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 이 책은 어렵다. 하지만 어렵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원래 근원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결코 쉬울 수가 없는 법이니까.
인간은 왜 '굳이' 살아야만 할까?
아프고 힘들면서, 사실 특별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다들 삶을 이어간다.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태어난 이상 살아가야 한다는 말만 의미없이 반복한다. '왜'라는 질문은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굳이 삶을 이어가야 할 의미도 방법도 알려주지 않는다. 별다른 응답은 없다. 그래도 일단은 살아간다. 다들 그렇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이러한 '왜'에 대답하는 여정이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신경정신과 의사다. 그는 누구도 쉽게 정답을 제기하지 못하고,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들의 논의가 쌓아온 근원적인 물음을 다시금 끄집어낸다. 물론, 어쩌면 이 또한 완전한 해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한편으로는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반발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서 책장을 느리게 넘겼다. 그럼에도 인상적이고,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명료한 것들이 있었기에.
빅터 프랭클의 시선에서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행복이 아니라. 인생의 목표를 물으면—그것이 물질적인 수단이든 정신적인 수단이든 간에—흔히 행복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빅터 프랭클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의미를 발견할 것을 촉구한다. 의미를 찾은 삶은 "행복해질 뿐 아니라, 또한 그만큼 고통을 이길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의미는 대체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 프랭클 박사는 의미를 찾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일, 사랑, 그리고 고통. 먼저 '일'을 통한 의미는 창작이나 성취를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사랑'과 관련된 의미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과 함께한다. 하지만 마지막 고통은.
여기서 주의할 것은 프랭클 박사가 '고통' 자체를 지향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인간의 삶에서 때로 고난은 불가피하기에, 그는 이런 '불가피한 고통'의 상황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성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통 속에서도 분명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는 <죽음의 수용소 이후>를 읽으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름의 실체를 가진 언어로서 와닿았던 주장들이다.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네 편의 글이나 인터뷰, 강연을 수록하고 있다. '집단 신경증'과 '집단 죄책'을 비롯한 빅터 프랭클의 여러 논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탐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덧없음과 가능성, 존엄이라는 무조건적인 가치······.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글에서 프랭클 박사가 온몸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삶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의미라니. 참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해답이다. 사실 여태 그것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돌고돌아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인간이 '행복'보다 '의미'를 좇는 존재라는 프랭클 박사의 주장은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남겼다. 때로 아프고 유약해도 괜찮다고 위로받는 듯한 기분과, 그럼에도 내가 과연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느냐는 약간의 반항심.
대학생은 혼란한 시기다.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그렇다. 좀처럼 의미를 찾기도 쟁취해내기도 어렵다. 입시 하나만을 생각하면 되었던 고등학생 무렵에는 다들 대학이 삶의 의미라는 되는 듯이 굴었다. 애들도, 어른들도. 오히려 대학에 오니 무엇을 쫓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번아웃이 왔다. 취미를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대체 무슨 의미를 쫓아야 하는 걸까.
책장을 덮은 이후에도 근본적인 의문은 계속 남는다. 빅터 프랭클은 질문에 답하는 동시에 질문을 제시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누군가 삶의 가치를 대신 제시할 수도 강권할 수도 없는 일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의미는 본인이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토록 양면적이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그럼에도 한 조각 의미와, 갈피에 대한 힌트를 얻었음을 되새기며 책장을 팔락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