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가 거대한 땅콩 껍질 모양을 그리면 반드시 풍요로운 바람이 공연장의 좌우를 휘감았다. 지휘의 움직임은 무척 다정한데, 그 결과로 나오는 소리는 우아하고 절도 있었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면 천체관측소 안으로 속절없이 데려다 놓일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 그냥 유성이 내 얼굴 1센티미터 앞에서 번뜩이고 있다. 번뜩!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리허설에서 만난 피아노는 생잎 같았다. 아주 새파랬다. 하얀 건반 하나가 꼭 잎사귀 하나가 되어 있더라. 연주가는 건반 위에 손을 그저 놓기만 하는 듯했다. 피아노가 이렇게 연약한 존재였나 싶었다. 청초한 음표가 춤을 췄다. 비어 있는 자리에서 피어난 소리는 생김새마저 굉장히 예뻤다. 한 번씩은 강한 사람인 척도 했다.
2악장에서는 열린 뚜껑 쪽에서 흐느끼더라. 건반 위에서는 오히려 씩씩한 척을 했다……. 피아노의 물안개와 현악기가 섞여 들 때 피어나는 아지랑이도 보였다. 피아노의 운명을 바이올린이 대신 울어 줄 때도 있더라…….
그러니 본공연에서도 피아노 건반이 ‘여전히’ 청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거 웬걸. ‘기세’를 지니고 있더라. 피아노를 둘러싼 사방의 소리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조금 더 풍성해져 있었다. 버르토크의 여정이 그야말로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이 가득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니 확실히 외로운 기색이 사라졌다. 관악기와 신호를 주고받을 때도 그랬다. 서울시향은 오늘의 공연장을 작곡가의 세상으로 만들고, 우리를 그 안으로 깊숙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낮에 잠시 눈을 맞췄던 그 음표들은 가벼운 서정을 가지고 놀기보다 무대 위에서 분명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에 꼭 맞는 무대 의상을 갖춰 입고 나타난 것이다.
2악장에서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상하게 나에게만 캐논 변주곡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도 있었다. 굉장히 센티해지지 않을까. 상상하기 쉬운 것들로 또 다른 연관고리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이때는 피아니스트의 손 아래 놓인 악기와 단원들이 신호를 주고받는 타이밍에 귀를 크게 기울였던 것 같다. 들려오는 소리는 나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하기보다, 연주가들이 띄워 놓는 음표와 그들이 조성하는 분위기 자체를 음미하게 만들었다.
소리가 공간을 타고 떠오르는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단원들이 그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가장 오래 구경했다. 한 번씩 잘못 누른 게 아닐까 싶은, 일부러 새겨 놓은 듯한 어긋난 음들이 평화로운 선율 위에 놓일 때면 그것이 이 곡의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알았다. 10퍼센트쯤의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 “어?” 하며 나도 모르게 피아노 앞으로 몇 번씩 정신을 바로 세우게 했다.

3악장의 박진감 있는 걸음이 으릉거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벌써 3악장이라고?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짧게 느껴졌다. 내가 이제 버르토크를 두려워할 줄 모르게 된 탓도 있고, 연주가들이 이 여정을 ‘순식간’처럼 느끼게 만든 탓도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물 흐르듯 끌려갈 수도 있었을 텐데,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딕션이 깨끗했고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대로 커다랗게 존재하다가 아예 사라지기도 하며 각자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작곡가의 음악 안에서도 이토록 선명한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구나 싶었다.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문득문득 다정해지다가도, 갑자기 예상하지 못할 만큼 흐름을 크게 고조시켰다. 정말 다이내믹한 사운드였다. 온정 어린 소리와 박진감이 이처럼 별 옆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 건가?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면 천체관측소 안으로 속절없이 데려다 놓일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 그냥 유성이 내 얼굴 1센티미터 앞에서 번뜩이고 있다. 번뜩!
슈베르트,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

