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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진실을 향해 달리는 ‘부은 발’ -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내 발아,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by 이진 에디터
2026.07.22 20:02

 

 

오이디푸스_양준모, 코러스 2.jpg

 

 

모든 인간은 축복과 저주를 함께 끌어안고 태어난다. 평생을 얄궂은 운명 앞에 나약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기에 인간은 저주받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강인함 또한 가졌기에 축복받은 존재가 인간이다. 이토록 아이러니한 운명 속에서, 모든 걸 파괴할 정도로 위험한 ‘진실’을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대부분의 인간은 말로는 진실을 외면하겠다 답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마주한다면, 많은 이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걸 택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건 인간이 가진 가장 위험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도 그랬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란 저주받은 신탁을 받고 태어났다. 테베 3대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왕비의 친아들인 오이디푸스는, 발이 묶인 채 산에 버려지지만 양치기의 기지로 살아난다. 이웃 나라 코린토스 왕의 양자로 길러진 오이디푸스의 이름은 양부모가 지어줬다. 오이디푸스의 뜻은 ‘부은 발’, 부모가 준 최초의 저주는 아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름인 것이다.


수컴퍼니 제작 연극 <오이디푸스>가 2026년 7월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했다. 영상 매체와 무대를 오가며 탄탄한 실력과 내공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출연으로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은, 개막 후에도 다양한 의견 속에서 작품의 저력을 입증하며 8월 23일까지 순항할 예정이다.

 

 

오이디푸스_최수종, 크레온_최수형, 코러스 외.jpg

 

 

오이디푸스 역에 최수종·양준모, 이오카스테에 서영희·임강희, 코러스장엔 임병근·이형훈, 코린토스 사자 역엔 남명렬과 오찬우, 크레온 역엔 강성진과 최수형, 테레시아스 역엔 박정자와 나자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렇듯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연극 <오이디푸스>는 작품 자체로도 특별하다. 고전뿐 아니라 연극을 자주 접하지 않는 관객도 이해하기 쉽게 각색하고 연출했기 때문이다.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몰라도 비극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작됐다. 작품 속 공간을 현실적으로 구현한 영상 그래픽, 오이디푸스의 감정과 스토리를 노래하듯 설명하는 코러스장과 코러스들, 메시지가 담긴 대사들의 반복(‘내 발아,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더러운 놈’, ‘삼거리’ 등), 90분간의 짧은 러닝타임과 빠르고 흡입력 있는 전개로 연극과 고전의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춘 작품이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 비극 3대 시인이자 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테베 왕 오이디푸스는 가뭄이 들자,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 나선다. 살인범이 처벌되지 않아 테베에 불행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부은 발’을 이끌고 길을 나서는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친부 라이오스의 살인범이며, 왕비 이오카스테가 친모였단 끔찍한 진실에 맞닥트린다. 오이디푸스보다 먼저 모든 걸 안 이오카스테의 만류에도 길 끝까지 걸어간 그는, 아내이자 어머니 이오카스테의 시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는 욕망, 테베의 비극을 해결하려는 사명감이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진실의 내핵엔 파멸과 비극만이 남았단 걸 확인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시키고, 그 옛날 자신을 ‘불쌍해서’ 구해줬던 코린토스 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테베를 떠난다. 객석 통로를 걸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면, 가뭄이 든 테베엔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리며 극은 끝난다.

 

 

오이디푸스_최수종, 이오카스테_서영희.jpg

 

 

테베 왕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죄 없는 테베 사람들은 가뭄으로 말라 죽는다. 자신이 선왕 라이오스의 살인범이자 친아들이란 정체성을 마주하면 이오카스테가 죽고, 자기 영혼도 말라 죽는다.


그럼에도 오이디푸스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태어날 때부터 끔찍한 딜레마에 갇혔고, 두 가지 선택지 중 더 최악의 결과를 택하며 파멸했지만 그는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난다. 다 잃었을지라도 오이디푸스는 죽지 않았다. 그를 시험에 빠트린 신은 저주받은 신탁을 내렸지만, 강인한 생명력과 인간성만큼은 남겼다. 그의 선택은 어리석으면서도 숭고했다. 선왕 라이오스의 살인범, 즉 자신에게 벌을 주며 테베에 비를 내리고 많은 이들을 살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극 <오이디푸스>는 왕이 아닌 ‘인간’ 오이디푸스의 어리석음과 강인함, 고통과 비극적 선택을 다룬 작품이다. 오이디푸스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는 이오카스테의 시신과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늙지 않는 여자, 이오카스테는 진실을 마주하곤 머리카락이 하얘진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문밖에선 자식들이 죽어가는 엄마를 필사적으로 부른다. 오이디푸스 또한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의 시신을 끌어안고 ‘엄마’라 울부짖는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직설적이고 친절한 연출이 정점에 달하는 장면이다. 감상하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테지만, 처절한 비극 한가운데에 버려진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고통만큼은 절절하게 와닿는다.

 

 

오이디푸스_최수종, 크레온_최수형, 코러스장_임병근 외.jpg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에 쓰인 고대 비극, 추리물의 기원, 비극의 바이블이다. 오늘날까지도 오이디푸스와 테베의 비극이 수많은 무대에 다시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컴퍼니 연극 <오이디푸스>는 작품의 방점을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에 찍었다. 저주받으며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이유도 모른 채 고통받고, 순간의 감정적 실수를 큰 형벌로 돌려받았으며, 진실하게 했던 사랑 또한 죄악이 됐다.


억울하게 나쁜 일에 휘말리는 것, 스스로 발등을 찍고 괴로워하는 건 2026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찾아 투쟁한 한 인간의 일대기를 무대에 올리며 관객에게 말한다. 자신을 알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은, 끈질기게 아름다운 생명력의 증거도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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