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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덧없는 삶을 구원하는 과거라는 창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이후’ [도서]

실존적 공허의 시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by 소인정 에디터
2026.07.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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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다하우 등의 강제수용소에서 3년간 갇혀 지내다 가까스로 생존한 인물이다. 지옥 같은 고통을 직접 겪어낸 그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라고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역설한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1946년부터 1984년까지 서로 다른 시기에 이뤄진 빅터 프랭클의 네 가지 강의를 엮은 책이다.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는 네 편의 글은 하나의 일관된 통찰, 즉 인간이 지닌 '의미에의 의지’로 수렴된다. 프랭클은 인간이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이 욕구가 좌절될 때 실존적 공허와 무의미 속에서 정신적 질병이 시작된다고 진단한다.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매순간 스스로 결정해나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 『죽음의 수용소 이후』 p.133


 

프랭클이 강조하는 핵심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주체적인 '선택'이다. 우리의 삶은 스스로 내린 선택에 의해 구성되며,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함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3년간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죽음과 직면했던 프랭클에게 수많은 환자가 물어왔다고 한다.

 

“어느순간에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리잖아요. 모든 것이 무상하잖아요. 죽고 나면 대체 무슨 의미가 남는 거죠?”  


 

"죽음 앞에서만, 유한성의 압박하에서만, 

인간 존재의 시간적 유한성 앞에서만 

비로소 행동하는 것이 의미를 지닙니다."

 

- 『죽음의 수용소 이후』 p.147

 


프랭클은 죽음이 삶의 의미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한성을 통해 삶에 선명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역설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소멸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매 순간 직면하는 무한한 가능성 중 단 '한 가지'를 선택하고 실행하게 된다. 흔히 죽음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며, 결국 존재가 흔적도 없이 지워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낳는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처럼 삶은 어차피 덧없고 사라질 일이라는 공허한 허무주의에 대해 프랭클은 단호하게 답한다.



"실현된 것은 남습니다. 

그것을 더 이상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없으며, 아무도 무효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과거 안으로 구조해낸 것입니다.

실현된 일은 과거 안으로 구조해낸 것입니다. 

실현된 일은 과거 안에 보관되며, 그곳에서 덧없음으로부터 보호됩니다." 

 

- 『죽음의 수용소 이후』 p.147



프랭클은 이론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이를 현실의 삶에서 증명해 낸 다양한 실천적 사례를 제시한다. 전신마비로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청년들, 폐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도 "인생은 참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그러하다. 누군가는 이를 극단적인 '영웅주의'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인간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해 낸 본보기를 보여줄 뿐이다. 프랭클은 어떤 가혹한 상황에 처하든 모든 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충만함과 감사를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실현된 실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낸 과거 속에 있지요.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내게서 앗아갈 수 없습니다."

 

- 『죽음의 수용소 이후』 p.191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성과 중심적이고 젊음만을 숭배하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경제적 이용 가치나 기능성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노년층을 경멸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 프랭클은 인간의 존엄성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가치임을 선언한다. 노인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서 '과거라는 창고'에 수많은 경험과 실현된 가치를 안전하게 쌓아 올린 존엄한 존재다.


이는 비단 노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을 살아왔든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아우슈비츠'라는 시련을 살아내고 있으며, 그 와중에도 자유롭게 가능성을 선택하고 실행하며, 용기 있게 삶을 견뎌내고 있다.


프랭클의 오래된 강의록이 여전히 강력한 시의성을 갖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에 불안과 실존적 공허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전통이나 관습, 종교 같은 기존의 가치 체계가 붕괴하면서 삶의 방향성을 잃은 채 무기력에 빠지곤 한다. 어차피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밀려오는 덧없음은 우리를 끊임없이 냉소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그 공허함과 덧없음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가장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삶의 유한성 앞에서 무기력해질 때마다 프랭클의 목소리는 우리가 과거 안으로 구조해낸 매 순간의 선택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실재가 됨을 상기시킨다. 막연한 허무주의에 빠져 삶의 길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이 책을 통해 저마다의 아우슈비츠를 버텨낼 용기를 얻고, 멈춰 있던 삶의 의미를 다시금 건져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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