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서이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 이상 팔린 세기의 고전으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신경과, 정신과 의사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이 책에는 1946년부터 1984년까지 서로 다른 네 시기에 발표된 프랭클의 강연과 글이 담겨 있다.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가 자유와 삶의 의미, 인간의 책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한 권의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용소의 체험에서 멈추지 않고, 그가 평생 연구한 로고테라피에 대해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본인과 타인에게 질문하며 사유해 온 한 사람의 궤적이 담겨 있다.
프랭클은 단지 믿을 수 없는 수용소에서의 고난을 이겨낸 생존자가 아니었다. 그는 당시 만 37세로 이미 오스트리아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기에, 그가 창시한 의미를 향한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로고테라피가 수용소 경험을 통해 정립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는 수용소에 끌려갈 때 외투 주머니에 꿰매어 자신이 집필하던 정신의학 원고 초고를 숨겨 들어갔는데, 이미 로고테라피에 대한 이론을 정립한 상태였다. 수용소에서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그의 이론에 경험적 자료들이 되었다. 이는 로고테라피가 프랭클의 개인적인 체험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방 이후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1946년 출간되었으며, 빈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와 부모, 형제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이전처럼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이어갔다. 그의 밑에서 공부한 제자들의 연구 결과들은 로고테라피 이론처럼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의미를 지향하지 못하여 좌절하고 삶의 무의미를 느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었다. 이후 그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이론을 임상과 교육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 책에서 새롭게 다가온 것들을 소개하고 싶다. 먼저 스트레스와 긴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흔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떠올리면 모든 불안과 긴장이 사라진 상태를 생각한다. 그러나 프랭클은 스트레스는 삶의 소금이며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68쪽).
여기서 프랭클이 옹호하는 것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과로나 불안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긴장은 현재의 나와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능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책임이 있을 때 인간은 앞으로 나아간다. 반대로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고 누구도 내가 필요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편안함은 자유가 아니라 공허가 될 수 있다.
프랭클은 이러한 요구되지 않고 의미를 찾지 못하는 세태를, 물질적으로 과거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무력감에 빠지는 이유로 본다.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실존적 공허’에 집중한다. 사람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71쪽).
오늘날의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때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도 알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 72쪽
프랭클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거창하지 않다. 그는 삶의 의미를 실현하는 길을 세 가지로 말한다. 일을 통해, 사랑을 통해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서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 오래 남았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상대의 유일무이함을 알아가는 일이며 이를 사랑의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76쪽). 그는 한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관계적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인간관계로 한정 지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문화, 자연, 예술 또는 그 무엇이든 고유한 특성을 마주하며 알아가는 활동을 통해 의미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언급한 수용소 경험과 연결된다. 프랭클은 강제노동을 하러 이동하던 어느 날 마음속으로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다른 수용소로 끌려간 아내가 살아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아내의 생존 여부는 그의 사랑을 무력하게 만들지 못했다. 실제로 그의 아내 틸리는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사망했지만, 프랭클은 해방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자기 초월의 개념도 사랑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다. 프랭클은 자기 초월을 우선적으로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닌 어떤 것, 더 나아가 자신이 아닌 어떤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100쪽). 자기 삶의 과제를 놓쳐버린 사람들이 자신만 바라보게 되면 타인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알려다 못해 인생을 자아실현과 자기 해석에만 몰두할 때가 있다. 자아실현이 분명 인생의 타임라인 안에서 생을 영위하는 데 필요하지만, 그것에만 몰두하면 우리는 의미를 찾는 일에 더 헤맬 수 있다. 의미는 ‘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함께 지구를 살아가고 있는 자연에서, 세상이 만들어 놓은 구조와 테두리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길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스스로를 내어줄수록, 사랑이든 일에서든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어떤 일에 봉사하거나, 타인을 사랑할수록, 사람은 정확히 그만큼 더 행복해집니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 89쪽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어느 상황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다. ‘나무에만 집중하지 말고 숲을 보라’. 누군가는 숲을 보는 게 더 익숙해서 집중하여 나무를 보는 연습이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사소한 일에 집중하다가 전체 상황과 본질을 놓치는 경우에는 의식적으로 숲을 봐야 한다. 매일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각자의 삶에는 어느 정도 전문가일지라도, 보편적인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그러한 우리의 약한 부분을 정통으로 찌르고 채워주는 책이다. 읽어 나가면서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필사하고 많은 포스트잇을 붙이며 생각했다. 이 책은 인생에 걸쳐서 이해하고 실천하고 싶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들이 존재하고, 정말 삶을 더 살면서 나의 아우슈비츠를 각기 다른 모습들로 마주한 이후에 다시 읽고 싶은 내용들도 있다.
마지막 4부의 내용에 머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그 스스로 찾아야 했습니다.
루카스 박사는 그에게 방향만 제시해줄 수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 188쪽
내담자 또한 이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삶의 의미는 개개인이 정해야 하는 것이며, 어느 누구도 이런 질문에 대해 대신해줄 수 없다(93쪽). 그러니 우리는 삶의 주체가 되어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떤 환경과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결정하는 자유는 결코 상실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삶이 주어졌으니 살아간다는 마음보다, 삶에서 뭔가를 성취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마주하며 의미를 실현할 기회들을 누리는 것이 삶에서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던지, 그 선택들 속에 개인이 의미를 찾아 신중히 걸어온 발걸음들이 있다면 우리의 곳간과 창고는 가득 찬 인생이다(86쪽). 우리에게 무조건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가치를 신뢰하며 담대하게 살아가는 마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