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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시청각 기호를 온전한 언어로 번역하는 세계 -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보지 못하는 마음을 번역하는 사람

by 오금미 에디터
2026.07.1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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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은 경험하지 않으면 온전히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부끄럽게도 내가 타인의, 특히 장애인의 불편을 조금이나마 체감하게 된 계기 역시 철저히 내가 불편했을 때다. 눈병이 나 안대를 꼈던 날, 한쪽 눈으로 겨우 바라보는 세상은 어지럽고 균형을 잡기도 힘들었다. 인대가 늘어나 통깁스를 했을 때는 두 발로 자유롭게 걷는 행위 자체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 조건임을 뼈저리게 알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마주한 지하철역의 끝없는 계단 앞에서 내뱉은 한숨은 또 어떻고.

 

잠시 겪고 이내 회복할 수 있는 비장애인의 일시적인 불편함도 이토록 답답한데, 평생을 장애와 살아가는 일상은 어떠할까. 그들의 목소리에는 저마다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권리는 비장애인도 언젠가 늙고 다쳤을 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당연하다고 여긴 일상이 누군가에겐 치열한 투쟁의 결과물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변을 다르게 보게 된다.

 

서수연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스크린 너머의 장벽을 이야기한다. 과거 '화면 해설'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렸던 '음성해설'은 시각장애인이 영상 매체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이정표다. 대사 외에 시각적으로만 보이는 연출과 구성, 혹은 비슷한 목소리 때문에 등장인물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 컷이 전환되는 찰나의 순간마다 말로 풀어주며 시각장애인의 이해와 감상을 돕는다.

 

처음에는 음성해설이 번역가와 비슷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낯선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해 자막을 달아주듯, 화면을 말로 바꾸는 작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성해설은 단순한 문자 언어 간의 치환이 아니었다. 이것은 오감을 중심으로 언어를 재구성하는, 번역을 넘어선 재창작에 가까웠다.

 

시각장애인은 음성해설 작가라는 거름망을 거쳐 작품을 수용한다. 초기에 작가는 객관성에 극도로 몰두하며 주관을 덜어내려 강박적으로 노력하지만 영국 유학을 통해 '중재자(Mediator)'라는 개념을 접하며 모호했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감상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적립한다.

 

 
'시각장애인'은 음성해설 작가라는 필터를 통해 영화를 본다. 그런데 영화의 절반 이상이 해설로 채워진다면 작가의 필터가 잘 작동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p. 123)
 

 

음성해설 작가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읊어대는 사람이 아니다. 화면과 청자 사이에서 장면의 서사와 정서, 상징 등 다층적인 의미 중 무엇을 언어로 끄집어내고 무엇을 생략할지 끊임없이 조율하는 존재다. 시청각적 기호를 온전한 언어로 바꿔주는 고도의 정신적 작업인 셈이다. 학문적 기반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척박한 환경에서 하나의 논지를 세우고 접근성의 기대치를 넓혀간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는 단순한 언어적 감각을 넘어, 타인에 대한 깊은 포용과 아량,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편견을 의심하는 유연한 사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거창한 구원이나 예술은 아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관객으로서 소외감 없이 다같이 웃고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 딱 그 정도의 배려면 충분하지 않을까. (p. 96)
 

 

OTT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음성해설의 기술적 접근성은 과거보다 좋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우리가 수많은 콘텐츠 중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골라 보듯, 시각장애인에게도 다양한 음성해설을 놓고 자신의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아직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권리.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소외감 없이 다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 그것은 거창한 특혜가 아닌 소박하지만 당연한 배려다. 이를 위해 먼저 '마음(mind)'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방법(how)'이 보이고, 구체적으로 '무엇(what)'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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