다 크게 나아진 게 없다고 생각하니,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참았던 어긋난 관절이 주는 통증과 내가 원하는 만큼 나아가지 않는 근육의 팽팽한 긴장감이 더 갑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날 감싸주는 따뜻한 공간에서 이것밖에 못 하는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미웠다. 건강한 몸엔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더니, 뻣뻣한 몸엔 뻣뻣한 정신이 깃드는 것일까? 어쩌면 그때의 나는 몸보다 뒤틀린 마음을 바로잡아야 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서툰 나를 견디기 어려워했다. 처음 하는 일이기에 혹은 타고난 기질과 능력이 그 일과 맞지 않아 적응하고 배우는 시간이 필요한데, 처음부터 뭐든 능숙하기를 바랐다. 어설픈 나를 견디고 버텨야만 배움이 있고 성장이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법인데, 조금의 무너짐도 허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엉성한 나를 기를 쓰고 요리조리 피해 오며 살아왔더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고작 나인 게, 여전히 나인 게 때로는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마음을 독촉하고, 반대로 몸은 방치하고 있을 때마다 요가가 생각났다. 비록 항상 끝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이번에야말로 내 한계를 인정하고 심신을 달래면 거친 세상을 살기엔 지나치게 무른 몸과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그런 간사한 기대를 품은 것이다. 결국 또 한 번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나를 요가원으로 다시 이끌었다.

 

요가 선생님을 따라 일어선 자세에서 몸을 T자로 만드는 비라바드라아사나 동작을 따라 해본다. 한 발로 땅을 굳게 지탱하고 다른 한쪽 다리는 뒤로 곧게 뻗으며, 동시에 상체를 숙이고 팔을 앞으로 쭉 뻗는 자세다. 뒤로 뻗은 다리와 앞으로 뻗은 팔이 수평을 이뤄야 하지만, 내 다리는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지 자꾸 아래로 떨어진다. 내 체중과 삶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다리 한쪽은 안쓰러울 정도로 애처롭게 떨리기 시작한다. 5살 때 부모님 앞에서 개다리춤 춘 뒤로는 이렇게 다리를 달달 떨어본 적 없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때, 요가 선생님의 한마디가 귓가로 날아온다. "여기서는 마음껏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던 몸이 중심을 잃고 크게 휘청였다. 마음껏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해도 괜찮다... 그 말이 내가 지레 겁먹고 세운 벽에 부딪혔다가 반사되어 메아리처럼 나에게 되돌아온다. 내 몸 가득 퍼져 나가는 문장을 느끼며 다시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이번엔 체중을 왼쪽 다리에 싣고 오른쪽 다리를 뒤로 뻗으며, 나만의 중심을 찾기 위해 애쓴다. 여전히 멋없이 흔들리는 몸, 그러나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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