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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한여름의 시소러스, '서늘함'의 다른 말 찾기 [문화 전반]

서늘함은 온도로만 오나요

by 유예현 에디터
2026.07.21 14:04

 

 

한여름의 시소러스


   

시소러스(Thesaurus)라는 말을 아는가. 마지막의 ‘-rus’ 때문인지 웬 공룡의 이름처럼 느껴지는 이 말은 ‘유의어 사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단어 관계 사전’이란 말이 마음에 든다. 이 글을 쓰며 처음 찾아보게 된 ‘우리말 시소러스’라는 사이트는 단어를 검색하면 그 단어의 상위어, 하위어, 관련어, 그리고 동의어를 같이 알려준다. ‘변심’을 검색하며 나는 ‘감정, 의지’의 뜻을 가진 ‘마음’이란 말에는 총 4개의 상위어, 93개의 관련어, 그리고 297개의 하위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득 300가지가 넘는 이 마음들을 살면서 다 품어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일단 오늘은 그보단 조금 덜 부담스러운 단어를 다뤄보자.


부쩍 그늘을 반기게 되는 요즘이다. 낮에는 건물들, 사람들, 길거리의 나무들이 만드는 그늘을 쫓아 징검다리를 건너듯 다닌다. “단 1초라도 햇빛을 맞으면 죽음이다!”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며. ‘그늘’을 우리말 시소러스에 검색해 보았을 때 정의로는 '음지. 볕이 잘 들지 않는 그늘진 곳'이, 하위어로는 꽃 그늘, 나무 그늘, 산 그늘, 바위 그늘 등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음지는 애초부터 일종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늘이 지기 위해선 내리쬐는 빛이, 그리고 그 햇빛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러니 내리쬐는 빛과 가로막는 물체의 종류만큼 그늘에도 서로 다른 이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늘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대개 시원함이 아니다. 바람이라도 불어야 할 것 같은 적극적인 느낌의 ‘시원함’은 그늘과 상성이 안 맞는다. 그늘은 빛과 무언가의 만남에서 그저 떨어져 나온 것일 뿐, 행동하진 못한다. 대신 가만히 존재하는 상태의 온도에 그림자가 살짝 덧입혀진,‘서늘함’에 머문다.


한여름의 시소러스에서는 소리와 이야기의 형태를 띤 두 가지의 서늘함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무더운 여름에 각각의 서늘함이 당신에게 그늘이 되어주기를.


 


관련어 1. 피아노


 

사람의 감각은 사실 전부 이어져 있다고 한다. 눈으로 맛을 보고 손으로 앞을 본다는 말처럼. 소리로 온도를 재 볼 수 있다면 피아노 소리는 본질적으로 서늘함과 연관되는 듯하다. 목재로 이루어진 몸체부터 플라스틱이나 인조상아 등으로 이루어진 건반까지, 매끈하게 가공되고 색칠된 짙은 갈색과 흰색의 소재들은 안쪽부터 표면까지 냉기를 머금고 있다. 나는 나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절의 법당이 떠오르곤 하는데,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차분하게 번지는 법당의 온도를 생각하면 피아노의 옆구리에도 괜스레 뺨을 대 보고 싶어진다.


보컬이 있는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가 뿜는 열기로 뜨거워지고, 숨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도 뜨거운 소리를 낸다. 그러나 피아노는 연주자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열기와 울려 퍼지는 소리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피아노 건반의 멜로디를 따라가면 걸음이 점차 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깥의 열기와 귓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음들은 내 몸 안에서 뒤엉켜 결국 적정한 온도를, 땀이 흐르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속도를 알려 주는 것이다.


최근 피아노 음악에 입문하며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음악을 가장 먼저 추천해 주었다. 지금은 그중 The Melody at Night, With You(1999) 앨범의 8번 트랙 Something to Remember You By라는 곡을 자주 듣는다. 직역하자면 ‘당신을 기억하게 해 줄 무언가’정도가 될 이 곡의 제목부터 피아노와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이다. 만남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 아닌, 변두리의 그늘진 어딘가에서 헤어진 훗날을 가정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음악이 재생되고 있는 화면 속에는 앨범의 표지 그림, 창가에 놓인 한 꽃병의 그림자가 보인다. 남겨진 것, 두고 간 것, 추억할 것, 키스 자렛의 피아노 선율은 그 서늘한 이미지들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는다.

 

 



 

관련어 2. Sorrow 


 

Ada Zhang의 데뷔 단편 소설집 The Sorrows of Others(타인의 슬픔)는 또 다른 종류의 서늘함을 품은 이야기이다. 이 작품집에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인 Ada Zhang이 중국과 미국을 배경으로 쓴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문화 대혁명 이후의 세대, 이민자, 부모와 자식, 부부와 친구처럼 서로 다른 관계에 놓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결국 ‘타인의 삶과 슬픔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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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오늘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는 The Subject(대상)이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화자는 중국계 미국인 미대생으로, 뉴욕 퀸스에 단칸방을 얻어 살고 있다. 집주인은 Granny Tan으로, 중국의 시안 지방에서 넘어와 미국에 정착한 중국인 할머니이다. 화자가 자기 작품의 대상으로서 Granny Tan을 그리게 되며 둘의 관계는 발전하지만, 화자와 집주인 할머니 사이엔 여전히 여러 겹의 거리가 존재한다. 세대와 언어, 이민 이전과 이후의 삶,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가 그 거리를 만들어낸다.

 

 

Do you miss it? (그리우세요?)


Miss what? (뭐가?)


Being a midwife. Delivering children. (산파였던 시절이요. 아이들을 받아내는 일이요.)


You seem to associate things a lot with emotions. Talking about liking this and missing that. It’s just work. I do what I have to do to the best of my ability. It doesn’t bring me great anguish, nor great joy. It’s a livelihood. It’s not love. Then when it’s time to move on, I move on.

(넌 참 많은 일을 감정과 연관 짓는구나. 뭐가 좋네, 뭐가 그립네 하면서. 그건 그냥 일이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고. 그건 나를 화나게 하지도, 엄청나게 기쁘게 하지도 않아. 생계를 위한 일이지. 사랑이 아니라. 그리고 떠날 때가 되면 떠나는 거야.) 

 

-The Subject, Ada Zhang

 

 

위 인용문에서 Granny Tan은 자신의 경험을 그리움이나 사랑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었기에 했고, 생계를 위해 살아냈으며, 떠날 때가 되면 떠났다고 말할 뿐이다. 화자가 삶을 감정과 의미로 해석하려 한다면, Granny Tan은 삶을 자신이 해내야 했던 일들의 연속으로 기억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그래서 가까워지는 듯하다가도 번번이 어긋난다. Ada Zhang은 한 인터뷰에서, 이민은 한 사람의 삶을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으며, 그 단절 때문에 다음 세대는 부모와 조부모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The Subject의 서늘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서도, 한 사람의 삶은 끝내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건너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그러나 어쩌면 그들의 과제는 그 간극을 억지로 메우려 하는 것이 아닌, 그 사이에 자리하는 서늘함을 인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것은 그 이야기를 대상화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것을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에.

 

 

 

계속


 

올여름 내 시소러스에서 '서늘함'이라는 단어 아래에는 피아노 소리와 한 편의 이야기가 나란히 적혀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여름을 버텨내기 위해 또 다른 그늘들을 찬찬히 수집하는 중이다. 이 무더운 계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나의 시소러스도 지금보다 조금 더 두꺼워져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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