아니 정말로. 슈베르트는 정말 슈우우우우우우베르트였다.
이렇게 기다란 호흡으로 그를 만날 수 있는 곡이 있다는 사실을 문장으로만 읽은 것이 아니라, 내 두 귀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인내심이 필요한 그 구간도 연주가와 함께 였기에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1악장을 함께 걷는 동안에는 이 곡이 왜 당시 사람들에게 길고 어렵게 여겨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대놓고 힘차게 걸어 주는데 왜 헷갈렸을까? 서울시향이 그때로 돌아가 23일의 해석을 선보여 준다면, 아마 그들도 이 곡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날은 현악기의 활이 그리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미난 입체감이 있었다. 활이 수평에 가까워졌을 때의 재미와 거의 수직선처럼 섰을 때 빛을 발하는 소리. 때때로 진—하게 획을 그을 때도 있었다.
어깨를 으쓱으쓱, 팔을 흔들흔들. 나도 모르게 흥을 불러오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땅을 울리기 위해 아래쪽으로 크게 궁궁궁…… 진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지휘자와 단원들이 합을 맞췄다. 그 자애롭고 능숙한 조합 앞에서 마음이 먼저 ‘우와’를 외쳤다.
나는 아주 빤히 지휘자의 손바닥을 응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날은 손끝이 아니라 지휘자의 손바닥과 양팔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수산나 멜키는 노래가 향해야 할 악기 앞으로 손바닥을 내밀고, 다시 이쪽으로 손바닥을 보여 줄 때에는 팔꿈치를 양옆으로 펼쳤다. 때로는 손가락을 모아 한 지점을 딱 짚어! 팔을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며 수직으로 긴 원을 몇 번이나 그렸다.

지휘자가 거대한 땅콩 껍질 모양을 그리면 반드시 풍요로운 바람이 공연장의 좌우를 휘감았다. 지휘의 움직임은 무척 다정한데, 그 결과로 나오는 소리는 우아하고 절도 있었다. 지휘자의 팔이 무용수 같다는 생각을 처음 해 봤다. 대체로 팔을 높이 들어 올렸고, 그때마다 소리도 함께 넓어졌다.
어느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벌리고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 황급히 입을 합— 다물었다. 어찌 이리 중요한 지점마다 지휘자와 단원과 소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질까?
나는 정말로 목격(!)했다. 달려 나가는 와중에도 단원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한두 개씩 피어나는 것이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그리고 뒤편에서도 보였다. 기분이 좋았다. 이곳에서 듣는 나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스스로 저런 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그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2악장을 떠올려 보자. 오보에와 클라리넷은 거의 듀오처럼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음색으로, 나도 모르게 허밍하게 되는 노래를 불러 주었다. 나머지 악기들이 커튼을 아래쪽까지 쭉 끌어당기는 듯한 소리를 낼 때에는 먼 훗날을 걱정했다. 나, 서포터즈 활동 끝나면 어떡하지…….(중얼중얼)
되돌아온 듀오의 품에서는 프리뷰를 쓰며 상상했던 통나무집이나 어둠 속 촛불 대신, 높이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아래에서 추는 ‘왈츠’가 보였다. 서울시향의 2악장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비장함을 노래하기보다 이완된 상태로 상공에 소리를 딱 띄웠다.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우리도 가볍게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너그럽게 곁을 지켜 주는, 그런 은은한 배려가 가득했다.
그렇다고 필요한 순간에 바닥을 정확히 타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이는 없었다. 한 번씩 타악기와 함께 바닥을 터뜨리는 소리가 날 때면, 합이 지나치게 잘 맞아 경쾌하기까지 했다. 마음 안의 호수로 돌멩이 몇 개가 연달아 풍덩 떨어지는 듯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때도 있었다. 지휘자도, 악기들도, 관객들도 숨죽여 기다리는 정적이 아니었다. 흐르던 숨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잠시 우리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동그란 원 하나를 만들고 그 안을 함께 지켜보는 것이다. 기침 소리도 뒤척임도 없이 잘 비워져 모여든 ‘고요함’은 우리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만족감을 선사했다.
3악장에서는 어땠더라?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 그레이트했다. 두 귀가 어릿어릿해질 정도로 광대한 사운드와 호화로운 조합이 긴 호흡으로 이어졌다. 나의 부족한 클래식 근지구력의 한계를 시험받는 기분도 들었다.
이렇게 기다랗게 음미할 시간을 내어 주는 너그러운 사운드 4DX는 또 처음이다. 어째 처음이 쌓여 간다. 이 곡이 너무 길고 연주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연주가들의 사정에 가까운 이야기였나 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질리지 않는 맛으로 이렇게까지 다채롭게 떠먹여 주는 곡이 또 있나 싶었다. 물론 23일의 연주가들과 지휘자가 악보가 말한 대로, 슈베르트가 상상한 대로 ‘노래’해 줬기 때문이겠지만…….
4악장에서는 몇 번이나 이쪽으로 거대한 구가 공격해 왔다. 머리가 어질해지고 약간의 멀미마저 느껴질 만큼 커다란 공격이었다. 그때 불현듯 이 교향곡의 별칭을 떠올렸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9번. 이 곡의 별칭이 뭐였더라? ‘The Great.’
그래…어쩐지, 너무 그레이트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